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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보 심상메모
04화
찬란한 봄빛에 눈길이 가다
봄날, 꽃과 나무와 풀
by
하이민
Apr 14. 2022
꽃잎등
동네 실개천을 따라 꽃잎이 흘러간다.
투명한 수로는 넘실대며 그새 햇빛을 주워 담아 은하수로 모습을 바꿔 별빛을 흘린다. 별무리 속 꽃잎들은 어지럽게 흩어져 영롱하게 흔들리다가 봄빛 소원을 담아 흘려보내는 꽃잎등이 되었다.
무엇이 그리 간절하여 나고 자란 대지의 따스한 품에서 우수수 떨어져 나와 기어이 제 몸을 던져 떠나가는 것일까. 고운 꽃잎들은 쪼르르 흐르는 물줄기를 따라 이리저리 부딪치고 뭉개지다 결국엔 문드러질 테다.
그럼에도 꽃잎등은 이 계절이 다할 때까지 물결치는 은하수를 비추며 끝나지 않을 연분홍 빛깔 소원을 바친다.
민들레
온기를 머금은 햇살을 받아 초록이 움텄다. 고동색 흙더미에서 새싹 더미가 불쑥 솟아나 꾀죄죄한 제 몰골을 털고 돋아나더니, 어느덧 짙은 녹색으로 뒤덮인 작은 땅 한가운데에 민들레 꽃 한 송이가 샛노랗게 피었다.
파릇파릇하게 자라난 풀들과 눈높이를 맞추려는지 줄기를 길쭉하게 뽑아내지 않고 땅딸보 줄기를 힘껏 받쳐 커다란 꽃송이를 한가득 틀어 올렸다.
외로이 바람에 맞서는 노란 꽃잎은 꿋꿋이 고개를 들어 올려 화사하게 몸을 펼쳐냈다. 짧뚱한 민들레가 뿜어내는 광채에 사방 뿌리를 내린 풀과 나무 이파리들은 푸르죽죽한 얼굴을 붉힌다.
봄날의 찬란한 순간 또는 눈부시게 피어오르는 생명력이란 표현은 이때를 위해 만들어졌나 보다.
소나무
공원 한 편을 차지한 소나무는 봄날을 맞아 더욱 파리한 낯을 치켜들었다. 지난날 하얀 눈을 무겁게 이고 버텨내는 강인한 녹색도 인상 깊었지만, 맑은 날 햇살을 빨아들여 처연한 빛을 발하는 생생한 초록도 꽤나 강렬하게 다가온다.
보통 소나무 하면 사시사철 변하지 않는 푸르름을 떠올리는데, 가끔 언제나 그대로라는 게 과연 좋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옴짝달싹 못한 채 털어내지 못하는 과거를 차곡차곡 쌓아가는 시간이란 고통스럽지 않은가.
봄날에 뾰족한 끄트머리를 더욱 날카롭게 가다듬는 모습이 무한을 닮은 시간 속에서 유일하게 내보이는 감정인 듯 보이는 것은 그저 착각일까. 나는 영원불변한 푸르름을 애도한다.
세 잎 클로버
길가를 걷다 보면 잡초처럼 무성하게 자라난 클로버가 보인다. 세 잎이든 네 잎이든 둘 다 행복과 행운이라는 긍정적인 뜻을 품고 있어 보기에도 참 좋은 풀이다.
개인적으로는 행운보단 행복을 손에 쥐고 싶다. 행운이라 불리는 것들은 보통 평범하지 않은, 때로는 감당하기 버거운 사건을 의미한다 생각하기에. 그 사건이 어떤 방향으로 가느냐에 따라 운의 흐름이 틀어지는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살아가며 마주하는 행운을 온전히 향유할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생각지 못한 행운에 이리저리 휘둘리기만 하다 결국 불운으로 끝맺는 경우를 보면 양날의 검이란 게 이런 건가 싶다. 그렇게 애타게 찾아다니던 행운이란 없느니만 못한 존재로 전락해버리고 만다.
세 잎 클로버는 과장을 조금 보태 발에 채일 정도로 많다. 그러나 세상 일이 그렇듯 그 자리에 자리 잡으려 인고한 시간은 가느다란 풀에겐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었을 터다.
흔해빠진 행복이라니, 이 얼마나 희소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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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감성글
에세이
Brunch Book
조각보 심상메모
02
빛이 가라앉는 순간을 바라보다
03
문득 올려다본 하늘 모양이 달라지다
04
찬란한 봄빛에 눈길이 가다
05
깊어지는 봄볕에 온통 흐드러지다
06
눈을 감자 시간을 보채 달려온 마음이 속살거리다
조각보 심상메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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