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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소원은 딸이랑 마트에...

부모역할 늦은 나이는 없다

by 알로하 바람 Mar 19. 2025

    

건강가정지원센터의 강의는 주로 센터 내 강의장에서 진행된다. 가끔은 교육청이나 어린이집 같은 곳으로 출강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번에는 ‘찾아가는 부모교육’이었다. 관내 아파트 단지에서 일정 인원 이상이 모이면 진행되는 영유아 부모교육. 강의 장소는 아파트 단지 내 다목적실.

  

저녁 7시, 주 1회씩 총 3회기로 진행된 강의였다. 삼삼오오 모인 사람들 사이에서 서로 아는 얼굴들이 있었는지 강의 시작 전부터 분위기는 왁자지껄 활기찼다. 그런데 그중 한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60대쯤 되어 보이는 한 여성분. 처음엔 손자, 손녀를 돌보기 위해 오셨겠거니 생각했다.   

  



강의가 시작되기 전, 오리엔테이션 시간. 그녀가 조심스럽게 말씀하셨다.


“저는 60대 중반입니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 집에 오는데, 이런 교육이 있다고 해서 용기 내어 왔어요. 사실... 우리 집은... 막내딸이 서른이 넘었는데, 집 밖을 나가지 않은 지 10년 가까이 됐어요. 저는 한 번도 부모교육 같은 걸 받아본 적이 없어요. 혹시... 들으면 좀 나아질까 싶어서요. 제 사연을 다 말씀드릴 순 없지만, 아이 어릴 때 제가 많이 잘못했어요.” 그분은 끝까지 말을 잇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3회기 수업은 부모 양육 태도, 교류분석 이고그램, 아동 행동 심리에 관한 내용으로 수업이 진행되다 보니 부모 자신의 모습을 많이 볼 수 있는 수업이다. 특히 교류분석(TA)은 대인관계와 자아상태에 관한 심리 이론으로 어린 시절 부모로 부터 받은 영향들이 현재 삶의 모습에서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도 알 수 있고, 부모자아, 성인자아, 아동자아가 관계 속에서 어떻게 기능하며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도 보여준다.  이러한 내용의 수업이 거듭될수록 수강생들은 부모인 자신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나는 내 수업시간에 오시는 수강생들에게 '이것만은 꼭!'이라고 당부하는 것이다.

수업을 듣고 지난날을 후회하기도 하고 반성하기도 하고, 새로운 지식과 깨달음을 얻고 기뻐하기도 하고, 앞으로 어떻게 하겠다는 다짐도 하지만, 대부분 집으로 돌아가서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나면 다시 예전의 습관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 그래서, 첫 시간과 마지막 시간에 꼭 당부드리는 것은 많은 것을 가져가기보다 그중 딱 한 가지 선택하셔서 이것만은 반드시 실천하겠다고 다짐하는 것을 정하고 100일만 실천해 보라는 것이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한 가지!




마지막 3회기 수업이 끝난 후, 나는 60대 수강생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지금 마음이 어떠세요?” 그녀는 한참을 망설이다 조용히 입을 열었다.   

  

“딸에게 그저 미안할 뿐입니다. 사느라 힘들었고, 그땐 저도 철이 없었어요. 아이가 짐처럼 느껴졌어요. 원치 않은 아이였거든요. 그 어린애를 평생 원망하며 살았어요. 남편도 없이 혼자서 아등바등 살면서, 없는 살림에 대학까지 다 보내줬는데, 저러고 사니까... 그런데 수업을 듣고 나니, 제가 정말 나쁜 엄마였어요.” 그녀는 결국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브런치 글 이미지 1



나는 조용히, 그리고 천천히 얘기했다.

“많은 부모들이 그땐 최선을 다 한다고 하지만, 돌이켜보면 미숙했고, 어떻게 사랑하는지도 몰랐고, 내 마음 감당도 안되고, 그렇게 그렇게 버티며 살아온 것 같아요. 지나고 보니 미안한 마음이 드는 게 부모마음인 거죠. 그렇다면 지금, 따님에게 어떻게 해주고 싶으세요?”


그녀는 흐느끼며 대답했다.

“이제라도 보통의 엄마처럼 살고 싶어요. 따뜻한 밥 차려 놓고 출근하고, 마음으로 용서를 빌며 살고 싶어요. 100일 아니라 1000일 하겠습니다.”     


그녀의 옆에 앉은 수강생들이 조용히 그녀의 손을 잡아주었다. 누군가는 등을 토닥이며 따뜻한 위로를 건넸다.     




나는 말했다.

“그래요. 그 마음이 가장 중요해요. 아침밥을 차려 놓을 때, 진심을 담은 손 편지를 써보는 건 어떨까요? 그리고, 어리고 힘들고 아팠던 ‘엄마 자신’도 용서해 주세요. 그때 정말 애썼다고, 정말 힘들었을 텐데 잘 견뎠다고.      


그리고, 딸 마음이 10년 동안 닫혀 있었다면, 그 마음을 열려면 앞으로 10년은 노력해야한다는 마음으로  포기하지 마세요. 그렇게 진심으로 노력하다 보면 반드시 바뀌어요!


딸이 다시 태어난 신생아라고 생각하시고, 그동안 못해 준 사랑을 듬뿍 주세요.

그저 사랑하세요.”     

잠시 침묵이 흘렀다.


나는 마지막으로 물었다.

“만약 따님과의 관계가 회복된다면, 제일 하고 싶은 일이 뭐예요?”     


그녀는 갑자기 눈물을 펑펑 흘리며 꺽꺽 울며 말씀하셨다.



“딸과 마트에 가서 장을 보고 싶어요. 다른 사람들에겐 평범한 일이지만, 저에겐 그게 소원이거든요.”          


브런치 글 이미지 2


그리고, 두 달 후.

내 핸드폰에 메시지가 도착했다.

딸과 마트 다녀오는 길이고 삼겹살도 사 왔다는, 꿈만 같다는 내용의 메시지가...     

그 순간, 가슴이 벅차올랐다.


강의를 하며 보람을 느끼는 순간들이 많지만, 이보다 더한 감동이 있을까?

나는 한 일이 없다. 그저, 이미 마음을 준비하고 오신 분께 작은 물꼬를 터 드렸을 뿐인데,

이렇게까지 큰 감동을 주시다니!

    

제가 살아가는 이유 중에 하나인 보람을 느끼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도 ‘감동 한 스푼’ 더 보태어 신나게 일하러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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