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밤이 달을 집어삼키고야 말았다. 빛무리에 까맣게 그을린 구멍을 한층 더 시꺼멓게 벌리곤 한 움큼 베어 물자 새하얀 잔해가 창백하게 번져간다. 희미하게 점멸해가는 빛줄기에 하찮은 별들이 시리게 내쳐진다. 소리 없는 눈물이 흩뿌려져 내리는 하늘길은 부스러기들이 한데 뭉쳐져 질척이는 미련이 되었다.
겨우 닿은 한 줄기 달빛에 숨죽여 반짝이던 것들이 길을 잃었다. 일렁이는 달무리가 허상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단 한 번의 갈망은 다시는 떨쳐낼 수 없는 탐욕이 되었다.
손톱달이 뜬다.
모든 소리를 잡아먹은 까맣고 검은 밤에 제 모습을 잃어버리고만 찬란한 비탄이 뜬다. 그는 일그러진 형체를 부여잡고 무감한 낯으로 별빛 조각을 하염없이 삼켜낸다. 제 몸이 다시 채워질 때까지 반복되는, 끝나지 않을 포식이다.
가로등
사위가 어둑해질 무렵 불투명한 불빛들이 무리를 지어 길을 비춘다. 낮의 하늘을 가득 채우던 햇빛을 박제하면 이런 모양이 될까. 자그마한 불빛은 투명한 유리 새장 안에서 이리저리 어지럽게 부딪히다 어그러진다. 일그러진 빛은 밤새 누르스름하게 희미해진 흔적을 두른다.
차마 사그라지지 못해 꺼져가는 새벽빛에 다시금 하루치 수명이 갈려나간다. 내일도 존재할 수 있는 곳은 까마득하게 침잠한 도회지 구석, 철근과 콘크리트를 이어 붙인 좁은 철창 안이다.
저 높이 솟아오른 불빛들을 전시한 도시의 밤은 낮을 모사하며 차가우리만큼 눈부시게 타오른다.
연무
사방이 짙은 잿빛이다. 헤매던 끝에 다다른 길목은 숨이 턱 막히는 무채색 세상이다.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저 너머의 풍경은 마치 그림 같다. 보고 싶지만은 않았던 장관이기에 더 아득한 것일까.
습기를 잔뜩 머금은 연무는 조용히 숨통을 조여 온다. 그곳에 실체는 없다.
어설픈 눈가림은 결국 어스름한 연기가 되어 흩어진다. 몸을 숨기지도, 가야 할 출구를 발견하지도 못한 채 연기 가루를 들이마셔 본다. 무채색 공기가 폐 속으로 한가득 스며든다. 쪼그라든 형체는 회색 연무 안에서 가는 숨을 몰아쉬며 꼼짝없이 흐려진다.
향초
타닥타닥.
귀를 간질이는 소리와 함께 불그레한 꽃 내음을 닮은 불꽃이 화사하게 피어난다.
바람 한 점 불지 않는 곳에서 일렁이는 촛불은 너울너울 굽이쳐 흘러내린다. 심지를 따라 지워지지 않을 흉터를 남기며 하얗게 익어버린 바다로 가라앉으려 간다.
화려한 향기를 두르고 타오르는 화염은 화르륵 제 몸을 불려 밝음과 붉음을 품었다. 누렇게 질려가는 줄도 모르고 환희에 차 파르르 몸을 떨어댔다. 이윽고 서서히 다가온 새파란 몸부림 끝에 하얗게 질식해가는 색을 띤다. 공기마저 잃어버린 불꽃은 홀로 식어가는 시간이 서러워 독한 연기를 내뿜는다. 꽃 같던 불꽃은 독초로 시들어버리고야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