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우려, 지우려해도 지워지지 않는 내 머릿 속의 누텔라
여느 아침처럼 일어나자마자 밀크티를 끓이려고 전기포트에 물을 올렸다. 안구건조증 때문에 눈도 제대로 못 뜨고 있는데 아빠가 부엌으로 걸어오며 말했다. “빵 먹을래?” 그때 만해도 무심히 “아니” 라고 말했다. 그런데 아빠가 어디선가 누텔라를 꺼내는 것이었다!
누텔라. 오랫동안, 난 그걸 먹어보고 싶었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를 보면서였다. 에피소드 중에 누텔라에 관한 게 있다. 주인공 여자는 어릴 적 엄마가 해주었던 맛을 더듬어, 누텔라를 만든다. 개암나무 열매를 채취해 볶고 갈아서, 코코아파우더와 설탕을 넣어 만드는데! 그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고소한 향이 온몸을 휘감는 것 같았다. 달콤하긴 얼마나 달콤할까. 그 맛의 조화를 상상하면서 꼭 한 번 누텔라를 먹어보고 싶었다.
그리고 드디어 눈앞에 누텔라가 있었다. 그러나 누텔라를 빵에 듬뿍 펴 바를 용기는 다이어트 때문에 못 내고, 손가락으로 살짝 찍어 먹어봤다. 눈이 번쩍 뜨였다!!
그날은 토요일이었지만, 일을 하러 회사에 가야 했다. (라디오 방송용 취재 파일을 편집해야 했습니다.) 늦은 아침을 먹고 일을 하러 나섰다. 가다가 알았다. 편집할 때 쓰는 케이블을 안 챙겼다는 걸. 집에 가서 잊지 말고 케이블을 꼭 챙겨야지, 라고 생각했느냐! 아니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내내 머릿속에 자리를 잡은 건 다름 아닌 누텔라였다. 얼추 점심시간이 다 되어가고, 회사에 가면 점심 먹기도 애매하니까, 식빵을 구워서 누텔라를 발라 먹자. 그때부터 머릿속엔 누텔라 뿐이었다.
누텔라...
누텔라...
버터를 녹여 구운 바삭한 식빵에 듬뿍 스프레드 되는 누텔라!
집에 돌아가 바로 가스레인지부터 켰다. 정성들여서 식빵을 구웠다. 식빵 안에 들어 있는 버터가 잘 녹도록, 약한 불에서 은근히 오래. 굳어 있는 버터를 잘 타이르듯이, 인내심을 갖고 버터의 마음이 저절로 풀리기를 기다렸다. 이윽고 버터가 식빵에 스르르 퍼지고, 겉이 노릇노릇해졌다. 속은 녹은 버터를 머금어 야들야들 부드러운 상태. 잘 구워졌다. 누텔라를 듬뿍 떠서 펴 바르고, 반으로 접었다. 음... 그 맛은!!!
“암행어사 출두여!!”
세상 근심 걱정을 저만치 물러나게 하는 암행어사가 따로 없었다!
누텔라 맛에 취한 채 다시 일을 하기 위해 길을 나섰다. 그런데 회사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깨달았다. 굳이 집으로 돌아가야 했던 이유였던 케이블을 챙기지 않았다는 것을. 그러나 다시 돌아가기에는 너무 늦었다. 그냥 회사에 가보기로 했다. 누구라도 있겠지. 어떻게든 되겠지. 그런데! 어쩐 일인지 그날따라 아무도 없었다. 정말이지 사무실이 그렇게 휑할 수가 없었다. 불행히도 케이블 역시 없었다!
할 수 없이 다시 집으로 향했다. 최초 집에서 나온 시간 오전 11시반. 어느새 오후 3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그때 내 머릿속에는 또 다시 누텔라가... (자리를 잡았을까요, 안 잡았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