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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온 May 07. 2021

내가 사랑한 도시, 자이살메르

  재밌게 웃고 떠들며 걷다 보니 어느새 다시 자이살메르 성에 도착했다. 마침 점심시간이기도 했고, 기차역까지 함께 다녀와준 오빠들이 고마워서 내가 먹어본 식당 중 가장 맛있었던 카레 집에서 한턱 쏘기로 했다. 그곳은 바로 럭키가 소개해준 카레집이었다. 셋이 엄청 배부르게 먹었는데도 만원이 되지 않았다. 무척 만족스러운 식사였다. 식당에서 나와 오빠들은 자이푸르로 가는 버스를 타러 가야 했다. 나중에 또 볼 수 있으면 보자고 말하며 헤어졌다. 여느 여행자들과의 헤어짐과 전혀 다르지 않았다. 언제 다시 볼지 모르는 안녕. 


  떠나는 그들을 배웅하고 나는 버스표를 사러 가기로 했다. 어디에 가서 사야 하나 잠시 생각을 하다가 며칠 전 갔던 인터넷 카페에서 버스표도 팔았던 것이 번뜩 생각났다. 다시 찾은 인터넷 카페 주인은 여전히 기다렸다는 듯이 나를 반겼다. 조드푸르로 가는 버스표를 살 수 있냐고 묻자 그는 무슨 요일 몇 시에 갈 것이냐고 되물었다. 자이살메르에서 조드푸르로 가는 버스는 하루에 6번, 가는 데는 6시간쯤 걸린다고 했다. 다음날 아침 가장 빠른 버스로 예매를 했다. 10시 버스였다. 그는 조드푸르에 아직 한 번도 가보지 않았다며 페이스북으로 사진을 많이 올려달라고 했다. 당시에는 페이스북을 정말 많이 사용할 때였다. 여행을 하면서 만나는 여행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친해지면 페이스북 친구를 맺곤 했었다. 자이살메르에서 지내는 동안에는 성 안의 몇몇 가게 주인들과 페이스북 친구가 되었었다. 인터넷 카페 주인도 포함이다. 생각 난 김에 조만간 비활성화해둔 내 페이스북 계정에 다시 들어가 봐야겠다.


  버스 예약 티켓은 가로 5cm, 세로 3cm 정도밖에 되지 않는 허술한 종이 쪼가리였다. 바람이 조금이라도 세게 불면 금세 저 멀리 휙 하고 날아가버릴 것 같았다. 혹시라도 잃어버릴까 지갑에 고이고이 꽂아두었다. 버스표를 예약하고 나와 마을을 걷고 있었는데, 오드리와 그녀의 남자친구를 마주쳤다. 자이살메르 성은 정말 작아서 조금만 걸어도 이렇게 사람들을 자주 마주치게 된다. 말로만 듣던 오드리의 남자친구를 실제로 보니 더 반가웠다. 푸른색 와이셔츠에 무테안경을 낀 그는 키가 엄청 컸다. 오드리도 나보다 10cm 이상 컸는데, 그는 거의 190cm 가까이 되어 보였다. 내가 다음 날 떠난다고 하자 같이 차라도 마시자고 해서 우리는 또다시 저먼 베이커리로 갔다. 오드리의 남자친구는 자이살메르에서 일하고 있다고 했다. 직업을 묻지는 않았지만 IT 관련 일을 하는 것 같았다. 지금 참여하고 있는 프로젝트가 끝나면 잠시 일을 쉬면서 오드리와 6개월 동안 인도의 다른 도시들을 여행할 계획이라고 했다. 6개월에서 1년을 자유롭게 여행하는 그들이 참 부러웠다. 회사 입사 전에 다녀온 해외여행은 인도가 마지막이었다. 그 후 회사원이 된 나는 1년에 연차가 15개밖에 없다는 사실이 몹시 개탄스러웠다.  


  오드리는 내게 마지막으로 해 질 무렵 호수에 함께 가자고 했고, 나는 알겠다고 했다. 오드리 커플이 떠난 뒤, 나도 자리를 뜨려고 하던 참이었다. 옆 테이블에 있던 서양인 할머니가 끼고 있던 선글라스를 벗으며 말을 걸어왔다.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한국에서 오셨나요?"

"네 맞아요, 한국인이에요. 어디에서 오셨어요?"

"나는 아일랜드에서 왔어요."


