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의 욕심은 버리고 자녀의 적성은 살리고
오늘 친구가 수술을 하게 되어서, 내가 병원에 데려다주게 되었다. 가는 도중 차에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였다. 수술 전 검사 비용만 100만 원 정도 들었고, 오늘 수술비에 여러 부대비용을 포함하면 200만 원은 될 것 같다며 한숨을 쉬었다. “병원비가 너무 비싸, 의사들한테 너무 많은 돈을 주는 거 아니야?”라는 말에 내가 말했다. “많이 줘야 할 듯 해! 나한테 그 복잡한 공부 하라고 했으면 벌써 죽었을지도 몰라! 힘든 공부에 힘든 일 하니까 대가는 지불해야지!” 하면서 웃었고 그 친구 또한 “그러게, 힘들긴 할 거야, 그래도 병원비는 너무 비싼 것 같아.”라는 말을 남기며 친구는 수술실로 향했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으로 와서, 핸드폰을 보고 있을 때, ‘영유아 사교육 시장’, ‘초등 의대반’, ‘7세 고시’, ‘의사 평균 연봉’이라는 기사가 내 눈에 들어왔다. ‘25년 영유아 사교육비 시험 조사’에서 사교육비 연간 환산 금액이 3조 3천억 원. 24년 ‘초중고 사교육비 조사’에서는 29조 2천억으로 가계는 소비를 줄였지만, 자녀들의 사교육비 시장은 역대 최고의 기록을 경신했다. 아이들의 수는 줄고 있는데 사교육비 시장은 점점 늘어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또한 의사 1인당 평균 연봉 수준이 4억이라는 기사가 나온다. 평범한 직장인과는 몇 배가 차이가 나니까, 초등 의대반이 생기는 것도 어느 정도 이해는 된다. 부모로서 뒷바라지를 잘해서 내 아이가 의사가 된다면 부모도 자녀도 행복할 거라는 막연한 부모의 기대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자녀가 적성에도 맞고 본인이 의사가 되기를 바랄 땐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자녀의 적성과는 무관하게 밀어붙이는 부모가 많은 것이 현실이다.
십여 년 전 일이다. 여성회관에서 부모대상 학습코치양성과정을 진행하고 있을 때, 정말 열심히 수업에 임하는 어머니 한 분이 계셨다. 12주간 진행하던 수업에, 그분은 제일 앞에 앉아서 열심히 받아 적고, 질문을 굉장히 많이 하셨던 분이다. 매주 수업을 듣고, 귀가하셔서 그날 배운 내용으로 아들을 지도하셨다. 아들은 고등학교 2학년 생으로 반에서 2등 정도 하는데, 부모님께서 의대를 보내고 싶어 하셨다. 원래 아이는 역사에 관심이 있었으나, 부모님의 권유로 이과로 지원하게 되었고, 그곳에서 의대를 목표로 공부를 하고 있었다. 어머니 말씀으로는 아이가 큰 불만 없이 잘 따라주고 있다고는 하셨지만, 그 아이는 문과를 가서 역사 관련한 과에 진학하고 싶었던 아이였다. 그분을 3개월간 지켜보면서 한편으로는 참 대단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결국 엄마의 희생과 뒷바라지로 중간고사에서 전교 1등을 했으니까. 그 이후 소식은 모른다. 과연 의대는 갔을까? 행복할까? 잘 살고 있을까? 궁금해진다.
그 어머니를 보면서 우리 고모네 오빠들이 생각났다. 우리 친정아버지의 바로 아래에 여동생이 있다. 그러니까 첫째 고모. 그 고모 집에는 사촌오빠가 둘이 있다. 연년생인 오빠들.
큰 오빠는 잘 생겼다. 까무잡잡한 피부에 이목구비가 엄청 또렷하고 어릴 때부터 연예인 같다는 소리를 많이 듣고 살았다. 그 오빠는 굉장히 특이한 재능이 있었다. 초등학교 때, 집에 있는 라디오, 밥솥, TV 등 전자제품을 분해해서 살펴보는 것이 취미였다. 1970년대 말 80년대 초에 그랬으니, 집안이 난리가 날 그런 일이었다. 부모가 심하게 꾸짖고 못 하게 하니, 어느 날은 이불 속에 들어가서 손전등을 켜놓고, 라디오를 분해하고 있었던 일화도 있다. 그 정도로 전자기계에 관심이 많던 오빠였다.
