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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온 Oct 24. 2020

나 잘살고 있는 걸까?

오랜만에 퇴사 이야기예요. 백수가 과로사한다더니 요즘은 읽고 싶은 책도 하고 싶은 일도 너무 많고, 생각으로 가득 찬 하루를 보내다 보니 시간이 엄청 잘 가는 것 같아요.


회사를 다닐 때랑은 정반대네요. 그때는 하고 싶은 것은 오직 세 가지, 퇴근과 퇴사 그리고 휴가였어요. 책도 많이 읽지 않았고, 생각도 많이 하지 않았죠.


출근해야 하니까 출근을 하고, 회의가 잡혀있으니 회의를 합니다. 점심시간 맞춰서 밥을 먹고, 자연스럽게 혹은 기계적으로 다음 코스로 이동해 줄을 서서 커피를 마십니다. 자리에 와서 할 일들을 하나둘씩 쳐내기 시작해요.

동분서주하다 보면 어느덧 저녁시간. 저녁을 먹고 다시 돌아와 일을 마무리하고 퇴근을 합니다. 그렇게 안 가던 시간이 집에만 가면 순삭이죠. 별거하지 않아도 금방 두세 시간이 지나고 이제 잘 시간이에요.


이따금씩 이렇게 기계적이고 반복적으로 생활하며 생각 없이 지내는 내 모습을 마주하는 게 싫었어요. 퇴근 후와 주말은 물론이고 점심시간도 활용해서 자기 계발과 취미생활도 즐겼지만 늘 마음 한편에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이 느껴졌어요.


'시간을 보낸다'라는 표현이 있죠. 그런데 회사에 있으면 내 삶에서 그 시간이 송두리째 어디론가 사라지고 있는 것 같이 느껴졌어요. 돌아보면 그 속에 나는 없었던 하루가 많았어요. 내 진심이 담기지 않은 일이었기 때문이죠.



현타가 주기적으로 찾아왔어요.


'나 잘 살고 있는 걸까? 내가 원했던 삶은 이런 게 아닌데...'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현타가 찾아오는 주기가 짧아졌죠. 며칠 전 다른 브런치 북에 일의 의미에 관한 짧은 글을 썼는데 일부를 빌려올게요.  


'일의 의미'를 찾고 싶어 고민하는 내게 주변 사람들은 일에 의미를 두지 말라고 조언했다. 회사는 그냥 월급 받는 곳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고. 퇴근 후와 주말에 원하는 일을 하기 위해 돈을 버는 곳으로만 생각하라고 말했다.

요즘같이 취업의 문턱을 넘기도 어렵고, 먹고살기도 어려운 시기에 '일의 의미'라는 단어는 대단히 사치스러운 단어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의미 있는 일을 찾고 싶었고 하고 싶었다.


현타가 올 때마다 치열하게 고민했지만 쉽게 답을 내릴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어요. 업무와 사람들에 치여 바삐 지내다 보면 어느새 시간이 훌쩍 지나버리고 정신을 차리면 또 현타가 오기를 반복했어요. 마치 바이오 리듬처럼요.


이름만 들으면 모두가 아는
회사를 다닌 다는 것?


나쁘지 않아요. 당연히 좋죠. 한국뿐만 아니라 외국에서도 누군가 무슨 일 하냐고 물어보면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되었어요.


근데 '나 = 회사'는 아니잖아요. 회사의 명함이 없는 나는 어떤 사람인가요? 회사는 성장하는 글로벌 초일류 기업이라는데 나는 성장하고 있는가? 회사의 가치가 아니라 나의 가치는?


직장인이라면 한 번쯤 자신이 마치 기계의 부품 같다는 생각을 해봤을 것 같아요. 큰 회사일수록 더더욱 심하죠.  때론 부품도 아니라 톱니바퀴의 작은 한 톱니 같다는 생각도 했어요.


결국 '나'라는 톱니가 돌아감으로써 회사라는 거대한 기계는 돌아가고 성과가 나오지만, 나는 제자리에서 톱니바퀴만 돌리고 있는 거였어요. 꼭 내가 아니어도 되고 언제나 갈아 끼워질 수도 있는게 부품이고요.


회사가 거대한 유리온실 같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어요. 더운 여름이면 에어컨이 빵빵해서 추울 정도였고, 추운 겨울이면 온실처럼 따뜻했죠. 아침부터 밤까지 건물 안에 있다 보면 계절과 날씨를 느끼기 어려운 적도 많았어요.


실제 기온뿐만 아니라 삶의 온도도 잘 느끼지 못하고, 멋들어진 유리온실 속에 만들어진 생태계에서 살았던 것 같아요. 온실 속 화초, 우물 안 개구리였죠.


쾌적한 온실에서 밖으로, 우물 밖 세상으로 나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저 사는 대로 생각하는 게 아니라 생각하는 대로 살아야겠다고 다짐하면서요.




글. 사진 : 나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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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이야기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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