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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처럼 사실래요? 아니면?

누가 이 사람을 이렇게 만들었을까?

by 하율

3회기로 진행되는 어린이집 부모교육이었다.

오른쪽 책상 제일 앞자리에 앉아 있는 그녀, 그리고 왼쪽 가장 뒷자리에 앉아 있는 그녀, 그렇게 두 명에 대해서 얘기를 해보려고 한다.


"안녕하세요? 일찍 오셨네요?"라고 인사를 건네자, 오른쪽 그녀는 답했다. "안녕하세요? 직장에서 잠깐 시간을 내서 부랴부랴 왔어요~ 원장님께서 워낙 강추를 하셔서 달려왔답니다! 엄청 기대가 돼요!" 그녀는 말할 때 자신감이 넘쳤고 환한 표정과 밝은 목소리가 인상적이었다. 잠깐의 인사만으로 그녀의 밝고 강한 이미지가 전해졌다.

"나 완전 멋진 여자, 커리어우먼!"이라는 자아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듯보였다. 그런데 밝음 뒤에 뭔가 나를 만나서 해결해야 할 과제가 있는 듯한 그런 느낌이... 전문용어로 '촉' 이라고나 할까? 이제부터 오른쪽 그녀는 '나 완전 멋짐, 뿜뿜'여사라고 부르겠다.


'나 완전 멋짐, 뿜뿜'여사의 이고그램과 오케이그램 검사 결과는 특이했다. 겉마음 속마음을 전체적으로 파악해 보면, 통제력이 강하고 책임감과 카리스마가 있으며 명랑하고 자기주장이 강한 유형에 따뜻함은 부족하고 고집이 있으며 자기중심적인 모습이 보였다. 특히나 밖에서는 에너지가 넘치지만 혼자 있을 때는 그렇지 않은 모습이었다.


'나 완전 멋짐, 뿜뿜'여사

"이 정도 결과면 일단, 일을 엄청 잘하시겠네요!

책임감이 강하고 완벽하게 일을 처리할 것 같으시네요!"라는 나의 말에 그녀는 활짝 웃으며 말한다.

"네, 제가 이번에 과장으로 승진했어요. 그래서 엄청 바빠요. 최연소 과장이랍니다!"


'나 완전 멋짐, 뿜뿜'여사는 어린 시절 아버지가 엄격한 교장선생님이셨고, 그 아버지의 마음에 들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서 한 번도 어긋남 없이 살아왔다고 한다. 그저 아버지의 자랑으로 살아온 인생을 자랑스럽게 얘기한다.



내가 물었다. "혹시, 두 명의 자녀 중에 힘든 자녀는 없나요? 소통이 되지 않거나, 말을 잘 듣지 않는 그런?"

갑자기 그녀가 답한다."그게 보여요? 사실은 여기 온 것은 작은 아이 부모교육으로 참석했는데, 큰 아이가 문제가 좀 있어요. 너무너무 착실한 아이였는데 초등학교 2학년이 되면서 왕따도 당하고, 말도 하지 않고, 숙제도 하지 않고... 여러 문제가 있어서 상담신청을 해 놓은 상태예요!"


내가 말했다.

"그러시군요, 혹시나 다음 주 마지막 회기 때 일찍 오실 수 있으면 30분 일찍 오세요. 상담받으실 때 도움 되는 팁 몇 가지 말씀드릴게요!"라고 하면서 말을 마쳤다. 기대치가 높고 엄격한 부모의 통제 아래에서 한 번도 어긋남 없이 살아온 사람의 '인정중독의 애잔함'이 느껴졌다. 그녀는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나의 옛 모습을 가지고 있었기에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왼쪽 가장 뒷자리에 앉은 그녀, 조용조용, 너무 부끄러워 얼굴도 겨우 든 그녀.

결과지를 보고 몇 마디 나누어 보니, 마음이 아팠다.


