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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참외맛식혜 Oct 02. 2023

영국에서의 삶, 어때요?

영국에서 동성애인과 함께 하는 'Co-habiting'

“영국에서의 삶 어때요?” 주변인들과 나눈 영국에 대한 10문 10답.  


Q1. 한국에 있는 친구들 보고 싶지 않나요?


A: 엄청 보고 싶습니다. 가끔 한국에 가는 꿈을 꿀 때가 있는데 친구들도 종종 등장해 저와 함께해 준답니다. 한국에 가게 된다면 친한 사람들과 옹기종기 모여서 떡볶이 먹으며 수다 떠는 그런 저녁을 보내고 싶어요.


Q2. 영국에 있는 당신이 보고 싶어요!


A: 저를 만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은 메시지 보내는 것, 영상 통화하는 것, 그다음으로 영국에 보러 오는 것! 보러 오겠다고 약속하신 분들, 저는 잊지 않고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Q3. 영국을 떠나면 제일 그리울 것 같은 게 무엇인가요?


A: 매번 지루하고 할 게 없다고 투덜거려고 막상 이곳을 떠나면 그 여유가 가장 그리울 것 같아요. 밤 8시만 되면 모든 가게들이 문을 닫고, 밤 10시면 침대에 누우며, 일요일에는 집에서 시간을 보내는 그런 생활. 한국인이어서 ‘불편하다’고까지 느꼈던 그런 여유가 있기에 영국 사람들이 스스로를 돌볼 시간이 있고 서로에게 더 친절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내년에는 한국에 갈 수 있다는 생각을 하는데, 서울에 있는 부모님 집에 돌아가면 그 빠른 속도에 벙쪄 있을 스스로가 벌써 상상됩니다.


Q4. 잉글랜드에 살면서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등과의 지역 갈등 혹은 지역감정이 와닿을 때가 있나요?


A: 이 질문에 대한 배경을 먼저 설명드리고 싶어요. 영국에는 총 4개의 지역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북아일랜드, 웨일스)이 있는데 역사적으로 각자의 기후, 지형, 사람, 문화 등이 매우 다릅니다. 지금의 영국은 잉글랜드가 나머지 지역들을 병합해 하나의 국가로 만든 것이죠. 잉글랜드 맨체스터에 살면서 지역적 차이를 가장 많이 느끼는 순간은 그들이 사용하는 역양을 들을 때입니다. 작은 동네마다 역양이 다르다고 할 만큼 같은 영국 영어라도 차이가 분명한데요, 아직 모든 역양에 익숙한 것은 아니지만 런던, 리버풀, 아일랜드, 스코틀랜드 사람들과 대화할 때면 ‘뭔가 다르다’라는 생각이 스칩니다. 한때 이들 사이에 갈등이 심했던 역사도 있지만 지금까지 눈에 띄는 일은 없었고, 영국 내에도 지역 이동이 워낙 다양하고 이제는 ‘영국인’이라는 범주가 이민 등으로 인해 매우 넓어졌기에 서로의 차이에 집중하기보단 서로를 이해하는 것이 다들 습관이 된 듯합니다.    


Q5. 평균적인 영국인들의 제일 큰 삶은 목표 또는 목적은 무엇인 것 같나요?


A: 정말 단순하게 한 단어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휴가. 보통 회사에 출근하면 가장 많이 하는 대화가 “오늘 날씨 정말 별로다”, “점심시간에 뭐 먹을 거야?” 그리고 “혹시 휴가 계획 있어?”입니다. 한국보다 연차가 1.5배에서 2배 정도까지 많기 때문에 여름과 겨울에 2주씩 길게 휴가를 가는 것은 물론이고 중간중간에도 별다른 이유 없이 일주일 씩 쉬고 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제가 느낀 바로는 많은 영국 사람들이 직업적 성취를 바라고 스스로를 갈아넣기 보다, 하고 싶은 것을 하고 휴가를 가기 위해 일하는 것 같아 보였습니다. 일보다는 자신이 먼저인 사회 분위기에 맞춰 저도 여행을 많이 다니고 있답니다.    


Q6. 영국에 도착하기 전 가졌던 기대에 가장 잘 부합한 것은, 그리고 가장 크게 저버린 것은 무엇인가요?


A: 퀴어로 산다는 것에 대한 기대감이 컸던 것 같아요. 지역에 따라,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아직까지 한국에서는 퀴어로서 온전하게 자신을 드러내는 생활을 생각하기 어렵잖아요. 길거리에서 손을 잡는다거나, 주변에 애인을 소개한다거나 하는 것들. 그리고 퀴어들이 많이 모여사는 맨체스터이기에 더더욱 이런 기대감에 부응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주변에 퀴어인 직장동료나 친구들이 정말 많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의 성향을 얘기하는데 어려움을 느끼지 않아요. 그리고 모른 사람을 지칭할 때 젠더중립적인 표현을 사용하려거나 굳이 상대방을 (이성애자로) 단정 짓지 않으려고 조심하는 화법이 생활화되어 있는 것도 너무나 신기했습니다. 한국에 돌아가면 퀴어에 대한 스트레스를 다시 느끼게 되겠죠? 슬프네요.


