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궂이

by 하이민

이렇게 침침한 날에는 날궂이를 조심해야 해

시원하게 퍼붓지 않는 날은 꿉꿉한 일에 휘말리기 딱 좋거든


언젠가 들었던 조언 아닌 조언, 아니 경험담이었던가

아무것도 흩날리지 않으면 그냥

두 눈만 흐려지는 줄 알았는데

저리로 가, 오지 마


마주치지 않은 눈은 흔들리지도 않았는데

안녕 잘 가 손을 휘휘 저었고

모진 말을 내뱉고 그보다 더 날카롭게 베인 상처는

어디에 하소연해야 하나요?


해가 잠시 반짝 들었는데

그 빛을 쬔다고 날궂이가 바짝 마르진 않는데

굳은 표정은 갈라질 것처럼 말라비틀어져서

어서 빨리 오늘이 끝나기만을 바라고 있는데


차라리 하나도 남김없이 씻겨 내려가도록

폭우가 퍼부었으면 좋겠어

그러다 머리를 숙일 수 없을 정도로 넘쳐흐르면

물기라곤 찾을 수 없도록

메마른 더위에 시달리는 거야


그렇게 젖었다 마르는 새

날궂이가 자취를 감춰버리면

적어도 찜찜하게 애매한 흔적을 남길 일은 없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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