그녀는 너무 순종적이고 지나치게 보호적이며, 자신의 삶은 챙기지 못하고 오로지 가족을 위한 헌신의 삶만을 살고 있었다. 그녀는 어린 시절, 일하는 부모를 대신해서 6살 때부터 남동생을 챙기는 일을 하였다. 혹여나 남동생에게 좋지 않은 일이 생기면 그날은 그녀의 제삿날이 되었다. 그래서, 매 순간 남동생의 일거수일투족을 살피고 밥을 챙기며 숙제를 돕고 그렇게 살아왔다. 불평 없이. 본인의 인생은 그런가 보다 하며, 그렇게 살아야 하는지 알고. 그리고 지금은 그런 것이 익숙해져서 편하다고. 그리고 그런 헌신적이고 순종적인 면을 좋아하는 남편을 만나 결혼하였다. 현재 그녀는 '남편과 둘째 아이'를 남동생 뒷바라지 하듯이 둘을 키우고 있다. 그나마 첫째는 손이 가지 않는 아이라고 하니 다행이기도 하다.

이제부터 왼쪽 가장 뒷자리 그녀는 '난 괜찮아요, 진짜 괜찮아요!'여사라고 부르겠다



'난 괜찮아요, 진짜 괜찮아요!'여사

내가 물었다.

"지금 현재 먹고 싶은 것, 가고 싶은 곳, 좋아하는 것, 하고 싶은 일 등 지금 생각나는 거 두서없이 10개만 말씀해 보세요!"라는 질문에 한참을 망설이다가 조용히 대답한다. 하고 싶은 것이 원래 없다고, 그래서 특별히 생각나는 것이 없다고.

또 마음이 아팠다. 이 모습도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나의 모습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심하진 않았지만, 착한 아이 콤플렉스가 있었던 나도, 나의 감정을 죽이고 말 잘 듣고 착한 아이로 살아온 적이 있었다.



그래서, 바로 '나 완전 멋짐, 뿜뿜'여사에게 물었더니, 그 자리에서 20가지도 넘게 줄줄줄 얘기를 한다. 하고 싶은 것이 너무 많다고. 이런 모습을 보고, '난 괜찮아요, 진짜 괜찮아요!'여사는 그저 신기하게 웃으며 "저도 저 정도는 아니더라도 닮고 싶어요."라고 한다.




내가 말했다.

"제가 이고그램과 오케이그램을 좋아하는 이유가 있어요. 15년 전쯤에 교류분석 워크숍에서 이 검사를 하고 결과지 상담을 받으면서 그때 저는 변하기로 결정했어요. 그 당시 저의 결과는 '한국의 어머니형'으로 나왔어요. 헌신적이고 제 자신은 별로 챙기지 않고 오로지 가족들 챙기는 사람, 부당한 것이 있어도 자기주장은 하지 않고 억누르면서 살아가는 사람이었어요. 현실적이고 이성적인 면이 부족하고 착하기만 한 사람이었지요. 그날 이후 현실자아의 힘을 키우고, 나를 찾는 연습을 하고, 싫은 것은 싫다고 표현하는 연습을 하다 보니 어느새 제가 엄청나게 바뀌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아마 최근 10년 동안 저를 만난 사람들은 제가 예전에 그런 사람이었다는 것을 전혀 믿지 않을 것 같아요."


"성격도 디자인할 수 있습니다.

현실자아의 힘을 기르고, 어버이 자아와 어린이 자아의 긍정적인 면을 기르기 위해 노력하면 어느 날, 필요한 순간 필요한 자아상태를 활용할 수 있어요. 아이와 놀아줄 때는 자유로운 어린이 자아의 에너지로 신나게 놀아 주고, 훈육을 할 때는 기본적인 어버이 자아의 엄격하면서도 부드러운 통제력으로 아이를 대할 수 있어요. 부당한 일이 있다면 부드럽지만 단호한 말투로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말도 할 수 있고, 상대를 돌봐야 할 때는 따뜻하고 부드럽게 돌볼 수 있답니다. 저는 "10억을 줄 테니, 예전의 모습으로 그때처럼 살래?"라고 누가 제안을 한다면 절대 받지 않고 그때로 돌아가지 않을 겁니다. 제 자신을 알고, 자유롭게 자아상태를 선택해서 사용할 수 있는 힘을 기르고 나서는, 다시 태어난 것 같이 살고 있어요."


지금처럼 사실래요?

원하는 모습으로 사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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