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출할 때 나는 꾸물거리는 편이다. 가족들과 집을 나설 때면 항상 모두 신발을 신은 채로 집 밖에서 나를 기다리곤 한다. 늦지 않고 버스를 타기 위해 전날 밤 짐을 다 싸 두었다. 아침에 일어나 루나에게 인사를 하며 오늘 아침은 짜이를 만들어주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루나와 헤어지는 것이 참으로 섭섭했다. 또 오겠다는 인사를 남기며 나는 자이살메르 성의 입구로 향했다.
버스를 타러 가기 전 정말 마지막으로 저먼 베이커리에서 샌드위치를 사 먹었다. 이 날의 모닝 짜이는 루나 메이드가 아니라 비노드 메이드였다. 비노드, 라파엘과는 전날 저녁에도 같이 사진을 남기고 인사를 한 터라 아침에는 나름 쿨하게 헤어질 수 있었다. 안녕 나의 한국어 교실 제자들.
아쉬운 마음을 한 가득 안고 버스 정류장으로 걸어갔다. 버스 정류장은 성의 바깥에 있었는데 일찍 도착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오토릭샤를 탔다. 버스 정류장에 도착하자 사람들이 꽤나 많았다.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조드푸르행 버스를 찾을 수 있었다. 델리에서 자이살메르로 올 때는 기차를 탔기에 인도에서 버스를 타는 것은 처음이었다. 좁은 버스에 사람이 그득그득했다. 버스는 2층으로 되어있는데 위층은 침대 칸이다. 푹신한 하얀 침대는 아니고, 파란색 간이침대가 있었다. 나는 1층 좌석에 앉아서 갔다. 의자는 매우 불편했다. 차 안이 전체적으로 쾌적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다행히 책에서 읽은 것처럼 닭을 들고 탄 승객은 없었다.
내 옆자리에는 군인 아저씨가 앉았다. 자이살메르에서 복무 중인 아저씨는 조드푸르에 있는 딸과 아내를 보러 가는 중이라 했다. 우리는 잠시 얘기를 나누었는데, 아저씨는 피곤했는지 출발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금세 곤히 잠들었다. 길이 좋지 않고, 버스의 승차감도 좋지 않았다. 승객들이 많아 시끄럽기도 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자는 아저씨가 참 신기했다. 나는 탈 것에서는 잠을 자지 못한다. 가는 내내 창밖의 풍경을 구경했다. 자리를 선택할 수 없었는데 마침 창가 자리여서 좋았다. 자이살메르에서 출발한 버스는 여섯 시간 넘게 달려 조드푸르에 도착했다.
역시나 버스 정류장에는 릭샤왈라들이 가득했고, 만만해 보이는 나를 보자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그 모습을 본 군인 아저씨는 앞을 막아서더니 내게 어디로 갈 거냐고 물었다. 그리고는 한 릭샤왈라에게 힌디어로 나의 행선지를 대신 말해주었다. 나는 릭샤를 타기 전 그와 함께 셀카를 남겼다. 사진을 찍은 뒤 릭샤를 타는 나의 등 뒤로 그는 말했다.
"조심히 여행하세요"
나는 웃으며 말했다.
"단야밧!!(감사합니다)"
얼굴에 웃음기는 전혀 없는 그였지만 마음만은 따뜻한 사람인 것 같았다.
집들이 온통 파란색으로 칠해진 조드푸르는 블루시티라고 불린다. 조드푸르 시내는 정말 공기가 좋지 않았다. 자이살메르는 도시도 작고 공기가 좋은 편이었는데, 조드푸르로 오니 확실히 대도시 느낌이 났다. 릭샤를 타고 달리는 동안 입과 코를 틀어막고 어서 내리기만 기다렸다. 릭샤에서 내리자 저 멀리 블루시티의 상징인 메헤랑가르 요새와 시계탑이 보였다. 그 앞에는 많은 골목 사이로 뻗어있는 시장, 사다르 바자르가 있었다.
