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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온 May 14. 2021

여행의 매력

  이내 그들도 나를 발견하고 웃으며 걸어왔다. 시장에서 방울토마토를 한 봉지 샀는데 엄청 싸게 샀다며 자랑을 했다. 반투명한 비닐봉지 속에는 새빨간 방울토마토가 가득했다. 그중에서 유독 더 빨간 토마토를 몇 알 꺼내더니 티셔츠로 쓱쓱 닦아 내게 건넸다. 그리고는 엄청 맛있다며 먹어보라 했다. 단단한 껍질 사이로 달콤한 과육이 톡 터져 나오는 것이 참 맛이 좋았다. 인도에 와서 먹은 과일 중에 가장 맛있었다.

"우와 진짜 맛있다!"

날이 더워서 마침 목이 조금 말랐는데, 덕분에 입안이 상큼하고 촉촉해졌다.


  토마토를 다 삼킨 뒤 나는 그들에게 질문을 퍼부었다.

"언제 왔어? 이제 어디가?"

자이푸르에서 어제 밤늦게 도착한 그들. 지금은 요새를 보러 가는 중이라고 했다. 마음 같아선 함께 가고 싶었지만 싸지 않은 입장료를 두 번 낼 수는 없어서 잘 보고 오라 했다. 그런데 나중에 들으니 내가 내려온 뒷문으로 올라갔더니 입장료 받는 사람이 없어서 그냥 들어갔다고 했다.


  아쉬운 마음에 다음 일정을 물었다.

"저녁은 어떻게 해?"

자이푸르에서 먹은 음식이 탈이 났는지 둘 다 속이 좋지 않다고 했다. 버스도 오래 타고 왔는데 제대로 쉬지 못해서 피곤하다고 했다. 성을 보고 나면 숙소로 돌아가서 쉴 것이고 저녁은 못 먹을 것 같다고 했다.

"이런...... 그럼 내일은?"

다음날 아침 우다이푸르행 버스를 탈 예정이라고 했다. 마침 나도 타려고 했던 버스였다. 자이살메르가 너무 좋았던 탓인지 조드푸르는 별로 볼 것도 없고 정이 가지 않아 다음날 아침 떠나려던 참이었다.


  "숙소는 어디야?"

그들은 인도에 오기 전 호주에서 다음 행선지인 우다이푸르까지 숙소를 미리 예약해두었다. 여행사를 통해서 예약한 것인데 실제로 와보니 숙소 위치가 시내 중심과는 다들 먼 곳에 있었다고 한다. 자이살메르에서도 그랬고, 조드푸르 숙소 역시 요새 근처가 아니라 마을에서 한참 떨어진 곳이라 했다. 지금도 릭샤를 타고 왔다고 했다. 오빠들이 웬만하면 걸었을 텐데 릭샤를 탄 걸 보니 정말 먼 곳인 것 같았다. 어쩔 수 없이 내일 버스 타기 전에 만나자고 했다. 어제 저녁에 먹은 토스트를 맛 보여주고 싶어서 아침으로 같이 먹자고 제안했다.  

"여기 맛있는 토스트집 있는데 아침으로 먹고 같이 버스 타러 가자!"

"그려~"

오랜만에 다시 듣는 충청도 사투리가 정겨웠다. 우리는 다음날 버스 출발 30분 전 시계탑 앞에서 보기로 약속하고 헤어졌다.


  길에서 우연히 그들을 다시 만나게 된 것이 참 신기하기도 하고 기분이 좋았다. 버스 시간표만 알아보고 아직 예약은 하지 않았었는데 당장 버스표를 사러 갔다. 작은 슈퍼 같은 곳에서 버스표를 예매할 수 있었다. 버스비를 건네자 이번에도 자그마한 종이 쪼가리를 하나 받을 수 있었다. 역시나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동전지갑 속에 고이 넣어두었다.  


  조드푸르가 블루시티라고 불리는 것은 마을의 집들이 온통 푸른색으로 칠해져 있기 때문이다. 16세기 브라만 계층이 시바신을 상징하는 파란색을 이용해 집을 칠하기 시작하면서 이렇게 되었다고 한다. 덕분에 메헤랑가르 성에서 내려다볼 때의 전체적인 풍경도 멋있었지만, 골목을 걸으며 조금씩 다른 푸른색의 집들을 하나하나 구경하는 재미도 있었다. 조드푸르 여행의 주연급인 메헤랑가르 요새와 푸른 집들 그리고 사다르 바자르를 다 둘러보고 나니 딱히 더 볼 것이 없었다.


  사실 나는 몰랐지만 한국인들에게 조드푸르는 2010년에 개봉한 영화 '김종욱 찾기'의 배경이 된 곳으로 더 유명한 곳이었다. 여행 출발 3일 전 친한 언니가 보라 고했던 바로 그 영화 속 장소였다. 극 중 임수정과 공유가 머무는 숙소로 촬영한 게스트하우스가 있는데, 그곳은 숙박비가 몇 배는 비쌌다. 길을 걷다 보니 극 중에서 임수정이 쇼핑을 했던 머플러 가게도 보였다. 궁금한 마음에 들어가 보았다. 이것저것 목에 둘러보았지만 임수정처럼 잘 어울리지도 않았고, 평소 목에 무엇을 잘 걸치지 않는 편이라 아무것도 사지 않고 나왔다. 숙소 루프탑에서 풍경이나 보면서 멍 때리려고 해가 지기 전에 숙소로 돌아갔다.


  

  루프탑에 올라가니 먼저 온 다른 투숙객들이 있었다. 에스토니아에서 온 둘의 직업은 사진작가. 그들은 하루에 사진을 20GB씩 찍는다고 했다. 나도 일반인 치고는 사진을 많이 찍는 편인데, 그들에 비하니 아무것도 아니었다. 이 날은 왠지 나가서 식당을 찾아 먹기도 귀찮아서, 숙소에서 대충 먹기로 마음먹었다. 주인아주머니에게 말하니 메뉴판을 가져다주었고, 오믈렛을 주문했다. 사진작가 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그들의 카메라로 사진도 찍고 페이스북 친구도 되었다. 페이스북을 보니 멋진 사진이 정말 많았다. 그들도 음식을 주문해 함께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여행의 매력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누군가 내게 묻는다면 나는 다양한 인연들과 우연히 마주치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한 나라의 이국적인 풍경과 문화를 느끼는 것은 물론 여행의 가장 큰 매력이지만 그건 너무 당연한 이야기니까. 여행을 하지 않았다면 죽을 때까지 만날 일이 없었을 그런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나에게는 커다란 매력으로 다가왔다.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들처럼 저마다 빛나는 이야기를 가진 사람들, 나는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참 좋았다.





  이튿날 아침 일찌감치 체크아웃을 했다. 약속한 대로 9시 30분에 시계탑 앞에서 오빠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이 도착했는데, 밤사이 얼굴이 핼쑥해져 있었다.

"어디 아파??"

그들은 물갈이가 더 심해져서 밤새 설사를 했다고.

"헉.. 토스트 먹을 수 있겠어?"

그래도 여기까지 와서 맛은 봐야 하니 그들은 하나를 사서 나눠 먹고, 나는 혼자 하나를 먹기로 했다. 토스트 집에 도착해 주문을 했다. 기다리면서 보니 토스트 집에도 방명록이 있었다. 잠시 루나를 떠올리며 방명록을 넘기며 읽어보는데 아니, 세상에 이런 일이. 바로 이틀 전 배우 공유가 남긴 글이 있는 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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