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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멍난 숟가락 Dec 15. 2017

한겨울의 아시나요

한겨울을 베어먹는 맛이 이다지도 달콤할 줄이야


사실 식탐에 대한 글을 쓰게 된 건, 예전에 쓰던 노트북에서 발견한 일기 때문이었다. 정확히는 2013년 겨울에 쓴 일기였다. 그때 나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조금은 설레며 파일을 열었는데, 일기 속에 나는 밤늦게 일을 마치고 귀가하던 중에 한 가지 중대한 고민에 빠져 있었다. 햄릿의 고뇌 저리가라 할 정도의 그 고민은……바로 이것이었다!! “빵또아를 먹을 것인가 말 것인가!”     


그날 일기의 전문은 이렇다.


"114 서울본부에 취재를 갔었다. 취재원이 사준 레몬 탕수육과 쟁반자장을 먹고, 집에 쫓아가 설 식혜까지 얻어먹었다. 취재원의 집에서 나온 시각은 거의 9시. 배가 부를 대로 불렀는데, 왠지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은 거다. 한겨울 꽁꽁 언 추위 속에서 꽝꽝 언 아이스크림을 먹고 싶은 욕망이 꿈틀. 부드러운 얇은 카스테라 사이에 바닐라 아이스크림이 샌드된 빵또아가 먹고 싶었다. 수색역 안에 있는 편의점에 들르려다가 어쩐지 궁상맞아 보일 거란 생각에 애써 발걸음을 돌렸다.     


근데 자꾸만 생각이 나는 거다. 그 빵또아가. 배도 부른 참에 몇 정거장 먼저 내려서 빵또아를 먹으며 걸어갈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결심을 하고 내려서 마트에 들렀다. 빵또아는 보이지 않고, 그 비슷한 ‘아시나요’ 가 있었다.    


이렇게 배부른 상태에서, 그것도 한밤중에 아시나요를 먹으면 분명히, 살이 찔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앙상한 나무들이 서 있는 어두운 길을 걸으며 먹는 새하얀 바닐라 아이스크림은 너무나 맛있었다. 아, 한겨울을 베어 먹는 기분이 이다지도 달콤할 줄이야. 아이스크림이 룰루랄라 내 입으로 녹아 없어졌다. 마지막 한입을 입에 쏙 넣으며, 정말이지 내 선택에 후회는 없었다.     


두 볼이 얼얼할 정도의 추위. 아, 이 계절이 다 가면 또 얼마나 서운한 기분이 들까. 겨울 다 가기 전에 추운 날 아이스크림을 한 번 더 먹고 싶지만, 활성산소가 노화를 재촉하진 않을지. 좀 걱정이 된다. 요즘 같아선. "  



그날의 걱정이 무색하게도, 2017년의 나는 이 일기를 보며 마구 웃었다. 그리고 함께 웃고 싶은 마음에 지인들에게도 보여주었다. 그러다 누군가 “이런 얘길 연재해보면 어때요?” 라고 말했고 이렇게 매주 한 편씩 쓰게 되었던 것이다. 


어쨌든, 요즘 같은 겨울에는 역시나 야외에서 먹는 아이스크림이 제격이다. 아이스크림이 녹을 걱정 없이, 정말 맘껏 아이스크림을 즐길 수 있으니까. (그리고 그럴 때는, 살찔 걱정은 눈싸움 하듯 잠시 던져버리는 게 좋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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