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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온 Aug 07. 2020

수식어가 없는, 날것 그대로의 나

나를 나답게 해주는 시간


우리는 모두가 태어나면서부터 죽을 때까지 원하든 원치 않든 그때그때 삶의 순간에 본인을 수식하는 수식어를 몇 개씩 가지게 된다. 수식어는 사회적 위치나 직함 이런 것이 될 수도 있고 성격이나 행동, 주로 남들에게 보여지는 모습에 의해 정해진다. 그리고 이것들은 언젠가 나도 모르게 나를 정의 내리기도 한다.


나를 수식했던 단어들의 변천 과정을 생각해보면 어렸을 때는 똑순이, 애어른, 착한 막내딸, 뭐든 혼자 알아서 잘하는 아이 그리고 조금 더 자라서는 모범생, 반장/부반장, 시험을 칠 때 마다는 전교 X등 등이 있었다. 대학에 가서는 OO대학교 OO학과 학생이었고, 졸업하고는 OO전자 다니는 딸이 되었다. 회사에서는 싹싹하고 친절한 사원이자 때로는 분위기 메이커이기도 했고, 일을 할 때는 아이디어가 톡톡 튀는 믿음직스러운 김프로 등이 있었다.


우리 주변에는 어느 한 가정의 든든한 대들보 같은 맏아들이라는 수식어와 토끼 같은 자식들을 먹어 살려야 하는 늘 성실한 아버지라는 수식어를 동시에 짊어진 이도 있을 것이고, 누군가의 현모양처이자 조신한 며느리, 그리고 육아와 살림까지 척척해내는 주부 9단 슈퍼맘이라는 수식어를 한 몸에 짊어지고 있는 이도 있을 것이다.


수식어란 때론 무섭다. 누군가, 그리고 주변의 여러 사람들이 나를 그렇게 보고 그렇게 부르기 시작하면 그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혹은 그에 맞게끔 행동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게끔 한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어릴 때부터 항상 집에서나 밖에서나 뭐든 혼자 알아서 잘해야 했고, 누구에게나 싹싹하고 친절해야 했으며, 대기업을 잘 다니고 있는 이 건실한 젊은이는 어느 부서에서 일을 하던 적응도 잘해야 했다. 어쩌면 그 수식어들이 진짜 나를 잘 설명하는 단어가 맞는지 생각해볼 시간도 없이, 어느 순간 나를 그 시점에 바라본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 틀에 나를 맞추며 지내온 건 아닐까.


아마 나도 모르게 정의 내려진 수식어들로 인해 우리는 종종 이런 말을 듣게 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너답지 않게 왜 이래??"


그리고는 반문한다. "나다운 게 뭔데?!"  






모든 말에는 무게가 있고, 힘이 있다. 오랜 시간 어떤 말을 반복해서 듣게 되면 으레 그렇게 생각하게 되고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 당연시 된다.


회사를 다니는 동안 나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부서 이동이 잦았다. 많게는 1년에 2~3번 이동한 적도 있고, 7년의 회사생활 동안 7번 이상 부서가 바뀌었으니 말 다했지. 그리고 그렇게 부서를 옮길 때마다 주변의 많은 사람들에게서 똑같은 이야기를 수차례 들어야 했다.


"OO씨는 어딜 가나 예쁨 받고 잘할 거예요", "거기 가도 하던 대로 잘할 거니까 걱정 안 해~" 물론 힘을 주려는 말, 그리고 응원해주는 말인 것은 다 안다. 그렇지만 나는 이런 내용의 말들을 수십 번 들음으로써 매번 새로운 부서에 가서도 알아서 적응을 잘하고, 예쁨 받으며 일 잘하는 사람이어야 했다. 부서 이동을 하며 마주한 이 느낌, 어디선가 본 듯한 기시감이 들었다.


그 기시감은 나를 어린 시절로 이끌었다. 맞벌이를 하셨던 부모님, 그리고 나이 터울이 꽤 있는 세 자매 중 막내딸이었던 나는 혼자서 해야 하는 일이 많았고 그 결과로 동네 이웃들 친척들로부터 "아이고 똑순이, 혼자서도 알아서 잘하네~"라는 말을 계속해서 들으며 자랐다. 초등학교 6학년 때는 친구들이 이제 중학교에 올라가니 모두들 학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다른 아이들 같으면 엄마 손을 잡고 갔을 텐데 그 나이에 나는 혼자 동네 학원 서너 군데에 찾아가서 원장 선생님과 1:1 상담을 하고 그중 맘에 드는 학원을 선택했다.