  할머니의 이름은 놀린(Noleen). 새하얀 피부와 백발머리 그리고 에메랄드 빛 눈동자가 참 고우셨다. 부드러운 인상, 웃음이 만들어 낸 주름으로부터 그녀가 살아온 날들이 보이는 듯했다. 한국에서 온 내가 너무 반갑다며 그녀는 말을 이어갔다. 놀린의 아버지는 한국전쟁 참전 중에 전사하셨는데 UN기념공원에 안장되셨다고 했다. UN기념공원이라는 말에 나는 놀라 이야기했다.

"저 부산에서 왔어요!!" 

UN기념공원은 부산 대연동에 위치한 곳인데, 6.25 참전 유엔군 전사자들이 모셔진 곳이다. 할머니는 아직 한국에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고 하셨다. 한국에 가면 UN기념공원에 갈 거라고 하는 그녀에게 나는 부산에서 또 만나면 좋겠다고 말했다. 우리는 서로의 이메일 주소를 주고받고, 사진도 찍었다. 전쟁을 책으로만 배웠지 직접 겪지 않아서 사실 UN기념공원이 근처에 있어도 느끼는 바가 크지 않았는데, 놀린을 만나고 나니 기분이 이상했다. 괜히 내가 빚을 진 기분이 들었지만 그녀의 따뜻한 표정은 괜찮다고 말하고 있었다. 비록 놀린을 다시 만나지는 못했지만 그녀와의 짧은 만남과 대화는 여전히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놀린과 헤어진 뒤, 해가 지기 전 마지막으로 마을 한 바퀴를 다시 걸었다. 햇살이 참으로 눈부셨던 오후, 이미 몇 번이나 걸었던 길이지만 이 골목, 저 골목을 

해질 무렵까지 나는 그렇게 걷고 또 걸었다. 내가 사랑한 도시 자이살메르를 눈에 담기 위해서. 




  해질 무렵 오드리와 만났다. 호수에서 노을 지는 하늘을 함께 바라보고 사진도 마지막으로 함께 찍었다. 주홍빛으로 물드는 저녁 하늘마저 완벽한 날이었다. 오드리와의 마지막 산책이 끝나고, 자이살메르에서의 마지막 밤도 그렇게 오고 있었다. 저녁을 간단히 먹고 숙소로 들어갔다. 게스트하우스로 돌아온 나를 루나가 따뜻한 미소와 함께 반겨주었다. 그는 내가 전날 맡겼던 세탁물을 곱게 접어 건네주었다. 칼같이 다림질된 옷과 오랜만에 맡아보는 비누 냄새에 기분이 좋아졌다. 인도에는 대대로 손빨래를 업으로 하는 도비왈라들이 있다. '왈라'는 우리말로 '~꾼', '~장사하는 사람'을 뜻한다. 릭샤꾼은 릭샤왈라, 짜이를 파는 사람은 짜이왈라, 빨래를 업으로 하는 사람들을 도비왈라라고 부른다. 내가 부탁한 세탁물을 루나가 도비왈라에게 맡겼다가 돌려받은 것이다. 받은 세탁물을 내 방 침대 위에 올려두고 나는 곧장 옥상에 올라가 자리를 잡았다. 


  옥상에 올라가니 언제나처럼 루나는 나를 위해 따뜻한 짜이를 가져다주었다. 짙어져 가는 골드시티의 하늘을 바라보며 루나의 보물, 방명록에 인사를 남겼다. 그리고 하늘의 붉은 기가 다 사라지고 검은 하늘에 별이 뜰 때까지 가만히 옥상에 있었다. 이 생각 저 생각을 하는데 나도 모르게 그만 눈물이 났고, 그때 루나가 올라왔다. 그는 눈물을 훔치는 내게 왜 우냐는 질문도, 그 어떤 말도 하지 않고 그저 내 옆을 가만히 지켜줬다. 여행을 많이 다녔지만 이렇게 정이 많이 든 곳은 처음이었다. 쉽사리 다시 올 수 있는 곳이 아니기에 아쉬움이 더 컸던 것 같다. 


  알록달록하게 꾸며진 금빛 도시 자이살메르. 순박한 사람들의 이야기와 웃음소리가 가득했던 자이살메르 성. 성 안의 저먼 베이커리부터 인터넷 카페와 카레집, 오며 가며 인사 나누던 친절한 상인들까지…… 모든 것이 좋았다. 자이살메르를 다시 찾게 된다면 그때도 나는 루나의 게스트하우스에서 묵을 것이다. 나를 따뜻하게 대해줬던 루나의 환한 웃음이, 아침저녁으로 마시던 달달한 짜이가, 옥상에서 들리던 맑은 풍경소리가 무척이나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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