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하고 있는 당신
여기 두 개의 문이 있다.
하나는 '덜 고통스러운 지옥'.
다른 하나는 '천국으로 향하는 계단' (단, 실패 가능성이 있으며, 상응하는 고통이 따를 것임.)
당신은 어느 문으로 들어갈 것인가?
'덜 고통스러운 지옥 문'은 우리가 아는 통증이 기다리고 있다. 예상 가능한 문제들, 익숙한 고난.
만약 '천국의 계단 문'을 선택한다면, 천국을 향해 나아갈 수는 있지만 계단을 오르는 동안 숨이 멎을 듯한 고통을 마주할 수도 있다.
실패한다면 더 깊고 어두운 지옥이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대체로 첫 번째 문을 열었다.
조금은 두렵지만 익숙한 쪽. 내가 감당할 수 있다고 믿은 길.
그 선택들은 나를 안심시켰지만, 나 자신을 작게 만들었다. 그럭저럭 괜찮았지만, 어딘가 아쉬움이 남는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은 미지근한 날들.
그러한 선택들로 40년 이상을 살아온 나는, 일상이 궤도를 이탈한 어느 날, 느닷없이 후회가 내 살을 파고들었다.
왜 조금만 더 버티지 못했을까.
왜 그때 시작하지 않았을까.
왜 유학을 가지 않았을까.
드라마 빈센조에서 '후회는 현실에서 겪는 가장 큰 지옥'이라 했던가. 한번 시작된 후회는 기회를 놓쳤다는 생각과 이상과의 괴리감에 나를 더 깊고 어두운 고통의 지옥으로 밀어 넣었다.
주식 투자에서도 상대적으로 '덜 고통스러운 지옥'을 택했다. 안전하다고 믿는, 불안하지 않은 쪽을 택한 것이다.
나는 약 20% 수익률에서 자주 매도를 한다. 아마 그게 나의 심리적 마지노선인 것 같다. 출렁거리는 주식 시장에서 20%의 수익이라도 지키고 싶었다.
처음엔 내가 신중하다고 믿었다. 그러나 그것은 불안이 위험을 과장해서 인식하도록 만든 착각이었다. 분할 매도를 했지만, 그 안에는 ‘신중함’보다는 더 큰 불안심리가 자리하고 있었다. 1차 매도한 후 주가가 오르면 조급해졌고, 떨어지면 그 조급함은 공포가 되었다.
기술적 지표도, 수익률 기준도 무시하고 서둘러 나머지를 정리하곤 했다. 결국 '분할 매도'라는 말은 자신을 위로하기 위한 껍데기였을 뿐, 실질적인 이익은 없었다.
수익이 사라질지 모른다는 본능적인 두려움은 연기처럼 퍼지며, 판단력을 흐리게 만들었다.
이번에도 관세 영향으로 급격히 하락한 시기에 몇 개의 종목을 매수했다. 급격히 하락한 주가는 빠른 속도로 상승하였다. '더 이상 욕심부리지 말자. 이 돈이라도 수익 실현하자.'며 매도 버튼을 눌렀다.
시장 상황은 생각보다 괜찮았고 차트는 마치 계단을 오르듯이 차근차근 상승했다.
한참 오른 주식을 보며 자책을 하지만, 어리석은 회귀는 또 반복되었다.
불안은 근거 없이 반응하고, 신중함은 근거를 기반으로 평가한다. 신중한 투자자라면 위험과 이익을 균형 있게 통제한다.
[이성적 판단을 위한 매도 Q&A]
지금 내 판단이 두려움, 손실 회피, 후회 방지 욕구인가?
내가 느끼는 두려움에 명확한 이유와 데이터가 있는가?
매도는 사전에 정한 기준에 근거하고 있는가? (ex. RSI, 수익률, 매물대 등)
분할 매도에 대한 시나리오가 있는가?(ex. 수익률 기준, 기술적 지표 기준 분할 매도 및 비중)
프랑스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는 말했다. '인생은 B(출생)와 D(죽음) 사이의 C(선택)이다.'
젊은 시절 나 자신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한 채 인생의 중요한 결정들을 내려야 했다. 그리고 선택의 무게만큼 내 삶이 되었다.
지금도 나는 두 개의 문 앞에 서 있다.
익숙하지만 고통스러운 문, 혹은 불확실하지만 가능성 있는 문.
어떤 선택을 하든 후회는 늘 따라온다. 하지만 간절히 바란다.
그 선택의 기반이 불안에서 비롯된 도피가 아니라, 조금 더 멀리 내다보는 지혜이기를.
당장의 이익에만 흔들리지 않고, 나를 세우는 디딤돌이 되기를.
그리고 하루하루를 천국을 향한 계단을 딛으며 한 껏 살아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