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배울 만큼 배운 여자예요!-
난 대부분 성인들 대상으로 강의를 한다. 그래서 유치원에서 아동들을 대상으로 한 번 수업을 한 것은 나에겐 특별한 기억이다. 그런데 그곳에서 잊지 못할 경험을 하였다. 교육청에서 특정한 유치원과 연계해서 6, 7세 아이들 대상으로 4회기 수업을 하고, 그들의 부모님 대상으로 2회 특강, 교사 대상 1회 특강을 하는 프로그램이었다.
수업 전, 담임교사로부터 주의 사항을 들었다.
7세 반 여자아이 한 명이 아주 특별한 친구라고. 너무 난폭해서 주변 친구들을 무자비하게 때리고 제멋대로인 아이가 있으니 미리 알아두고 조심하라며 이름을 말씀해 주셨다. 그 친구를 ‘무서운 7세’라고 칭하겠다.
첫 수업을 진행하면서, 쉬운 내용으로 질문을 하였다. 모두 손을 들었고 나는 한 아이를 지목했다. 그 아이는 발표를 하며 새로운 선생님께 제일 먼저 인정을 받았다는 뿌듯한 느낌으로 친구들을 이리저리 돌아보며 으쓱해하였다. 친구들의 박수를 받고 자리에 앉으려고 하는데, 사건은 그때 일어나고야 말았다. ‘무서운 7세’ 아이가 발표한 그 친구를 향해 의자를 던졌다. 다행히 몸에 정면으로 맞지는 않았으나, 나는 너무 놀랐다. 어찌할 바를 몰라 안절부절못하고 있을 때, 그 어떤 아이도 크게 소리치는 아이도 없었고, 다들 조용히 몸을 웅크리고 뒤돌아 앉거나 옆을 향해서 앉아 있었다. 조용히 그 순간이 지나가기를 바라면서 숨죽여 있는 모습이었다. 담임선생님이 빨리 오셔서 상황 정리를 하시고 나는 우여곡절 끝에 첫 회기 수업을 마쳤다.
두 번째 수업까지 일주일간 고민이 많아졌다. 그래서 ‘무서운 7세’ 아이의 가정환경과 부모님과의 관계 및 유치원에서의 특징들을 담임선생님께 여쭈어 보았다. 여러 정황으로 보았을 때, 문제행동이 심각한 상태로 보였다. 3단계 ‘보복하기’ 단계에 있는 것으로 판단이 되었고, 행동개선을 위해서 여러 가지 고민을 하였다.
드라이커스(1964)에 의하면, ‘자녀의 잘못된 행동’과 ‘잘못된 목표’는 ‘자아가치’를 느끼지 못할 때와 ‘소속감’을 느낄지 못할 때라고 한다.
이에 따른 문제행동은,
1. 관심 끌기-자신이 의미 있는 존재가 되지 못하고 제대로 대우받지 못한다고 느낄 때 자신을 확인시키기 위해 하는 방법. 징징대기 등
2. 힘 행사하기-관심 끌기가 효과가 없다고 생각되는 경우, 자신의 힘을 과시하려는 행동을 한다. 심하게 떼쓰고 고집부리기, 적대감 표현 등
3. 보복하기-1, 2단계를 해 봐도 사랑받지 못한다고 느끼며 내면에 상처를 가지게 될 경우, ‘나처럼 상대방도 상처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상태
4. 무능함보이기-1,2,3단계 다 해봐도 결국 사랑받지 못하는 존재라고 느끼게 되면, 최종적으로 자신의 무능함을 보여주는 퇴행적인 행동을 한다. 극도의 좌절감과 부정적인 자아개념을 가지며 쉽게 포기하고 시도조차 하지 않으려는 아이가 된다.
두 번째 수업시간이 되었다. 긴장이 되었다. 수업 전에 일찍 도착해서 미리 그 ‘무서운 7세’ 아이를 조용한 교실로 따로 불렀다.
내가 말하길, “선생님이 오늘 너한테 할 말이 있어서 따로 불렀는데 뭘까? 맞춰 봐!”
그 아이가 말하길 “음,,, 혹시 저 보고 싶어서 그런 거예요?”
나는 말했다. “그게 느껴져? 너 대단한데? 사실 저번주에 보니까 네 눈빛이 엄청 빛이 나고 반짝반짝하더라고. 집에 가니까 네 생각이 많이 나더라. 보고 싶었어!”
이어서 “넌 엄청 똑똑한 친구야!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을 다 알고 있는 것 같더라고! 그래서 너한테 미리 말해둘 게 있어. 오늘 질문은 다섯 가지야. 그런데 한 가지만 엄청 어렵고, 네 가지는 너무너무 쉬운 거야. 그래서 네가 다 손을 들어도 쉬운 거는 너를 시키지 않을 거야! 어려운 문제 딱 한 가지, 질문할 때 그때 너를 시킬 거니까 준비하고 있어! 단, 저번 주처럼 그렇게 친구들한테 무례하게 굴면 아무것도 안 시켜 줄 거야! 알았지?”
