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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온 May 15. 2021

기다린 시간은 중요하지 않아

  ‘안녕하세요. 공유입니다.

저의 추억이 있는 이곳에 이년 하고도 육 개월 만에 다시 방문하게 되었네요. ‘김종욱 찾기’를 촬영할 땐 무척 더운 여름이었는데 지금은 아주 시원합니다. 촬영할 때 늘 먹던 오믈렛 아직도 있네요. 여러분 오믈렛 맛있게 드시고 건강하게 인도 여행하시길.’                                        – 공유 2012.12.19


  

  

  평소 연예인들에게 별 관심이 없지만 공유만큼은 오래전부터 좋아했다. 이틀 전 바로 여기에 공유가 다녀갔는데 그걸 놓쳤다는 사실에 몹시 개탄스러웠다. 그러나 후에 우다이푸르에서 이는 거짓으로 밝혀졌다. 어느 카페에서 마주친 한국인 여행객들에게 이 이야기를 해줬더니 그중 한 남성분이 “하하하하”하고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거 제가 쓴 낙서예요!” 오랜만에 사람을 때리고 싶다는 생각을 한 순간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공유가 그런 글을 남겼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도 이상하다. 낙서를 한 남자가 괘씸하긴 했지만 사실 공유가 다녀간 게 아니라고 생각하니 덜 아쉽기도 했다.

  

  당일에는 이런 사건의 내막을 알지 못한 채 아쉽게 스쳐 지나갔을 공유를 생각하며 우다이푸르로 가는 버스 정류소에 갔다. 그런데 분명히 그곳에서 탄다고 했는데 버스가 없다. 기다려봐도 오지 않는다. 그냥 기다린다. 기다리다 지쳐 셋 다 배낭을 내려놓았다. 약속이나 한 듯 방수커버를 씌우고 온 우리들의 배낭이 귀여워 보였다. 쪼르르 놓인 배낭의 크기도 도, 미, 미, 실제 세 명의 키 차이도 도, 미, 미.



  이 날도 어김없이 나의 카메라는 자꾸 J를 향했다. 오빠들은 인도 여행을 시작하며 바리깡으로 직접 머리를 깎았다고 했다. 똑같이 반 삭발 머리를 한 그들은 다른 데서 무섭게 생겼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며 “너는 우리가 안 무섭니??”하고 연신 물어댔다. 그럴 때마다 나는 “웃기기만 한데…….”라고 답해주었다.


  얼마나 기다렸을까? 한참이 지난 후에야 드디어 버스가 반가운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왜 늦었냐고 뭐라고 하거나 늦어서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인도에서 정해진 시간표에 맞추어 일어나는 일은 많지 않다. 그것마저도 나는 싫지 않았다. 어느 순간부터 더 이상 시간을 재지 않게 되었다. 인도를 여행하다 보면 기약 없는 기다림에 익숙해진다. 얼마나 기다렸는지 따위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왔으면 됐다. 나는 시나브로 그렇게 적응하고 변해가고 있었다.


  이번에 탄 버스는 2층이 아닌 1층 버스였고, 상태도 전보다 좋았다. 오빠들은 3번, 4번 좌석. 나는 2번 좌석이었다. 버스가 출발하고 뒤를 돌아봤는데 이미 한참 전부터 자고 있었던 것처럼 미동도 없이 눈을 감고 있는 두 사람. 이동 수단에서 잠을 자지 못하는 나는 머리만 대면 잠드는 두 사람이 부러웠다. 그들이 깊은 잠에 빠지자 무료함을 참지 못하고 1번 자리에 앉은 아이와 그 엄마에게 말을 건넸다. 나는 어딜 가든 먼저 말을 잘 건넨다. 친구들은 그런 내게 너는 사막에서도 살아남을 것이라고 하곤 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옆자리 모자는 영어를 할 줄 몰라 대화를 나눌 수가 없었다. 함께 사진만 몇 장 같이 찍고서 신나게 달리는 차창 밖으로 시선을 옮겼다.


  중간쯤 왔을까. 버스가 어느 길가에 멈추었다. 버스기사의 말을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잠시 쉬었다 가는 것 같았다. 사람들이 버스 밖으로 나오며 웅성거리는 데도 오빠들은 깰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그런 그들을 깨워서 버스 밖으로 나왔다. 식당과 슈퍼가 모여있는 길이었다. 간이 휴게소처럼 여러 차들이 쉬어가는 곳 같았다. 화장실을 들러볼까 잠시 생각했지만 아무래도 건물 상태를 보니 무척 더러울 것 같아서 가지 않기로 했다. 그렇지 않아도 밖에서 화장실을 잘 가지 못하는 나는 인도에서 지독한 변비에 시달려야 했다.


  오빠들은 슈퍼에서 과자를 몇 개 사 왔다. 그중에서 우리나라 롯데샌드와 비슷해 보이는 과자를 하나 집어 먹었다. 롯데샌드 맛을 기대했건만 맛은 전혀 비슷하지 않았다. 다른 과자들도 생김새는 썬칩과 다이제를 닮았으나 맛은 그렇지 않았다. 잠시 쉬었던 버스가 경적을 울려댔다. 차에 타라는 말이었다. 다시 열심히 달리다 보니 어느새 하늘이 어둑어둑해졌다. 우다이푸르까지 8시간 정도 걸린다고 했으나 실제로는 10시간이 넘게 걸렸다. 버스는 밤이 되자 정체를 알 수 없는 요란한 노래와 사이렌을 울려가며 광란의 질주를 하기 시작했다. 운전기사 아저씨는 시내에 들어서자 퇴근시간이 다가와서 인지 몹시 신이 나 보였다.



  드디어 도착했다. 밤 9시가 다 되어 가는 시간이었다. 오빠들이 예약해 놓은 숙소가 이번에는 다행히 시내에 있었다. 우선 그들의 방에 짐만 내려놓고 늦은 저녁을 먹기로 했다. 예약한 숙소에 도착해서 예약 확인서를 보여주었다. 그러자 사장이 말했다.

“방이 없어. 너희가 늦게 와서 다른 사람에게 줘버렸어.”

“WH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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