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어지는 봄볕에 온통 흐드러지다

눈부시게 빛나는 하늘과 땅의 내음

by 하이민

초록빛 풍경(Wind Chime)


햇살만큼의 무게를 담은 바람이 훅 불어와 머리를 스쳤다.


‘부웅’ 불어온 바람에 응답하듯 가로수 나무가 이리저리 머리를 흔들어댔다. 자르르 윤기가 흐르는 짙은 녹색이 순식간에 흐트러지며 한없이 반짝였다. 어지럽게 섞인 청록색 유리조각들이 찰랑대며 빛을 반사했다.


무심히 지나쳐간 바람은 마음을 휘젓는 돌풍이 되어 도심 한복판에 영롱한 초록빛 풍경을 울렸다. 아련하게 흩날리다 홀연히 흩어지는 노랫소리를 따라 가만히 귀를 기울여보면 머릿속 풍경이 몽글몽글 자라나다 흐드러지게 피어난다.


촤르르, 그리고 쏴아아.


풍경소리가 눈이 부시다.




우거지다


새싹과 꽃망울이 자그마한 싹을 움트기 시작해 파릇파릇하다는 표현을 쓴 지 얼마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 어느새 '파릇파릇'이 '푸릇푸릇'해지더니 짙게 우거지기 시작했다. 소담한 꽃송이가 한창 몸을 활짝 펼쳐내며 노랗고 빨갛고 하얗게 길가를 물들이는 와중에 나무와 풀들이 쑥쑥 자라기 시작해 알록달록한 꽃밭보다도 눈길을 끄는 웅장한 녹음이 되었다.


나뭇잎과 풀잎이 빽빽이 자리를 차지하며 공기도 바뀌었다. 살랑살랑 코끝을 간질이던 꽃향기 대신 물기를 머금은 날 것의 흙 내음이 한순간 강렬하게 코 속을 치고 들어온다. 이 생기발랄하게 우거진 녹음을 들이마실 때면 잠시나마 이곳에 머무르는 기운을 나눠 받는 느낌이 들곤 한다.


촉촉한 땅이 내뿜는 싱그러운 녹색 향기는 머지않아 축축한 물비린내로 온통 뒤덮일 테다.




흐린 날


비 소식이 잦아지며 옅은 회색빛 구름이 연신 하늘을 가리는 나날이다. 언제쯤 후드득 시원하게 빗방울이 쏟아지려나 한참을 기다려봐도 밤새 슬금슬금 다가와 후다닥 물기를 털어내곤 누가 좇아올세라 부리나케 달음박질 칠 뿐이다.


희멀건 천공을 메우려 울퉁불퉁한 몸집을 두툼하게 부풀린 먹구름이 뒤뚱거리는 걸음으로 성큼 다가와 하늘에 흐린 그림자를 드리운다. 흐려진 공기에 덩달아 밑의 것들도 본래의 쨍한 빛을 잃어버리고야 만다.


숨바꼭질 놀이를 하듯 슬쩍 얼굴을 내미는 햇살에 그제야 흐리멍덩했던 정신이 번쩍 든다. 찔끔 비추는 빛 덩이를 한껏 빨아들인 나무와 꽃과, 지붕과 벽들이 이내 부드러운 파스텔톤으로 옷매무새를 다듬고 곱게 단장을 마친다.




하늘 솜털


실개천을 따라 조성된 산책로를 걸어가다 바람결에 솜털 한 무더기가 쏟아져 내리는 광경을 보게 되었다. 눈부신 햇살에 새하얀 눈송이가 흩날리는듯한 모습은 그 자체로 장관이자 황홀경이었다. 처음엔 민들레 홀씨가 저리 무리 지어 바람을 타나 했다. 부들부들해 보이는 솜털 덩어리가 두둥실 떠다니는 모양을 바라보고 있자니 내가 모르는 꽃가루인가 싶었다.


‘솜털 꽃가루’로 검색을 해보니 버드나무 꽃씨에 붙어 있는 솜털이라 한다. 봄철 꽃가루에 하도 시달리다 보니 눈에 확연히 보이는 솜털에 거대한 꽃가루인가 싶어 식겁한 사람들이 한둘이 아닌가 보다. 나는 다행히 꽃가루 알레르기 비염이 없어 그 풍광을 그저 놀라워하며 감탄할 수 있었다.


환하게 내리쬐는 햇빛을 받아 꽃과 나무는 눈이 아릴 정도로 원색의 진한 색감을 발했다. 하늘 가득 솜털이 함박눈처럼 휘날리다 소복하게 쌓이며 총천연색 세상을 보송하게 감싸 안아 주었다.


봄의 온기가 한층 깊어져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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