“네~~~!” 하며 신나서 나를 안는 그 아이의 입에 젤리 하나를 넣어주며 말했다. “쉿!”
그때의 질문은 모두 쉬운 것이었고, 다들 손을 들고 다들 신나게 대답을 하였고, 그중 하나, ‘무서운 7세’에게 발표의 기회를 주었다. 그리고 칭찬을 해 주었다. 그날은 그렇게 무사히 넘겼다. 세 번째 시간은 어떻게 할까? 또 고민이 되었다.
세 번째 시간도 일찍 도착해서, ‘무서운 7세’를 미리 불렀다.
“오늘은 왜 불렀는 줄 알아?”라고 물었더니, 너무 사랑스럽게 쳐다보며 장난을 친다. 그때 내가 근엄하게 말했다. “오늘부터 넌 ‘작은 선생님’이야! 오늘은 친구들하고 체험 활동을 할 텐데, 네가 선생님이 될 거야! 친구들이 순서대로 활동할 때 너랑 나랑은 친구들이 체험을 잘할 수 있게 도와주고 배려하는 역할이야. 그리고 가장 마지막에 넌 체험할 거야! 왜냐하면 ‘작은 선생님’이니까! 어때?”라고 하자, 흐뭇해하며 본인이 선생님 역할을 한다는 것에 자부심을 가지고 기대를 하고 있었다. 그렇게 수업 시간에 친구들에게도 ‘작은 선생님’ 역할에 대해서 미리 얘기해 주고 수업을 순조롭게 잘 진행한 후, 마지막에 ‘작은 선생님’도 체험을 하게 했더니 친구들이 박수를 쳐 주었다.
네 번째 시간에는 ‘작은 선생님’이 아이돌 춤을 연습해 와서 발표를 해보겠다고 자진해서 말을 했다. 그렇게 일주일간 잠도 줄여가며 준비해 온 안무를 선보이며 춤을 추었고 아이들 속에서 환호를 받고 서로 어울리는 모습을 보며 마음이 흐뭇했다.
그렇게 아이들 수업을 진행하는 기간 동안, 부모님 대상 저녁 특강이 있었다. 그때 ‘작은 선생님’의 어머니도 오셨다. 그분은 아침드라마에서나 볼 듯한 그런 독특한 캐릭터였다. 제일 앞줄에 어린이용 작은 나무 의자에 다리를 꼬고 앉아서, 비스듬히 고개를 젖힌 상태로 팔짱을 끼고 나를 쳐다보셨다. 빨간 미니스커트에 흰 블라우스, 파마머리 아직도 생생하다. 수업 중에 한마디 하신다. “선생님, 저도 선생님 정도는 배울 만큼 배운 여자예요! 인서울 대학에 사회복지 석사고요...!”
그 어머니의 사연은 그러했다.
시집가보니, 홀시어머니에 외동아들인 남편, 어머니를 모시고 신혼생활을 시작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첫째 시누가 이혼을 하고 아이 두 명을 데리고 들어 왔다. 또 얼마 지나지 않아 둘째 시누가 이혼을 하고 아이 한 명을 데리고 친정으로 들어왔다. 그렇게 그 집에는 ‘작은 선생님’은 7세 여자아이, 친동생은 6세 남자아이, 시누의 딸, 아들들은 9세, 7세, 4세, 그렇게 아이가 5명에, 돈벌이하지 않는 시누 2명에 홀시어머니가 계셨다. 그 환경에서 그 엄마는 삐뚤어질 만큼 삐뚤어진 상태였다. 특히 시어머니는 6세 남자 손자만 예뻐하고 첫째 ‘작은 선생님’은 여자아이라고 홀대를 하였다. 아이가 제대로 클 수 없는 분위기였다.
나중에 그 어머니와 몇 번의 통화를 하고 아이를 위해서 몇 가지 제안을 하였다. 현재 문제행동 2, 3단계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세상에서 단 한 사람, 그 어떤 경우라도 엄마가 아이를 믿어주고, 마음을 알아줄 때, 아이는 올바르게 자란다. 아이가 어떤 잘못된 행동을 하더라도 먼저 마음부터 알아주시고, 힘으로 다스리지는 마시고 사랑으로 대해주시라는 말과 함께 '문제행동수정 대화법'을 알려드렸다. 그 어머니는 다행히 잘 따라주셨고, 그렇게 ‘작은 선생님’은 점차 안정이 되어갔다. 그런데 난 그 어머니가 계속 걱정이 되었다. 여자로서 너무나도 마음이 아팠다. 아이는 유치원에서 점차 나아지고 있었지만, 그 어머니의 마음은 누가 돌봐줄까?
그렇게 심각한 문제행동을 보이는 아이도 얼마 지나지 않아 좋아진다는 것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마음을 알아준다는 것, 존재를 인정하고 존중한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다시 한번 깨닫는다. 아이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은 자신이 사랑받고, 존중받을 때, 좀 더 가치 있는 사람이 되고자 노력하게 되는 존재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