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감자 시간을 보채 달려온 마음이 속살거리다

내 것이 아닌 소망, 메꾸지 못하는 상실에 대하여

by 하이민

먼지의 나이테


네모난 캐비닛에는 먼지가 겹겹이 쌓여있었다.


얼마나 오랫동안 덩그러니 놓여 있던 것일까. 그 무엇도 품어보지 못한 무력한 무능에 음울한 잿빛이 찐득하게 눌어붙었다. 분명 살아있는 것을 닮았던 밝은 고동색은 거무죽죽한 먼지 덩어리로 퇴화해 버리곤 녹이 슬 권리조차 박탈당한 채로 질식해간다. 짙은 회색 층은 화산재에 뒤덮여 죽어버린 땅을 고작 한 평짜리 정사각형 테두리에 가뒀다.


이곳은 몇 번이고 반복된 끝을 늘어놓은 전시장이다. 딱딱하게 굳어버린 형체는 말라비틀어진 구덩이에 뿌리를 내린 줄도 모르고 또다시 잿빛 나이테를 두른다.




조각잠


꿈조차 비집고 들어오지 못하는 잠에 든다.


하루의 틈새에 겨우 눈을 붙이는 조각잠이다. 고단한 시간은 잠을 꿈꿀 여유마저 용납하지 않는다. 무겁게 감기는 눈꺼풀을 들어 올리기가 버거울 때면 언젠가 찾아올 끝나지 않을 밤을 그리워한다.


조각난 짧은 밤을 이어 붙인 조각잠은 영원을 그리는 깊은 밤이 되는 걸까. 삶이란 게 이따금 쓰라려 와 조각잠에 찔리곤 고통스러운 숨을 가만히 내뱉어본다. 또다시 꿈도 찾아오지 않는 밤을 끌어안고 생채기가 잔뜩 난 몸을 한껏 웅크려 조각잠을 세어본다.




상상의 세계


언제나 공상과 망상의 경계 그 어디쯤에 있을 상상의 세계가 내 것이기를 바랐다. 유난히 판타지 장르를 좋아하는 성향 또한 그 때문일 터다. 빈약하고 허술한 상상의 세계가 서럽고 아쉬워 모든 게 몽상이기를 바라는 이기적인 마음 또한 욕심이다.


각양각색으로 덧칠한 상상의 세계를 마음껏 유영할 수 있는 기적은 누구에게 허락되었을까. 현실의 문턱에서 멍하니 멈춰 선 채로 저 너머 어른거리는 상상의 날개를 따라잡지 못하는 슬픔은 아프기보다 차라리 비참하다. 이 비참함조차 현실을 벗어나지 못해 눈물조차 나오지 않는다.




현실감각


꿈결을 헤매다 닿은 땅은 한없이 차갑고 거칠다. 아직도 전부를 내려놓지 못하고 허우적대는 몸짓은 바닥에 가까워질수록 창백한 눈물길을 낸다.


우스꽝스러운 착지에 맨 몸뚱이는 울퉁불퉁한 바닥에 갈려 피부가 찢기고 근육이 짓이겨지며 시뻘건 피를 흩뿌린다. 허무한 추락을 닮은 추한 몸부림은 아프고 고통스럽기만 한 것일까.


땀방울을 훔치다 떨어져 내리는 눈물방울을 가만히 그러모아본다. 마치 눈물을 하나하나 움켜쥐다 보면 다시 삼켜낼 수 있을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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