둘째 오빠는 영재다. 그런데 못생겼다. 둘이 형제라고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모를 만큼 전혀 다르게 생겼다. 하얀 피부에 창백해 보이는 모습, 어릴 때부터 두꺼운 안경을 쓰고 있던 집돌이 오빠. 고모 집에 가면 작은 오빠는 항상 책만 보던 걸로 기억한다. 둘은 너무 비교되는 모습이었다. 큰 오빠는 놀러 나가지 않으면 전자제품을 분해하는 사고를 치고, 작은 오빠는 책만 보는 책벌레였다.
그 집도 사연이 있다. 고모 부부도 공부에 한이 많은 사람들이었다. 고모부의 친형은 사관학교 출신이었고, 훗날 별을 여럿 달게 된 장군이 되셨다. 그에 비해 고모부는 그냥 보통의 학력에 회사원이었다. 고모도 공부를 잘했지만 여자라는 이유로 고등학교 졸업 후 취업을 하게 되었다. 특히 집안 장손인 오빠가 서울로 유학을 가게 되고, 고시 공부까지 하게 되면서, 여자인 고모는 집안 분위기상 대학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고모 부부는 공부와 출세에 한 맺힌 역사가 있다. 그래서, 장남을 공부시켜서 출세하도록 하는 열망이 컸는데, 계속 딴짓을 하니 엄청나게 속상해하셨다.
특히 공부에 관심도 없는 큰오빠를 인문계 고등학교에 보내려고 하다 보니, 결국 고등학교도 떨어져서 먼 곳에 있는 학교에 가게 되었다. 그곳에서 안타깝게도 비행청소년이 되어서 가출을 일삼았다. 그런 오빠를 잡아 와서 계속 공부를 시키고, 대학을 삼수까지 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큰 오빠는 이도저도 아닌 상태가 되었다. 그 모진 과정 속에서 얼마나 자존감이 떨어졌을까? 그에 비해 작은 오빠는 스카이대학 공과대학에 수석 입학과 차석 졸업을 하며 날개를 달고 사회에 진출하게 되었다.
한참 지나고 나서야 집안 어른들이 말한다. 큰오빠를 처음부터 기계 다루는 공고 쪽으로 보냈다면 어땠을까? 아마 두각을 나타내며 자신의 인생을 행복하게 살았을지도 모르겠다며... 때늦은 후회를 한다.
나 또한 원하는 대학에 떨어져서 후기대학을 갔다. 그 대학은 약대와 공대만 후기 모집을 하였기에 어쩔 수 없이 전혀 관심이 없던 공대에 진학하게 되었다. 난 나름 공부는 한다고 생각했는데, 후기대학을 갔음에도 공부를 전혀 따라가지 못하는 열등생이 되었다. 수업내용이 이해되지 않았다. 의욕도 없었다. 결국 학점 2.98을 받으며 겨우겨우 졸업을 했다. 적성이 이런 건가? 관심이 없는 공부를 하는 것이 재미가 없고, 이해가 되지 않아 괴롭고, 자존감은 바닥이었다. 중고등학교 때 한 번도 우등상을 놓친 적이 없던 내가 바보가 되었다. 그러다가, 졸업 후 상담심리, 가족상담, 아동학, 사회복지를 공부하게 되었다. 석사 때 동기들은 농담 삼아 ‘혹시 너 천재 아니냐?’는 우스갯소리를 할 만큼 나는 이해도 빠르고, 과제도 척척, 성적도 물론 아주 좋았다. 내가 관심 있는 공부를 하면서 공부가 다시 재밌어지고, 그걸로 일도 하면서 사는 것이 정말 행복하다.
부모는 자녀를 유심히 관찰해야 한다. 어느 쪽에 관심이 있고, 재능이 있는지 말이다. 자녀가 그것을 찾을 수 있도록 다양한 체험의 기회를 제공하고, 관심을 보이는 부분이 보이면 깊이 있는 체험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여야 한다. 재능과 관심에 노력이 더해지면 행복한 진로가 되기 때문이다. 누구나 뭘 하든지 돈은 벌 수 있지만,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며 행복하고 기쁘게 돈을 벌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은가? 부모 자신의 결핍과 욕심으로 자녀를 이끄는 것이 아니라, 자녀가 행복할 수 있는 길을 찾을 수 있도록 지원하고 지지해 주는 것이 부모 역할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