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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지은 Jean Jul 05. 2018

그에게 내 가치는 얼마였을까

내 가치는 누가 정하는 걸까


난 너의 이런 면이 마음에 들지 않아.

분명 나에 대한 모든 것들을 사랑한다고 말했는데, 언제부턴가 그는 나의 어떤 부분들을 성에 차지 않아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날 마치 껄끄러운 지인처럼 대하던 그가 떠난 후, 내 안에 남은 감정이라곤 깊은 회의감뿐이었다. 그에게 있어서 내 가치란 그저 마음만 먹으면 이렇게 쉽게 사라지는, 딱 이 정도가 전부였던 걸까.


어서 그가 떠난 이유를 찾아!

그가 떠난 뒤에 밀려왔던 마음의 소리는 하루도 거르지 않으며 날 재촉했다.


'내가 자기계발 시간이 부족한 사람이어서 그런가, 하긴 내가 변변한 취미생활 하나 없는 것 가지고 잔소리하곤 했었지. 내가 너무 자주 같이 있자고 해서 그런가? 그래 다른 사람들도 만나고 싶은데 조금 귀찮았을 수도 있겠다. 외모 때문이었을까, 내가 항상 편한 모습만 보여서..."


날 사랑하지 않는 사람에게 어떻게 하면 다시 사랑받을 수 있을까? 라는 말들이 매일 내 머릿속을 포화상태로 만들었다. 그렇게 나는 관계의 모든 문제점을 내 자신에게서 찾기 시작했고, 그 과정에서 떨어져 나온 모난 질문들은 내 마음을 잔인하게 몰아붙였다.



Katy Perry - Part of Me


옷을 살 때, 난 이런 말들을 하곤 했었다. "이 블라우스 디자인은 참 예쁜데 거추장스러운 프릴 때문에 매력이 죽는 것 같아. 이 원피스 핏은 괜찮은데 패턴이 촌스러워서 못 사겠어." 


어느새 난 내 자신을 한 벌 짜리 옷처럼 보고 있었다. 마치 나라는 사람의 특징을 더하고 뺄 수 있을 것처럼, '이것만 없었으면 난 더 좋은 여자가, 이 점만 고치면 그에게 더 가치 있는 여자가 될 수 있을 텐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난 그에게 잘 산 옷 한 벌의 가치만도 못하다고 굳게 믿으면서.


더하기 빼기, 그리고 마이너스

내 갖은 노력과 달리 결과는 좋지 않았다. 아무리 날 더하고 빼도 그에게 있어서 내 매력은 마이너스일 뿐이었다. 아마 그때부터 알아차렸어야 했는지도 모른다. 이제 그만할 때라는 걸. 하지만 어리고 어리석었던 나는 다음의 연애, 그 다음의 연애에서도 상대방이 좋아할 만한 특성을 가진 여자가 되려고 노력했다.


"연락을 자주 하면 질척거린다고 생각할 거야. 자기 계발을 하지 않으면 발전이 없는 여자라고 생각할 거야. 꾸미지 않으면 외모에 신경 쓰지 않는다고 금세 질려버릴 거야..."


그 끝없는 포장의 바탕엔 본연의 내 모습을 보여주면 버림받을 것이라는 두려움이 있었다. 그 때의 그처럼, '이제 내게 매력 없는 너는 필요 없어'라고 말할 것만 같은 그 두려움은 진짜의 내 모습을 진심 저편에 꼭꼭 숨게 만들었다. 그렇게 연애에 있어서 내 가치 증명의 지표는 상대방에게 얼마나 호감의 모습으로 비치느냐 변했다.


나는 호감으로 무장해야만 상대방의 사랑을 받을 수 있다고, 그런 나야말로 상대방이 목맬 정도의 높은 가치를 지닌 여자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정작 주체성이 없는 사람은 상대방의 이상에 맞추고 있던 건 내 자신이었다. 가짜로 포장된 내 모습을 내세우며 마치 그게 진짜 인양 상대방에게 예쁜 모습만 보이려고 노력하는 나.

정작 진열대에서 목매고 앉아있던 건 내 자신이었다.


Katy Perry - Part of Me


나만이 내 가치를 정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그만두기로 했다. 나 자신을 상대방의 입맛에 맞게 맞춰 뜯어고쳐 가는 것. 나는 그게 사랑의 한 방식인 줄 알았다.

그런데 상대방을 행복하게 만드는 노력을 하는 동안 정작 나는 한순간도 행복하지 않았다. 남을 위해 나를 바꾼다는 건 매 순간의 배려와 노력이 따르는 일이었고 가짜와 진짜 내 자신 사이의 괴리감은 항상 날 괴롭게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그동안 돌아보지 못했던 내 자신을 배려하기로 결심했다.



그가 날 떠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이제 와서 우리 사이가 끝난 이유를 내게서 굳이 찾자면, '그가 정해버린 내 가치를 나도 모르게 수긍해버렸던 것'뿐이다.

그 때의 나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다. 그는 내가 제일 사랑하고 신뢰하는 사람이었으니까, 그래서 그가 말하는 내 자신의 가치가 사실이라고 믿어버렸는지도 모른다. 그를 사랑했던 만큼 그가 싫어할만한 내 특성은 문제인 것, 옳지 않은 것, 그래서 앞으로 고쳐나가야 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술에 취하면 사람을 드려 팬다거나 하는 윤리적인 범위를 넘어서지 않은 이상, 사람에게 옳지 않은 특성 같은 건 없다. 그가 날 정의한 부정적인 단어 또한 내 자신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제는 알고 있다.



나는 비로소 자유로워졌다. 애초에 내 안의 뭔가를 바꿔야만 이뤄지는 관계야말로 가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직 완전히 나 자신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없지만, 매일 노력하며 진심의 저편에 숨겨왔던 자신을 다시 돌려받고 있는 중이다. 지금은 욕심이겠지만 언젠가 그를 보면 말해주고 싶다.


나는 이제 당신에게 인정받을 가치 같은 건 키우지 않는 사람이라고.





인스타그램 @jeanbeheren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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