우선 해가 지기 전에 숙소를 구해야 했다. 시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몇 군데의 게스트 하우스를 둘러보았다. 저렴하지만 루프탑이 있는 게스트하우스에 묵기로 했다. 자이살메르에서 묵었던 숙소 세 곳도 모두 루프탑이 있었는데 경치를 보며 멍 때리기 좋았다. 조드푸르의 숙소 루프탑에서는 메헤랑가르 요새가 한눈에 보여서 또 다른 경치를 보는 맛이 있었다. 숙소에 짐을 내려놓고 저녁을 먹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
인도에서는 어디에나 소가 활보하고 있다. 자이살메르의 소들은 사람에게 다가오지 않고 바닥에 누워있거나 가만히 서있는 편이었다. 조드푸르의 소들은 도시 소라 그런지(?) 저돌적으로 다가와서 이리저리 피하며 걸어 다녀야 했다. 저녁은 조드푸르의 명물이라는 한 토스트 집에서 먹기로 했다. 한국 토스트와 비슷해서 입맛에 맞았다.
기분 좋게 먹고 숙소로 돌아갔는데 주인아주머니가 기다렸다는 듯 내게 다가왔다. 그러더니 갑자기 내게 헤나를 해주겠다고 했다. 별로 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는데 본인의 집에 묵으니 예쁘게 해 주겠다며 계속 나를 설득했다. 평소 거절을 잘 못하는 나는 얼떨결에 알겠다고 하고 손에 헤나를 받게 되었다. ‘인도까지 왔는데 헤나 한번 해보는 것도 괜찮지. 게다가 그냥 해준다니까 뭐.’ 헤나가 마를 때까지는 시간이 좀 걸려서 나는 왼손에만 받기로 했다. 예쁜 디자인 시안이 있는 것은 아니고 그냥 아주머니 마음대로 막 그리는 것 같았다. 손바닥과 손등에 마구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는데, 조금 징그럽다는 생각도 들었다.
한 10분쯤 그린 것 같다. 왼손이 다 갈색이 되었다. 그런데 그림을 다 그린 그녀는 갑자기 어딘가로 가서 가격표를 가져오더니 내게 100루피라고 말했다.
‘아니 이 아주머니가…….’
그냥 해주는 것처럼 계속 말하고 돈 얘기는 일언반구도 없더니 이렇게 뒤통수를 치다니. J와 S의 표현을 빌리자면 나는 또 눈탱이를 맞은 것이다.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소심해서 싸우거나 뭐라고 하지도 못하고 이미 해버린 거 ‘에라이’하며 그냥 돈을 줘버렸다. 한화로 따지면 사실 2천 원 정도밖에 안 되는 돈이었다. 무엇이든 한국 돈으로 따지고 보면 사실 큰돈은 아니다. 그렇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뒤통수를 맞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 정도는 인도를 여행한다면 비일비재한 일이다.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 메헤랑가르 성으로 향했다. 오디오 가이드를 빌려 천천히 성안을 둘러보고 요새에 올랐다. 성 안에서 음악을 연주하는 군악대 아저씨들을 만났다. 내가 옆에서 구경을 하자 피리를 불던 아저씨는 더욱 신이 나서 연주를 해주었다. 한참 구경을 하고 있는데, 옆에서 인도인들이 다가와 내게 함께 사진을 찍어줄 수 있냐고 했다. 자이살메르에서 한번 겪었던 일이라 알겠다고 했다. 이번에는 악수도 없이 그냥 사진만 찍으면 되니 어려울 것 없었다. 지난번에는 그들의 카메라로만 찍어서 나는 가진 사진이 없는데 이번에는 내 카메라로도 사진을 찍었다.
블루시티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요새 꼭대기에서 한참을 앉아 있었다. 이 날은 공기도 그리 나쁘지 않았고 하늘도 파랬다. 요새 구경을 다 한 뒤 마을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 내려왔다. 그 길을 따라 내려가니 시장이었다. 시장 골목을 걷던 나는 피식 웃음이 나왔다. 저 멀리서 토마토 한 봉지를 손에 들고 J와 S가 걸어오고 있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