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편은 전생에 나라를 3개쯤 구했겠지?
첫 수업이 시작되었다.
낯선 얼굴들 사이, 강의실 한가운데에 화려한 외모의 수강생이 앉아 있었다. 그녀는 새하얗고 빛나는 피부, 긴 웨이브의 갈색머리, 마치 연예인 고현정을 연상케 하는 그런 외모였다. 그렇게 우리의 첫 만남은 시작되었다.
부모코치 기본수업과 심화과정 내내 그녀는 적극적이고, 활발했다. 그녀의 첫 이미지는 연예인, 마지막 이미지는 무수리였다. 그녀 자신의 말을 빌리자면 무수리...
우리는 그녀의 친밀감으로 인해서 6개월 동안 친분이 많이 생겼고, 종강한 이후에는 그녀가 자신의 집으로 심화과정을 같이한 수강생들을 식사에 초대하였다.
깜짝 놀랐다.
집안 꾸며놓은 것도, 차려 놓은 음식도, 마치 연예인 집 같았다. 태어나서 그렇게 깨끗하고 예쁜 집은 처음이라 어리둥절하고 있는데, 손수 차린 음식은 마치 파인다이닝에 온 듯한 느낌이었다. 맛은 두 말하면 잔소리. 요리를 몇 년간 배웠다고 했다. 그렇게 럭셔리한 대접을 받고 차 한잔을 하면서 우리는 이런저런 담소를 나누었다.
내가 말했다.
"첫인상은 연예인인데, 와 보니 완벽한 살림꾼이네요! 솔직히 저는 외모만 열심히 꾸미고 집안일 같은 건 전혀 하지 않을 거라고 예상했는데 반전이네요! 언제 몸매관리 피부관리하고, 언제 살림해요? 잠은 언제 자요?"
그녀가 고백하듯 말했다.
"저는 새벽 5시에 남편 출근 전에 일어나 밥상을 차려요. 남편은 한식을 좋아해요. 그래서 오늘 아침은 어젯밤에 직접 만든 순두부로 찌개를 해 줬더니 너무 잘 먹고 가더라고요. 그다음엔 아들을 위해서 아침상을 차려요. 오늘은 스테이크를 먹고 싶다기에 직접 해서 먹이고, 학교에 데려다줬어요. 그러고 나면 오후 5시까지는 저의 세상이에요! 저는 이렇게 가족들 밥 챙기고, 집안일 마치고 나면 제 마음이 아주 좋아요!"
아주 의외의 대답에 같이 있던 분들도 그녀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이렇게 열심히 살게 된 계기라도 있는지?"물었다.
그녀가 대답하기를,
"신혼 초부터 남편이 너무 바빠서 함께 할 시간이 없었고, 늘 혼자 아이 키우고 그랬어요. 그러다 보니, 우울증 증상까지 있었어요. 어느 날 남편이 나쁜 일 하는 것도 아니고 가족들 먹여 살리느라 저렇게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주말도 없이 일하는데 아이처럼 징징대지 말고 내 생활을 알차게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내가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겠다 생각했어요. 나의 관심사, 잘하는 것 등 나를 알아가는 작업들을 하면서 몇 가지 알게 되었어요. 내가 가장 행복할 때가 가족들에게 주부로서 봉사했을 때였고, 다음이 저를 꾸밀 때 더라고요. 저는 예전에 패션모델이었고 그래서 그런지 화려하게 옷 입고 자신을 꾸미고 다닐 때가 기분이 좋아요. 그래서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으려면 일단 가족들 밥 잘 챙기고 다음 집안일 깔끔하게 해 놓고, 친구들 만나 쇼핑하고 폭풍수다 하면서 즐겁게 지내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럼에도 가끔은, 일하는 여성들을 보면 괜히 부럽고 제 자신이 못난 사람 같아 보이기도 했어요. 제가 콤플렉스가 하나 있었는데, 그건 고졸이라는 학력 때문에 늘 위축되고 자존심 상하고 그랬어요. 그래서 영어공부도 해보고, 자격증 공부도 해보고 그랬는데, 아니더라고요! 책을 보면 10분 안에 자요. 하하하. 행복하지 않았어요. 전 도저히 앉아서 하는 공부는 맞지 않거든요!! 그래서, 그때 생각했죠! 난, 나대로 살아야겠다. 내가 잘하고 행복해하는 거 하고 살아야지 하면서 요리를 배우기 시작했고, 요즘은 인스타를 하면서 나름 유명인이 되어 있어요."
일동 박수를 치며 그녀의 말에 호응해 주었다.
"와! 생각이 멋지시네요."
그녀는 이어서 말하길,
"제가 포기할 수 없는 것은 쇼핑과 피부과 시술, 운동인데, 이 모든 것은 돈이 있어야 가능한 거잖아요? 그래서 저에게 최면을 걸었어요! 남편 얼굴은 새벽에 잠깐 보는 게 다지만 서운해하지 말자! 열심히 돈 벌어서 갖다 주니 내가 이렇게 누리고 사는 거잖아. 난 진짜 행복한 거야!! 복 받은 거야!라고. 10년 전쯤부터 생각을 이렇게 바꿨어요."
"그래서 저는 가정을 출퇴근하는 직장처럼 생각하기로 했어요. 책임감과 의무감을 다하고, 나의 개인적인 성장을 위한 일이 가사이고, 이 일로 돈을 벌고 있다고 생각하기로 했어요. 남편한테 매달 용돈과 생활비 받으니, 그걸 월급 받는 거라고 생각하기로요. 그렇게 생각을 바꾸고 나서는 자존감이 많이 올라갔어요. 놀고먹는 여자가 아니라, 외모만 꾸미고 다니는 여자가 아니라, 직장생활을 열심히 하고 있는 여자라고 생각하기로요."
"저 월급 받는 여자예요!"
"새벽 5시에 일어나서 일하고, 중간 휴식하고, 저녁에 또 출근해서 마무리 일하는 여자"
거기에 있는 사람들도 다들 신선한 충격을 받은듯했다.
자신이 처한 환경에서 관점을 달리해서 행복을 찾고 있는 그녀가 더 빛나고 아름다워 보였다.
자신의 장단점과 남편의 특성을 정확히 파악했기에 가능한 일... 관점의 전환이 불러온 행복이었다.
집안일 손도 안 대고 늘 지저분한 우리 집이 생각나고 열심히 일해서 돈 벌어다 주는 남편이 생각났다. 그 집 남편은 전생에 나라를 3개 구한 사람이고, 우리 남편은 전생에 나라를 3개 팔아먹은 사람 같은 이 느낌은 뭘까?
오늘도 미안하고 고맙네.. 또 잘해야겠다는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