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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기로 했으니까요

사랑의 언어, 그 바탕에 있는 신념

by 하율

나는, 풀때기를 좋아한다. 남편은, 스테이크를 좋아한다. 미디엄 레어도 아닌 레어!

(풀때기-풀을 속되게 이르는 말의 규범 표기, 네이버 국어사전)

나는, 집은 답답해 스타일이고, 남편은, 집 밖은 위험해 스타일이다.

마치, 소와 사자의 사랑이야기 같은 집이다.

우리 관계는 로또다. ‘안 맞아도 어쩌면 그렇게도 안 맞을까? 그 이름하여 로또’

하지만 잘 살고 있다. 나를 알아가고 상대를 이해하면서 조금씩 성숙해져 가고 있다. 그놈의 ‘情’이 뭔지...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웃는 쪽으로)


중년이 된 부부의 일화가 있다. 남편이 회사에서 너무 힘들 때, 지갑 속의 아내 사진을 꺼내 본다고 한다. ‘내가 이 여자 하고도 사는데 못 참을 일이 뭐가 있겠어?’ 하고, 아내는 살면서 너무 힘들 때 지갑 속의 남편 사진을 꺼내 본다고 한다. ‘내가 이 인간도 사람 만들었는데 못 할 일이 뭐가 있겠어?’ 하면서 힘내서 열심히 살아간다고 하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꾹 참고 이해하고 포기하고 정들어 사는 것도 훌륭하다. 그러나 나는 ‘5가지 사랑의 언어’를 공부하고 강의를 하면서 ‘사랑’이라는 것을 좀 더 다른 시각으로 이해하게 되었고, 사랑받고, 사랑하는 것에 대해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했다.



따뜻한 어느 봄날, 유치원 부모교육이었다. 부부가 함께 와서 ‘이고그램 검사’와 ‘5가지 사랑의 언어’ 검사를 한 후, 결과지를 가지고 2주 동안 2회기로 워크숍을 하는 프로그램이었다. 그중에서, 유독 한 쌍의 부부가 내 눈에 들어왔다.

아내분은 좀 딱딱한 느낌, 남편분은 따뜻하고 친절한 느낌.

그런데, 수업 중에도 두 분이서 손을 꼭 잡고 강의를 듣고 있는 모습과, 모둠 작업 할 때도 특별히 서로 챙기고 배려하는 그 모습이 유난히 내 눈에 띄었다. 궁금하기 시작했다. 그 부부에 관해서.

참고로, '5가지 사랑의 언어'에 대해서 잠깐 설명하자면, 게리 체프먼(Gary Chapman)의 연구에 기반한 개념이다. 각자의 사랑의 언어를 파악하고, 상대가 사랑을 느끼는 방식으로 표현할 때 관계의 만족도가 높아지고 깊은 유대감이 형성된다. 5가지 사랑의 언어는, '인정하는 말, 함께 하는 시간, 선물, 봉사, 스킨십'이다.


미리 ‘5가지 사랑의 언어’ 검사를 하고, 결과지를 가지고 워크숍을 진행했다. 부부는 남매의 부모로 막내딸 유치원 부모교육에 참여한 40대 초반의 부부였는데, 두 사람의 첫 번째 사랑의 언어가 공통적으로 '스킨십'이었고, 두 번째 사랑의 언어가 남편은 '봉사', 아내는 '인정하는 말'이었다.

남편은 아내와 포옹하는 것을 좋아하고, 일하고 와서 정돈된 깨끗한 집에서 금방 한 집밥을 먹으면 그렇게 행복하다고 한다. 아내는 남편과 손잡고 다니고, 평소에 남편한테 ‘잘한다. 잘한다. 우리 와이프 최고다.’ 소리를 들으면 '내가 참 사랑받는구나, 행복하다.'고 한다. 두 사람은 서로의 '사랑의 언어'를 충분히 잘 알고 있었고, 제대로 실천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이 행복의 비결이었다. 그런데, 마치고 잠깐 시간이 되어서 남편분에게 질문을 했다. 그때 아내는 없었고 남편만 있었다.



“행복해 보이시네요. 부러워요. 두 분만의 특별한 행복비결이 있다면 무엇인지 여쭤봐도 될까요?”

남편분은 부끄러운 듯 살짝은 엄숙히 말했다.


“저희 부부라고 좋기만 하겠어요? 싸울 때도 있고 도무지 이해가 안 되고 싫을 때도 있어요. 그런데 그럴 때마다 무조건 제가 먼저 미안하다고 하고 안아줘요. 그리고 사랑한다고 말해요. 그럼 금방 풀려요.

왜냐하면 사랑하기로 했으니까요.”


그 말을 듣는 순간 갑자기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사랑하기로 했으니까요!’라는 말...




나는 그동안 머리로는 '이해, 희생, 인내, 노력'을 하며 사랑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감정에 휘둘리며 나 중심적인 사랑을 하고 있었다. 사랑을 받으려고만 했고, 내 기대에 미치지 않으면 서운해했다. 마치 전형적인 유치원생 수준이었던 것이다.


그나마 ‘5가지 사랑의 언어’를 통해 이해의 폭이 넓어지고 사랑하는 방식도 변했다고 생각했지만, 사랑에 대한 근본적인 신념은 바뀌지 않았던 것이다. 내가 해왔던 사랑은, '결혼했으니까'가 내 사랑의 전제였기 때문에, '당연한 의무, 어쩔 수 없음, 노력해야지'라는 생각으로 사랑을 하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그러다 보니, 서운한 일이 많았던 것이다. 나의 신념부터 점검이 필요했다. 사랑해서, 그 사랑을 지키기 위하여, '사랑하기로 했다'는 마음과, 사랑해서, '결혼했으니까'라는 마음으로 상대를 대하는 건 분명 차이가 있음을 깨달았다.

그날 저녁, 남편을 바라보며 많은 생각을 했다. 남편의 사랑의 언어가 무엇인지 알기에 그렇게 사랑을 표현하고, 앞으로는 좀 더 성숙한 사랑을 하기로 선언했다.

사랑은 굳건한 의지로 가꾸어 가고 지켜나가는 것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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