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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멍난 숟가락 Dec 08. 2017

우유식빵과 딸기잼

나의 식탐 바로미터


그날 회동은 일산 모 오징어불고기 집에서 있었다. 제부의 승진을 축하하는 자리였다. 멤버는 동생 부부와 나. 오징어불고기 3인분에 우동사리 추가, 거기에 오징어 튀김 한 접시를 곁들였다. 축하자리니만큼 술도 빼놓을 수 없었다. 처음처럼 한 병, 카스 한 병.(아쉽게도 클라우드가 없었다.) 오징어 불고기는 적당히 매콤했고, 불 조절을 잘해서 야들야들했다. 오징어 튀김은 알고 보니 대왕오징어였는데, 마치 (좀 과장해서) 마쉬멜로우처럼 부드러웠다. 그렇게 감탄하는 한편 허기를 채우다보니 어느덧 오징어 불고기의 끝이 보였다. 그러나 거기서 멈출 수 없었다. 그렇다. 고추장 양념에 볶아 먹는 음식의 마무리는 뭐니뭐니해도 볶음밥이다. 밥 2공기에 치즈 사리까지 추가하고 나서 동생이 말했다. “우리가 너무 많이 먹나?” 우리보다 먼저 온 몇몇 테이블은 아직까지 오징어 불고기를 느긋하게 즐기고 있는 중이었다.


볶음밥 속에 묻은 모짜렐라 치즈가 녹기를 기다리며, 우리는 식탐에 대해 얘기했다. 제부는 한사코 본인은 식탐이 절대 없다고 주장했다. (2년을 함께 살아오며, 그의 식생활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봐온) 동생은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였다. 제부는 식탐이 있는 거랑 많이 먹는 건 다르다며 맞섰다. 하지만 옥신각신하던 두 사람은 곧 잠잠해졌다. 식탐에 대한 나의 고해성사 때문이었다.


때는 90년대 초. 부산의 한 아파트에는 이제 막 십대에 접어든 한 소녀가 있다. (그렇다. 바로 나다.) 곧 언니의 친구들이 들이닥치기로 예정돼 있었고, 소녀는 초조함과 두려움을 느끼며 무언가를 필사적으로 붙잡고 있다. 그것은…… 그것은! 투명한 비닐에 노란 글씨로 정체를 드러내고 있는! 우유식빵이다. 그리고 딸기잼. 소녀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고 있다.

“우유식빵이랑 딸기잼이 있는 날에는 누가 집에 오는 게 싫어...”


(더 얘기하기는 부끄럽지만) 그렇다. 소녀는 우유식빵을 혼자 독차지 하고 싶었던 것이다. 쫄깃하고 부드러운 밀가루의 맛을 소녀는 무척 사랑했다. 거기에 딸기잼을 발라 먹는 건, 더더군다나 사랑했다. 딸기잼을 바른 우유식빵을 먹은 후, 입 안에 남은 딸기씨를 앞니로 톡 반을 갈라 씹을 때 나는 그 소리도 좋아했다. 꼭 탭댄스를 추는 것 같은 경쾌한 그 소리는, 바로 소녀의 기분과 흡사했다! 그러나 우유식빵을 하나씩 먹을 때마다 소녀는 슬픔을 동시에 느껴야 했다. 왜냐하면, 우유식빵이 점점 사라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손님이 오기라도 한다면, 우유식빵은 더 빨리 사라질 것이 분명했기 때문에 소녀는 누가 집에 오는 게 싫었던 것이다! (아, 이런 과거를 털어놓는 건 정말이지 부끄럽군요. 안 믿으실지 모르지만, 지금은 전혀, 전혀 이렇지 않습니다. 정말입니다.)


그런데 브런치에 연재를 하기 전, 써놓은 몇몇 원고를 지인에게 보여줬더니 반성문 비슷한 메일을 보내왔다.


저와 함께 무언가를 먹을 때
혹시 불편한 순간 있으셨다면 사과드려요.
앞으로 우리, 맛있는 거 하나 하나 많이 먹어요.


이런 반응이 재밌기도 했지만 당황스러웠다. 나는 내 식탐을 부인하지 않는다. 그건 너무 뻔뻔스러운 일이기 때문이다. 나는 먹을 걸 얘기할 때면 눈이 빛나는 사람이며, 특이나 좋아하는 음식 얘기가 나오면 온 얼굴에 형광등이 켜지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는 음식을 독차지할 생각 같은 건 없다. 정말이다. 그러니 메뉴를 고를 때 내 눈치를 살피는 직장 동료와 지인, 친구들이여. 이제 그 고단한 수고를 내려놓으시길. (정말로 나는 괜찮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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