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브리그에서 배우는 조직과 리더십 (4/6)
백단장이 부임하고 첫번째 한 일이 팀을 좌지우지하려던 4번타자 임동규 선수를 내 보낸 것이다. 그 다음은 뇌물을 받고 부정 드래프트를 일삼던 고세혁 스카우트 팀장을 해고한 것이다. 이 과정 역시 순탄치 않았다. 우선 고세혁 팀장이 뇌물을 받았다는 입증을 하기 쉽지 않았다. 그리고, 고팀장은 드림즈 선수 출신으로 구단 내에서도 입지가 탄탄한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구단주가 단장 자리까지 제안할 정도였다. 한마디로 드림즈의 뿌리 깊은 나무였다. 백단장과 윤감독의 대화를 보자.
윤감독: 임동규도 그렇고, 단장님은 가장 단단히 박힌 돌만 건드리네요. 저 같은 사람 자르는게 쉬었을 텐데요.
백단장: 박힌 돌에 이끼가 많을 겁니다.
백단장은 가장 단단히 박힌 돌부터 건드리는 것이다. 즉, 가장 근본적인 문제와 뿌리 깊은 관행부터 고쳐 나간다. 사실 리더 입장에선 이게 제일 어려운 일이다. 방관하거나, 표면적인 이슈를 해결하거나 임시방편적인 솔루션을 찾는 게 더 수월하다. 조직원들도 문제를 직시하기 보단 믿음이나 관행이라는 미명 하에 흐리멍덩하게 방관한다. 근본 이슈를 정면으로 맞닥뜨리고 부러뜨리려면 냉정해야 한다. 그리고 그로 인한 리스크도 감수할 수 있어야 한다. 여기 백단장과 이세영 운영팀장의 대화를 통해 그들의 접근이 얼마나 다른 지 보자.
이팀장: 그때 드래프트는 1년 전 일인데요. 그걸로 책임을 물으시려는 건가요?
백단장: 안 됩니까?
이팀장: 그게 단장님 부임하시기 전에 있었던 일인데 부적절하다고 느낄 사람도 있을 거 같거든요.
백단장: 1년 전 일을 처벌한다기보다는 문제없이 넘어간 그 일을 되짚어서 그런 일을 반복하고 싶지 않은 겁니다. 팀장님은 고세혁 팀장님을 믿습니까?
이팀장: 네, 믿어요. 오래 봐온 분이에요.
백단장: 확인도 없이 정에 이끌려서 그럴 사람 아니야, 그게 믿는 겁니까? 그건 흐리멍덩하게 방관하는 겁니다.
이팀장: 확인하는 순간 의심하는 거죠. 확실하지 않은 근거들보다 제가 봐온 시간을 더 믿는 거에요.
백단장: 확실하지 않은 근거… 그걸 확실하게 확인할 생각 안 하셨어요?
이팀장: 단장님은 의심 안 받아보셨어요? 그때 기분 좋으셨어요?
백단장: 저는 아무 의심도 없는 흐리멍덩한 사람하고 일하기 싫습니다. 차라리 나까지도 의심하고 다 확인하세요. 떳떳하면 기분 나쁠 것도 무서울 것도 없습니다.
흐리멍덩하게 방관하는 겁니다! 뼈를 때리는 말이다. 많은 조직들이 관행이라는 미명 하에, 혹은 좋은게 좋은거라는 안이한 태도로 그냥 덮고 넘어가는 일들이 많다. 조직 생활 가장 편하게 하는 방법이 하던대로 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관행이 악습이 되고, 악습이 문화가 되는 것이다. 드림즈는 이미 그런 문화가 되었다. 고세혁 팀장의 뇌물 수수가 드러났을 때 백단장은 해고를 주장했지만 구단 대표는 경고로 징계를 마무리하려 한다. 고팀장은 큰돈도 아닌데 왜 문제삼냐고 항변한다. 구단주는 마지못해 백단장의 의견을 받아들이지만, 왜 적은 돈 먹고 이런 치사한 소리 듣냐고 고팀장을 위로한다. 그야말로 가관이다. 관계와 의리로 돌아가는 조직에서 나올 수 있는 반응이며 그렇게 문화로 굳어진 드림즈에선 백단장이 비정상인 것이다.
박힌 돌에 이끼는 한꺼번에 끼지 않는다. 한번 넘어가고 두번 넘어가고, 흐리멍덩하게 방관하면서 이끼가 끼는 것이다. 조직의 원칙과 규율이 서 있지 않을 때 그렇게 된다. 혹은 드림즈와 같이 관계 중심의 조직 문화가 만연할 때 의리와 제 식구 챙기기라는 명분으로 썩어가는 것이다. 백단장은 드림즈에서 관계 만드는 노력을 전혀 하지 않는다. 냉정하게 보일지라도 중심을 잃지 않고 문제를 정면으로 부딪치며 조직의 원칙과 규율을 만들어 간다. 공감의 리더십이 각광받는 이 시대에 흐리멍덩하게 방관하고 있진 않는지 한번쯤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