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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세, 학원을 9개 다니다!

토끼 귀가 내려와서 닫아줘요

by 하율

요즘 ‘7세 고시’가 사회적인 이슈입니다. 그래서 17년 전 저의 일이 생각나서 글을 써 봅니다.

학원강사를 하던 어느 날, 7살 여자 아이를 둔 어머니로부터 집으로 초대를 받았습니다.

“선생님, 저희 집에서 조용히 드릴 말씀이 있어요.”라며...


‘영재’라는 말을 듣던 아이가, 말도 잘 듣고, 순하고 성실했던 그 아이가, 어느 날 갑자기 비명을 지르고 머리카락을 쥐어뜯고, 마치 미친 것처럼 울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아이는 어린이 상담센터에 다녀오게 되었습니다. 그 집을 가보니, 베란다 창문엔 커다란 흰 전지가 붙어 있었습니다. 그 위엔 일주일치 일정이 시간표로 만들어져 빼곡하게 적혀 있었습니다.


<쳇GPT사용한 이미지>

숲유치원 등하원 시간,

9개의 학원 스케줄,

풀어야 할 문제집,

읽어야 할 책 목록까지.


온통 ‘다녀야 할’, ‘풀어야 할’, ‘읽어야 할’로 뒤덮인 계획표였습니다.

제가 봐도 숨이 막혔습니다.


‘전업주부인데, 바빠서도 아닌데,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걸까?’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 어머니는 충격과 걱정의 하소연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말씀의 대부분은 본인의 어린 시절 이야기였습니다. 한 살 위 친언니와 늘 비교당하며 자랐고, 존재감 없이 살아야 했던 어린 시절이야기. 게다가 또래 사촌 중에는 유독 똑똑하다고 소문난 아이까지 있어서, 그 어머니는 늘 비교를 당하며 부모의 관심 밖에서 투명 인간처럼 살아야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결혼 후 그 언니의 딸과 자신의 딸이 같은 나이가 되었고, 조카는 전문기관에서 이미 영재 판정을 받은 상태였습니다.


그 순간, 어머니 안에 잠자고 있던 열등감과 보상심리가 깨어났습니다.

‘내 딸만큼은 언니네 딸 '조카'보다 공부 잘하는 아이로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하나뿐인 아이를 끝없이 몰아세우게 된 것이었습니다.

결핍과 비교의식, 열등감이 한 아이의 삶을 뒤흔들고 있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저도 생각이 많아졌습니다.

그땐 제 아들도 7살이었고, 영어유치원, 태권도, 오르다, 로봇 조립, 수영, 피아노, 구몬학습까지, 유치원과 학원을 무려 7개나 다니고 있었습니다.


아이의 요청으로 시작된 것도 있었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제 욕심도 있었습니다.

일을 하다 보니 유치원 하원 후 아이를 맡길 곳이 필요했고, 그래서 여러 학원에 보내게 되었죠. 하지만 그 속엔, 어릴 적 제 결핍이 고스란히 스며들어 있었습니다.


저 역시 피아노를 배우고 싶었고, 피겨스케이팅을 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부모님은 언니만 피아노와 바이올린, 수영을 가르치고, 저에게는 늘 “언니한테 배워라.”는 말을 하셨습니다. 피아노도, 바이올린도, 수영도, 저는 모두 언니에게 배웠습니다. 결국 배움에 대한 욕구와 갈증, 채워지지 않은 욕망과 서러움이 제 안에 깊이 남아 있었던 겁니다. 그래서 저는 제 아이에게 ‘예체능’ 만큼은 꼭, 제대로 가르치고 싶었습니다. 저의 결핍과 보상심리가 작동을 한 것이었죠!




어느 날, 아들 친구 엄마가 저에게 말했습니다.

“언니, 애 그렇게 키우면 안 돼요. 지금은 착해서 말 잘 듣고 다 하지만, 나중에 큰일 나요. 애는 놀아야 해요.”

그 말을 대수롭지 않게 넘겼지만, 마음에 자꾸 남았습니다. 그래서 집에 와서 아들에게 조심스레 물었습니다.

“힘들면 안 한다고 말해도 돼. 싫으면 싫다고 해도 괜찮아. 넌 왜 그렇게 착하기만 한 거야? 진짜 다 좋은 거야? 아니면 힘든데도 그냥 꾹 참는 거야?” 그 말을 들은 아들이 조용히 말했습니다.


<쳇GPT를 사용한 이미지>

“정말 괜찮아요, 다 좋아요. 그런데...”

“그런데 뭐?” 제가 놀라서 말했습니다.


아이가 말하길,

“가끔 엄마가 뭐라고 하면... 토끼 귀가 내려와서 닫아줘요. 안 들리게.”


“응? 그게 무슨 말이야? 넌 그동안 엄마가 말할 때 정말 잘 듣고 그랬잖아?”


“눈으로는 듣고 있는 척하지만, 귀는 토끼 귀가 내려와서 안 들리게 해 줘요.”




학원 얘기하다가 느닷없는 얘기를 하는, 아이의 진심이 담긴 말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편하게 말하라고 해놓고, 정작 아이가 편하게 말할 수 없는 엄마였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아이가 그동안 얼마나 참고 견뎠을지를 생각하니, 너무 미안했습니다. 그래서 아이에게 말했습니다.

“엄마가 너무 바빴고, 그래서 미안해. 학원 한두 개 정리하고, 그 시간에 엄마랑 놀자.”

그랬더니 오히려 울면서 아이는 떼를 썼습니다. 학원은 계속 다니겠다고. 하지만 나중엔 정말 놀아주면 한 두 개 정리하겠다면서 좋아했습니다.


엄마가 '학원 잘 다니고 많이 배우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아들, 그래서 학원을 줄이라는 말이 벌처럼 느껴졌겠지요. 학원을 줄이는 것은 결국 엄마의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고, 그래서 엄마의 사랑을 받지 못한다고 여겼던 거죠. 그만큼 저는 미숙했고, 제대로 소통하지 못하는 엄마였습니다.




그날을 계기로 저는 제 삶을 돌아봤습니다.

자기주도 학습법과 두뇌개발 강의 하던 것을 줄이고, 양육태도, 아동심리, 대화법, 문제행동 등 부모 교육을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일이 계기가 되어 지금은 부모교육 강사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강의를 하면서 가장 많은 변화를 겪은 사람은 바로 ‘저’ 자신이었습니다. 배우고, 가르치고, 실수하고, 다시 실천하면서 조금씩, 천천히 변해갔습니다. 아이의 마음을 알아주는 엄마로, 따뜻하게 대화할 수 있는 엄마로 변해가면서, 중요한 한 가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엄마가 먼저 행복에너지로 가득 차 있으면 그 에너지가 흘러넘쳐서 아이에게로 간다는 것을. 결국 중요한 것은 ‘부모가 자기 자신을 알고, 바로 서고, 행복한 것’이었습니다. 부모는 자신의 어린 시절을 지금의 시점에서 다시 바라보고, 그 과거가 현재의 육아에 어떤 그림자를 드리우는지 살펴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이를 ‘내 소유물’이 아닌, ‘독립적이고 동등한 인격체’로 대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그날의 대화 덕분에, 저는 스스로를 제대로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그 어머니 덕분에, 저는 인생의 큰 방향을 수정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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