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사진

by 하이민

책장 구석에서 먼지를 뿌옇게 먹어댄 내가 웃고 있다


어느덧 끄집어내야만 되짚어볼 수 있는 어렸던 미소는 조금 어리석어 보이기도 했다


화사한 꽃다발은 그날 먹었던 짜장면에 잘 버무려 꼭꼭 씹어 먹었다


소화기관이 일을 너무 열심히 한 나머지 뱃속엔 남은 게 하나도 없다


텅 빈 속을 똑똑 두드려보다 문득


옆에 있던 거울을 본다


그날 먹었던 것들이 실은 소화되기 전에 얼굴에 눌어붙었던 걸까 둥그스름하게 각진 얼굴은 그때보다 좀 커진 것도 같다


어색한 웃음을 빚어내 본다


기쁘지 않아도 웃고 있으면 엔도르핀이 솟아난다고 했다


다시 한번 입꼬리를 끌어올려


사진 속 나와 거울 속 나를 맞춰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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