반면 생각했던 것보다 일상은 굉장히 단조러워졌어요. 서울에 살 때처럼 신상 카페를 찾아다닌다거나, 새로운 전시를 보거나 하는 재미는 많이 없어졌죠. 영국이라는 나라 자체가 빠르게 변화하지 않다 보니 막상 도시가 익숙해지고 나니 이제 밖에서는 별로 할 게 없더라고요. 물가도 워낙 비싸서 외식을 자주 하기도 어렵고요. 그래서 영국 사람들이 다 집에서 밥 해 먹고, 홈파티하고, 가드닝 같은 취미에 열중하나 봐요. 이런 안정감이 고맙다가도 너무 지루해지면 글을 쓰거나 여행을 가는 등 저를 즐겁게 할 무언가를 찾아 나섭니다.  


Q7. 만일 영국을 떠나 다른 곳에 산다면 어디에서 살아 볼 마음이 있나요?


A: 아이러니하게도 요즘은 애인이랑 한국에서 같이 사는 삶에 대해 자주 생각해요. 집 근처에 매주 드립커피 마시러 다녔던 카페도 가고 싶고, 바람맞으면서 걸었던 고궁이나, 갈 때마다 너무 많이 시켜 다 못 먹었던 삼청동의 짜장면도 그립습니다. 이곳들 다 가려면 귀국해서 당분간은 엄청 바쁘겠네요.

3개월 잠깐 살았던 이탈리아의 밀라노도 제가 너무 좋아하는 도시이고, 프랑스어를 공부해서 캐나다의 몬트리올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도 가끔 합니다. 아직 살 날이 많이 남았으니 여기저기 다녀볼 수 있겠죠?   


Q8. 애인과 결혼할 생각이 있으신가요?


A: 한 해가 지날수록 ‘결혼’에 대한 저의 생각이 계속 바뀌고 있어요. 어렸을 때는 디즈니 공주처럼 백마 탄 왕자를 만나서 결혼해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고 싶었는데, 이제는 결혼을 국가 제도로 접근하게 되고 여기서 내가 얻을 수 있는 이득이 무엇인지 따져서 결정하고 싶습니다. 사실 나와 전혀 다른 사람과 법적으로 묶인다는 부담감이 너무 커서 지금은 결혼을 하고 싶은 생각은 없고요, 혹시나 영국에 더 있어야 한다면 법적인 파트너로 결합할 가능성은 고려하고 있습니다. 영국은 한국과 달리 파트너십 제도가 있어서 결혼 이외에 다양한 형태의 가족 결합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물론 비자도 나오고요. 그래도 가능하면 좋은 직장을 얻어 저 혼자 비자를 해결하고 싶은 바램입니다.


Q9. 영국에서 살기 전 본인이 얼마나 ‘한국적’이라고 생각했나요? 또는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왔나요? 영국에서 살게 된 이후로 ‘한국적’ 또는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에 대해 재정의할 기회가 있었나요?


A: 첫 번째에 대한 대답은 ‘아니요’.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한국인으로서,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이 갑갑하게 느껴질 때가 많았습니다. 나이, 상황, 장소에 따라 ‘이래야 한다’라고 규정받는 느낌이 항상 들었고, 어느새 나도 그런 눈치를 주고 있었죠. 그게 싫어서 해외로 자주 나가며 내가 자라온 환경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재밌는 게 영국에 살면 살 수록 내가 얼마나 한국인인지 깨닫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바람 불고 날씨가 추워지는 요즘에는 전기장판이 필수이고 아침마다 한인 마트에서 산 유자차를 마십니다. 기운이 없으면 어머니가 사다 주신 홍삼 엑기스를 꺼내고, 집에서 밥 해 먹을 때 일주일에 4번은 한국 음식을 만들어 먹습니다. 이십몇 년간 제가 반복적으로 경험하고 행동했던 것을 한 번에 바꿀 수는 절대 없는 것 같아요. 오히려 떨어져 있을 때 더 강하게 끌리는 것 같기도 하고요. 지금은 내가 ‘한국인’이라는 점에 대해 받아들이고 있어요. 영국 생활 초반에는 하루빨리 영국인으로 거듭나 이 나라에 안착하고 싶었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니 수많은 국적과 문화, 사회가 만나 영국이라는 나라도 천천히 변화하고 있었고, 더욱이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이 저를 온전하게 그리고 특별하게 만들고 있더라고요. 답답한 일처리에 속 터질 때 “아, 네가 한국인이라 그래”라며 내려놓을 수도 있고, 누가 시키지 않아도 남들보다 열심히 일하는 스스로의 모습에서 한국인의 장점을 찾기도 합니다. 


Q10. 피시 앤 칩스 정말 맛이 없나요?


A: 저는 맛있어요,라고 말하면 거짓말이 되는 건가요? 갓 튀긴 대구살 옆에 감자튀김을 가득 올리고 식초를 뿌려 마요네즈에 찍어먹는 그 맛이 나쁘지 않고 특히 영국의 맥주와 궁합이 좋습니다. 그리고 항상 양이 많이 나오기 때문에 거의 유일하게 다 먹지 못하는 음식이기도 하고요. 그 맛이 그리워서 몇 달에 한 번씩 먹고 있지만 사실 한국 가면 그립진 않을 것 같네요. 떡볶이 국물에 찍어먹는 고구마튀김이랑 김말이가 훨씬 더 맛있습니다.     


이 글을 쓰는데 큰 도움을 준 세정, 휘재, 서윤, 아현, 그리고 원화에게 감사 인사 전합니다. 


출근길마다 보지만 그래도 특별한 이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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