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요리가 싫어요
그 정성과 그 시간과 그러한 과정에
칼자국이 난 도마에 자꾸만 빨간 국물이 베이는 게 보기 싫어서
아마도 나는 아직 제대로 된 음식을 먹을
준비가 되지 않았나 봐요
컵라면은 물만 부으면 끝인데
같은 라면인데 봉지에 든 면은 왜 이리 먹기가 귀찮을까요
끓이지 않은 라면 봉지를 들춰내면
말랑해질 기회를 잃은 건더기와
쩌들어버린 스프들이
우수수 바닥으로 떨어져 내리죠
자신의 역할을 해내지 못하고 덩그러니 놓여있는 이들에게
남은 것은 무엇일까요?
둘 데 없는 재료란 참 어정떠요
전부 다 입안으로 털어 넣을 수만 있으면 소화되어 말끔히 사라질 텐데
건더기는 너무 딱딱하고 스프는 너무 짜서
입천장에 넣지 못해 선반 구석에 들어붙어선
찐득찐득 녹아내려 떨어지질 않아요
나는 다 먹어버리고 싶은데
라면을 끓이려 했던 게 잘못이었을까요
잔반조차 되지 못해 선반에 붙어버린 빨갛고 검은 점들이
부서지지도 않고 그냥 그렇게
바닥처럼 눌어선 누워만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