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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지은 Jean Jul 12. 2018

당신은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나도 안다. 우리가 끝났다는 것.


어젯밤, 당신에게 문자가 오는 꿈을 꿨다.

 

꿈과 맨 정신, 그 사이의 비몽사한 의식 속에 느껴졌던 감정은 미묘했다. 당신에게 뭐라고 답장을 할까 침대에서 몸을 뒤척이던 간, 나는 어렵게 든 그 꿈에서 깼다.

눈 앞의 뿌연 안개가 걷히고 내 시야에 들어온 핸드폰 액정은 잔인하리만큼 깨끗했다.




사람은 정말 원하는 것, 혹은 정말 두려워하는 것에 대해 꿈을 꾼다고 한다. 내 경우엔 어느 쪽이었을까. 어느 쪽이든 내가 당신의 문자를 기다렸던 건 사실이다.

당신과 함께할 때도, 함께 하지 않을 때도 난 항상 기다리는 사람이었다. 참 불공평하다. 하긴, 제일 불공평한 걸 따지자 이젠 화낼 기회조차 주지 않는 당신이란 사람, 그 자체겠지만.



나가는 길



시간은 흘러갔다. 분명 어제와 오늘은 다른 날인데, 나만 뺀 모두에겐 같은 날이다. 오늘 하루는 당신에게도 모두와 같은 날이 될까, 아니면 다른 날이 될까 조심스레 상상해봤다. 후자이길 바라면 너무 욕심일까 라는 마음과 함께.


오늘만큼은 마음이 게을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내 이성이 내 마음보다 조금 더 앞질러 줘서 엉망진창인 마음의 멱살을 잡고서라도 오늘의 일을 해야 한다고, 그게 지극히 정상이고 잘하는 거라고 이야기해줬으면 좋겠다. 당신 없는 내 일상 이제는 계속될 거라고 믿어졌으면 좋겠다.


물이라도 조금 적시면 내 못생긴 마음까지 씻겨나갈까 싶어 화장실에 들어갔다. 뭔가 시든 눈을 하고선 칫솔을 물고 있는 내 옆자리에 당신의 잔상이 순간 비쳤다. 무슨 이유였을까, 무서운 마음에 눈을 질끈 감아 버렸다. 정적이 흐른 후, 조심스레 눈을 뜨자 당신은 사라지고 없었다. 당신의 잔상이 없어진 자리엔 덩그러니 놓인 칫솔만이 무심하게 남아있었다. 아, 아직 버리지 않았구나.


거울 속의 나는 전혀 야위지 않았다. 남들은 이별하면 살이라도 빠진다는데, 나는 전혀 마르지 않고 오히려 찐 것 같다. 굶으면 몸이 더 붓는다고 했었지. 그래서 조선시대 사극에 나오는 사람들이 좀 부어 보였던 걸까, 라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면서 칫솔의 물기를 털어냈다. 오늘은 바쁘니 당신의 칫솔은 나중에 버리기로 했다.


그러고 보니 요 몇 일간은 밥도 잘 먹지 않았다. 밥 먹었냐 챙겨주는 당신이 이젠 없어서일까. 밥 때를 계속 놓치게 되었다. 아니, 솔직히 는 그냥 잘 지내고 싶지 않았다. 비록 내가 지금 행복하더라도 당신에게만은 불행해 보이고 싶었다. 당신 없이 내가 불행함을, 당신이 잊히지 않을 만큼 아직 소중함을, 그래서 내 마음이 결코 쉬운 것이 아녔음을 당신이 알아줬으면 했다. 그냥 나는 당신의 눈에 한없이 불행한 사람이고 싶었다.



돌아오는 길


넌 행복해질 자격이 있어.

자기 전, 당신이 마지막으로 했던 이야기를 어둠 속에 다시금 새겨본다. 내가 행복할 자격 있다는 말, 결국 당신이 날 행복하게 해줄 자신은 없다 말이였다는 걸 이제서야 알아버렸다.


정, 혹은 집착으로 가득 찬 그런 세상은 이제 지났지만 당신은 뭔가 모르게 나의 한 부분이 되었다. 나도 한 번씩 내 자신에게 무서울 만큼. 가끔씩은 당신을 이렇게나 사랑하고 있는 내가, 당신도 날 생각하고 있을 거란 착각에 빠진 내가 한심하기도 하다. 당신에게 난 어떤 사람일까. 특별할까. 날 사랑하긴 했을까. 끝없는 메아리가 내 마음의 천장에 울려 퍼진다.


이렇게 당신을 사랑함에도 전화 한 통, 메시지 하나의 벽은 나에게 너무 높다. 번호를 누르려다가도 수십 번은 망설인다. 아니 감히 누를 수도, 누른다는 상상조차도 할 수 없다. 이건 자존심의 문제가 아니다. 단지 내가 더 아파질까 봐 무섭다. 당신의 차가운 모습을 보고 내 자신이 미워질까봐 두렵다. 


수십 번의 고민 끝에 당신은 지금 외롭지 않을 거라, 당신을 사랑하는 많은 이들에게 에워쌓여 잘 살고 있을 거라 결론짓는다. 그렇게 내 자신을 추슬렀다. 잠시 외로워졌던 나를.

난 정말 어쩔 수 없게도, 당신을 사랑한다. 그래서 여전히, 하루에도 수백 번씩 이뤄지지 않을 상상을 한다. 우리가 물길처럼 각자의 길로 흘러 흘러가더라도 결국 바다에서 함께 만나길. 그 바다의 끝에서 당신이 '여기까지 오는데 수고했어'라고 말하길. 어젯밤 꿈처럼 결코 이뤄지지 않을 상상을 한다.


당신은 돌아오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몇 번만 더. 밥 때를 놓치고, 당신에게 연락을 할까 말까 망설이고, 현실이 아닌 꿈에서 깨어나 실망하기로 했다. 그렇게 몇 밤, 아니 몇십 밤을 지내다 보면 조금이나마 당신을 잊을 수 있을거라고, 그렇게 나는 당신을 보낼 수 있을거라고 믿기로 했다.

그러니까 나도 안다. 비록 내가 계속 이 자리에 남아 있다 해도 당신이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 정도는,

나도 알고 있다.





인스타그램 @jeanbeheren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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