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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지은 Jean Jul 26. 2018

저는 연애 유니세프입니다.

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그렇습니다.


내 인생에서 사주를 총 세 번을 봤는데, 연애운에 대해서만큼은 항상 똑같은 말을 듣곤 했다.



아가씬 이십 대에 남자 복이 없네!


그때만 해도 점쟁이들이 다 짜고 친다며 그 뒤로 점 집엔 발도 안 들이던 나였는데. 요즘 들어서 엄마 말과 점쟁이 말은 틀린 게 없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게 주위에서 '넌 어떤 의미에선 참 대단하다.'란 말을 들어왔을 정도로 그다지 평탄하지 않은 연애를 경험해왔으니 말이다.


산전, 수전, 공중전 등 제각기의 험난함이 있던 연애처럼 보였지만, 그 연애들에도 딱 하나 공통점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난 그들에게 항상 '연애 유니세프'였다는 것이다.





연애 유니세프. 예전에 한 연애 칼럼을 읽다가 발견한 단어다. 무언가 부족한 점이 보이는 상대방에게 모든 것을 헌신하게 되는 패턴의 연애라고 한다. 물론, 연애 유니세프라는 사실이 나쁜 것만은 아니다. 상대방에게 아낌없이 주는 나무로 뿌리내리는 것에서 진정한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라면.


하지만, 간혹 유니세프 연애를 시작하고 나서 상대방과 함께 불우이웃이 되어버리는 사람들이 있다. 예전의 나처럼 자신을 불행하게 만들면서까지 상대방에게 헌신하는 사람들의 경우다.


내가 성인이 되어 만났던 한 남자 친구는 정말 가난했었다. 옛날 어른들이 하던 말처럼, 정말 무엇이 찢어지게 가난한 사람이었다. 평소에 어찌나 자신의 빚을 언급하던지 내가 그 사람 집안의 빚 액수를 다 알 정도였다. 돈이 모자라 밥도 챙겨 먹지 못해서 주위 사람들에게 돈을 빌리고 다니는 그를 보며, 난 그를 떠나야겠단 생각 대신 내가 모든 것을 감당해야겠단 생각을 했었다.


그 뒤에 만난 남자 친구들도 마찬가지였다. 주위에선 항상 내 남자 친구들을 '굳이 만나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이라고 칭했다. 외모나 능력의 기준을 말하는 것이 아닌, 왜 굳이 마음의 어둠을 가진 사람들에게 끌리냐는 것이었다. 나쁜 남자들, 우울한 남자들, 화내는 남자들에게 말이다.


저 사람의 어둠을 내가 걷어내 주리라

마치 백색의 간달프 같은 의지였던걸까. 주위의 수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나는 질릴 만큼 똑같은 각오와 함께 연애 유니세프의 길을 걸어나갔다. 




저 사람은 내가 아니면 안 될 것 같아.

이 말이 참 무서운 말인 이유는 상대방에 대한 사랑이라기보단, 동정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동정과 사랑은 분명 다른 감정이다. 하지만 연애 유니세프는 흔히 동정과 사랑을 착각한다. 그러기에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 상대방을 위해 하는 행동에서 자기 자신이 받는 손해 같은 건 생각하지 않는다. 상대방에겐 헌신하면서 내 자신을 돌아볼 시간에겐 매정하기에 아예 내가 받는 상처나 자존감의 하락에 대해서는 전혀 눈치채지 못하는 것이다.


결국 이런 행동들은 쌓이고 쌓여 연애 유니세프의 자아를 점점 잠식해간다. 마치 내가 떠나면, 이 사람은 내가 아니면 안 될 것처럼. 사실 이 세상에 내가 아니면 안 될 것 같은 사람들은 가족 말곤 별로 없는데도 말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왜 그런 유니세프 연애들을 했나, 나도 내 자신이 이해가지 않을 때가 많다. 흔히 하는 '내가 이런 자식을 왜 만났지? 왜 나 이럴 동안 아무도 안 말렸냐?'의 고민이다. 말렸어도 자기 좋을 대로 했을 거면서.

지금 와서 그나마 좋은 쪽으로 변명을 하자면, 난 굳이 공감력이 뛰어난 사람이었던 것 같다.


난 항상 그랬다. 누군가가 내게 마음속의 고민을 말해줄 때면, '이런 힘든 이야기를 내게 해주는구나! 고마워, 넌 정말 날 신뢰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

연애도 마찬가지였다. 이성이 내게 비슷한 아픔을 이야기할 때, 혹은 나와는 전혀 다른 시간을 산 그들의 이야기를 들려줄 때, 무언가의 호감과 동정심을 동시에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결국 내 자신의 일처럼 그의 힘듦을 보살펴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홍익인간 정신이 따로 없다.


나의 경우엔 이런 마음은 100퍼센트의 선한 마음으로 이루어져 있다기 보단, 조금의 자기만족도 섞여있었던 것 같다. '난 이렇게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희생한다, 난 이렇게 이 사람을 열렬히 사랑한다.' 같은 무의식 속의 자기만족은 연애 유니세프로써의 삶에 자양분으로 작용했다. #럽스타그램 #사랑꾼





결국 연애 유니세프로써의 연애들은 오래가지 못했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아닌,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과의 연애는 건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부족함을 어필하던 상대방에게 주기만 하느라 점점 사라져 가는 내 자신을 인식하기 시작했을 때, 그 연애의 한계는 찾아왔다. 감정, 시간, 금전적 여유까지... 모든 것을 소비한 내 자신은 전혀 행복하지 않았다. 내 코가 석자라는 말처럼, 남에게 주는 것이 버거워질 정도로 텅 비어버린 나는 연애 유니세프로써의 내 자신을 끝내 내려놓기로 결심했다.


나 같은 연애 유니세프들이 연애를 할 때 생각해봐야 할 것들은 아주 간단하다. 무조건적인 헌신과 사랑을 구별하는 것. 내가 하는 희생이 상대방에게 진정으로 도움되는 일인지 생각해보는 것.

그리고 가끔은 상대방을 위해 희생하고 있는 내 자신은 어떤지, 잊지 말고 돌아봐줄 것. 그러면 이미 정답이 보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이 어떤 형태의 연애를 하고 있는지, 그리고 앞으로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에 대해서 말이다.




인스타그램 @jeanbeheren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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