덕분에 자연히 독립심과 자립심이 매우 높아졌고, 그 후로 지금까지 집에서나 학교에서나 회사에서나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나는 누구에게도 맘 편히 터놓고 힘들다는 말을 하거나 어리광을 부려본 적이 없다. '혼자서도', '알아서' 그것도 '잘' 해야 했으니까. 습관이 무섭다고, 여전히 나는 많은 대화에서 입버릇처럼 대답한다. "아, 그건 내가 알아서 할게. 걱정하지 마"


중학생이 된 나는 어느 날 혼자 훌쩍 부산에서 밀양으로 기차를 타고 여행을 간 적이 있다. 물론 어린 나이였기 때문에 당일치기로 다녀왔지만, 답답함으로부터 떠나는 것을 본능적으로 깨닫고 실행에 옮겼던 것 같다. 이 날의 떠남이 내 혼자 하는 여행의 시작이었다.   


 






나는 여행을 좋아한다. 그것도 혼자 하는 여행을 좋아한다. 국내는 물론이고, 유럽의 여러 나라들 그리고 인도까지 혼자 여행했다. 사람들은 그런 나를 보고 항상 물었다. 왜 혼자 여행하냐고, 혼자 다니면 심심하거나 무섭지 않으냐고. 같은 질문을 매번 받다 보니 늘 깊은 생각 없이 앵무새 같은 대답을 하곤 했다. "그냥 뭐 일정 맞추기도 어렵고, 혼자 가는 게 편하더라고요."


2년 전, 여러 가지 시련을 동시에 겪었던 나는 정신적으로 정말 바닥을 찍었다. 그렇지만 그 당시 나는 가족에게조차 힘들다고 말할 수 없었고 심리상담센터의 문을 두드렸다. 평소 누구에게도 깊은 속마음을 잘 터놓지 않던, 때때로 나 자신에게 조차 감정을 속여오던 내가 처음으로 상담을 하며 내면에 있는 생각과 감정을 그리고 눈물을 모두 쏟아내었다. 그리고 내가 왜 그토록 혼자 여행하고 싶어 했는지를 깨닫게 되었다.  


혼자 여행하면 나는 수식어가 아무것도 없는 날것 그대로의 내가 될 수 있었다. 페르소나를 벗어던지는 것이다. 그것도 아주 멀리. 여행지에서 만난 이들은 이전의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모르기 때문에 그 틀에 맞추어, 선입견을 가지고 나를 바라보지 않는다. '그 순간 그곳에 있는 나'만 오로지 나인 것이다. 그저 나답게, 아무 수식어 없는 나로 존재할 수 있기 때문에 혼자 하는 여행에서 더없는 자유를 느꼈다.


 

또한, 혼자 여행했지만 나는 실로 혼자인 적은 거의 없었다. 날것의 내가 그렇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원래도 밝고 쾌활한 성격이 여행을 하면 더욱 흥이 넘치는 사람이 된다. 흥부자가 된 나는 여행 중 마주치는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 웃으며 말을 건넸다. 버스에서도 비행기에서도, 유럽의 한 궁전 앞에 길게 늘어선 줄 속에서도 옆사람과 앞사람에게 말을 걸고 친구가 되었다. 그저 그 순간의 나만, 서로 아무런 선입견 없이 바라 보고 친구가 될 수 있는 그 시간이 더없이 좋았다. 물론 먼 나라의 이국적이고 아름다운 풍경을 보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는 것만으로도 여행의 의미는 부족함이 없지만, 날것의 나로 지내는 그 시간이 너무 자유롭고 행복해서 나는 늘 그렇게도 여행을, 떠남을 갈구했던 것 같다. 어쩌면 그 떠남은 '수식어가 있는 나'로부터 떠남이 아니었을까.








인생을 살아가며 나를 형용하는 수식어를 갖게 되는 것은 사실 필연적일이며 수식어가 하나도 없는 삶 또한 행복하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언제나처럼 우리는 균형을 찾아야 할 것이다. 남들에게 보여지는 나의 페르소나와 진짜 나 사이에서. 그렇기에 나는 앞으로도  나답게 만드는 시간을, 혼자 여행하는 시간을 계속해서 가질 것이다. 



여행이란 우리가 사는 장소를 바꿔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생각과 편견을 바꿔주는 것이다
- 아나톨


여행은 다른 문화, 다른 사람을 만나고 결국에는 자기 자신을 만나는 것이다.
- 한비야


여행은 당신에게 적어도 세 가지의 유익함을 줄 것이다.
첫째는 타향에 대한 지식이고,
둘째는 고향에 대한 애착이며,
셋째는 자신에 대한 발견이다.
- 브하그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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