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의 행복과 불행은 다르지만 같다

온갖 마음을 빚어 만든 삶의 방향성

by 하이민

행운과 불운의 상관관계


직장생활이든 개인생활에서든 한참 골머리를 썩던 문제가 운 좋게 풀릴 기미가 보일 때가 있다. 그런데 그 '문제'가 해결된다 싶으면 결이 다른 곤란한 상황에 다시금 직면하곤 한다. 마치 일상에 감당해야 하는 문제의 총량이 정해져 있는 것처럼. 불운에서 벗어나는 행운을 붙잡으니 그로 인해 또 다른 고난이 냉큼 빈자리를 차지한다.


아무리 살면서 좋은 일만 있을 순 없다 하지만 그런 일을 겪게 되니 정말 사는 게 쉽지 않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큰 틀에서 문제는 사라지지 않는다. 마주하고 감내해야 하는 문제의 유형이 변할 뿐이다. 행운과 불운이란 결국 같은 게 아닐까. 불운을 메꿀 만큼의 행운이 주어지고, 그 행운의 방향에 따라 행복해지는 걸 테다.




변화의 방향성


어느 순간 확고하다 믿고 있던 취향, 생각, 더 나아가 신념까지 변했다는 걸 느낄 때가 있다. 이게 바로 세월의 흐름인가 싶다가도 나 자신마저 그대로 있어주지 않는구나 하는 생각에 조금은 서글퍼진다.


분명 얼마 전까지 좋아했던 음식이, 책이, 옷 스타일이 그냥 그렇게 느껴지고 호불호조차 없던, 아니 오히려 '굳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괜찮아 보인다. 이래서 열 길 물속은 알아도 사람 마음은 모른다 하는구나. 자신마저도 스스로의 의지로 붙잡아두지 못하는데 어찌 타인에게 함부로 영원과 불변을 말할 수 있을까.


물론 나를 구성하는 근본은 크게 바뀌지 않을 테다. 그 뿌리가 단단하길 바랄 뿐이다. 나라는 인간이 어떤 형태로든 변해가는 과정에서 피워내는 꽃과 맺을 열매가 화려하기보단 그저 향기롭기를.




향기로운 악취


누군가에게 어떤 향기는 악취일 뿐이다. 개인적으로 꽃 내음을 좋아하지만 장미향은 실제 풍기는 향의 농도가 약하더라도 독한 냄새로 느껴진다. 보통 심신의 안전을 꾀하려 일부로 피우곤 하는 라벤더향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개인의 선호란 이렇게 지극히 편파적이다. 얼마 전에는 인센스 스틱을 사용해보았다.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나무 향에 편안함을 느끼다가도 때론 타고 남은 잿더미를 들이마시는 것 같기도 하다. 사람이 들이마시는 냄새는 악취를 품은 향기인 걸까, 아니면 향기로 덮은 악취에 가까울까.


이렇게 취향을 반영하는 선호는 굉장히 확고하게 표출되는데, 때문에 이와 관련된 대화는 무정하기까지 하다. 누군가에겐 더할 나위 없는 향기가 또 다른 누군가에겐 넌덜머리 나는 악취로 받아들여진다는 건 너와 나, 우리의 다름만큼이나 메울 수 없는 마음의 구멍을 투영한다.




흐리게 비치는 세상


대학교 입학을 전후로 시력이 급격히 나빠져 렌즈로 비춘 세상이 아니면 모든 사물이 실루엣으로만 보이기 시작했다. 이제는 교정시력마저도 0.7, 0.8 넘기기가 빠듯하니 더 이상 말해 무엇할까. 주변에서는 더 늦기 전에 라섹이든 라식이든 받아보라는데 아직까지 그 제안이 그다지 끌리지 않는 걸 보니 난 아직 이 흐릿하게 보이는 세상이 싫지 않은가 보다. 이러다 노안까지 오면 내 세상은 흐려지다 못해 흘러내려 문드러지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가끔 렌즈라도 끼고 외출하는 날이면 너무나 선명한 세상에 움찔하게 되는 나를 발견한다. 부드러운 파스텔 톤에서 갑자기 쨍하고 선명한 원색이 뒤섞인 형태가 뭉텅이로 망막에 강제로 내리 꽂힌다. 눈이 부시다 못해 아리기까지 한 빛깔에 시각은 둔중한 통각으로 치환된다.


나에게 세상이란 제대로 보이지 않기에 살만한 곳인가 보다.




구석쟁이

어느 장소에서건 구석에 자리를 잡곤 한다. 눈에 띄고 싶지 않은 아웃사이더 기질이나 기실 밖으로 나갈 일이 있을 때 이동하기 편하다는 이유도 있지만, 구석은 안락함에 가까운 평온을 제공한다.


모퉁이나 구석은 공간의 끝 부분 즉, 막힌 곳이다. 중앙에 가까울수록 사방이 뻥 뚫린 곳에 덩그러니 놓였다는 불안감에 사로잡힌다. 그 불안은 어찌 보면 불쾌함을 닮았다. 방어수단을 잃어버린 짐승은 예민한 본능을 깨워 몸을 숨길 곳을 찾는다. 구석이 주는 안정감은 살아남아 내쉬는 숨결을 움켜쥔 흔적일지도 모른다.




자아실현의 조건


자아실현이란 결국 자신이 하고 싶고, 되고 싶은 무언가를 이룰 수 있는 능력에 달려있다고 본다. 인생에서 능력과 욕망이 일치한다는 건 기적과도 같은 축복일 거다. 그렇기에 우리는 특정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에 열광하며 그들의 그림자라도 좇아가려 한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해보고 싶은 게 참 많았다. 인생에 욕심이 많은데 그 욕심을 따라가지 못하는 능력에 실망하기도 여러 번이었다. 물론 그 도전들이 경험이 되어 내면에 차곡차곡 쌓였음을 부정하지는 않지만 '좋은 경험'으로 남는 것과 '좋은 결실'을 맺는 것은 엄연히 다른 일이라 가끔은 뒷맛이 씁쓸한 것도 사실이다.


하고 싶은 걸 찾는 데만도 정말 많은 시간을 헤맸다. 나름 여러 시도 끝에 내가 좋아하고 사랑하는 삶이 '글'을 다루는 일임을 깨달았다. 이번만큼은 활활 불타올라 종국엔 재로 흩날려버릴 욕망이 아니라, 오랫동안 은은하게 마음을 데워주는 온기로 남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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