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론은 알고 있지만...
"저 좀 도와주세요."
강의가 막 시작되려던 순간이었다.
30대로 보이는 수강생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외쳤다. 느닷없는 외침에 순간 당황했지만, 그녀의 결연한 표정은 그 말이 단순한 부탁이 아니라는 걸 보여주고 있었다.
"오늘 수업내용과 상관없지만, 정말 절박해서 그렇습니다. 제 얘기 좀 들어주세요!"
다른 수강생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그녀가 말을 이어가도록 했다.
그녀는 세 아이의 엄마이자 결혼 12년 차의 전업주부였다. 그동안 남편과 두 번의 별거를 겪었고, 현재 재결합한 상태라고 했다.
"남편은 첫째 아이에게 수시로 협박을 해요. ‘S대 못 가면 죽이겠다’는 말을 하며 아이의 일상을 감시하고, 저에겐 끊임없이 불만을 터뜨려요. 아이들 가정교육이며 반찬이며 등등.
그런데 저번 주 선생님 강의에서 ‘나부터 변하면 가정에 반드시 변화가 찾아온다.’라고 하신 말씀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어요.
그래서 용기를 내어 도움을 구합니다. 우리 가족도 평범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요?" 그녀의 간절한 눈빛에 강의실은 숙연해졌다. 그날 강의는 ‘아동 문제행동 수정’ 시간이었지만, 다른 수강생들도 괜찮다고 격려하며 말을 계속 이어갈 수 있도록 배려해 주었다.
그녀는 담담히 말했다.
"저와 남편은 둘 다 결손가정에서 부모의 불화와 경제적 결핍 속에서 자랐어요. 남편은 공부를 잘했지만, 아버지가 계시지 않은 집의 장남이다 보니 일찍부터 공장에 취직해서 돈을 벌 수밖에 없었어요. 저희 둘 다 세상에서 제일 싫은 곳이 집이었고, 그래서 도망치듯 결혼했지만, 어떻게 사는 건지 막막했어요. 나름 한다고 하는데 삐걱거리기만 하네요. 별거했을 땐 아이들이 밟혀서 못 살겠더라고요. 이제는 가족을 지키고 싶어요. 제가 어떻게 하면 되나요? 무엇부터 바뀌면 되나요?"
나는 조심스럽게 제안했다.
"그 용기가 정말 대단하십니다. (남편에 관한 몇 가지 질문... 중략) 작은 미션 하나 드릴게요. 일주일 동안 매일 실천해 보세요. 남편이 퇴근할 때 현관에서 반갑게 맞이하며 안아주세요. 그리고 ‘오늘도 고생 많았어요. 고마워요.’라고 말해보세요. 그리고 남편이 좋아하는 찌개와 반찬을 정성껏 준비해서 대접받는 기분이 들게 해 주세요. 혹시 남편이 아들에게 또 그런 말을 하더라도 잠시 모른 척하세요." 그녀는 의지를 불태우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무조건 해볼게요."
하지만 난 속으로 걱정이 앞섰다.
‘그 상처투성이의 관계에서 과연 그를 안아줄 수 있을까? 너무 비현실적인 미션은 아닐까? 나라면 아마 절대 못 할 것 같은데...’
일주일 후, 그녀는 환한 얼굴로 나타났다.
"선생님, 정말 신기한 일이 일어났어요! 현관에서 남편을 안아주며, ‘여보, 오늘도 가족들 위해 일하느라 고생했어요, 고마워요.’라고 말했더니 처음엔 당황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남편의 태도가 점점 부드러워졌어요. 어느 날 제가 외출 중이었는데, 남편이 먼저 퇴근해서 소파에 누워 있더라고요. 그대로 다가가서 누워 있는 남편을 안아주며 ‘당신 덕분에 우리가 잘 살고 있어요.’라고 말했더니 남편이 눈물을 글썽이며 저를 안아줬어요. 그 후로 하루도 빠짐없이 남편이 우리 가족에게 소중한 존재라는 걸 느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했어요. 그러자 남편이 변하기 시작했어요. 어제는 주말 저녁에 ‘아빠의 가족특식’이라며 탕수육을 만들어줬어요. 온 가족이 함께 웃으며 식사를 했는데, 그 시간이 모처럼 너무 행복했어요.”
나는 감탄하며 물었다.
"와, 정말 감동입니다. 그렇게 하시면서 무엇을 느끼셨나요?"
그녀는 미소를 띠며 말했다. "이게 뭐라고, 어렵지도 않은 일을 왜 그동안 못 했을까 싶었어요. 저 사람도, 나도 서로 사랑하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그리고 우리 가족이 얼마나 소중한지 절실히 깨달았고요. 제가 우리 가족에게 좋은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아서 뿌듯하기도 하고, 아이들과 남편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면서 정말 좋았어요. 뭔가 변화가 시작된 것 같아 기대가 돼요."
나는 그녀를 보며 솔직하게 고백했다.
“사실 저라면 그렇게 못했을 것 같아요. 이론으로는 알고 있지만, 현실에서 미움이 가득한 사람을 안아주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거든요. 사실 저도 결혼 10년 차인데, 시어머니와 효자 남편 사이에서 많이 힘들어하고 있어요. 자존심만 내세우고, 찬 바람이 쌩쌩부는 태도로 남편을 대하고 있는 제 모습이 부끄럽네요. 오늘 큰 깨달음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는 그녀에게 또 하나의 미션을 건넸다. 읽어볼 책 몇 권을 소개하면서,
"앞으로 남편이 아이에게 공부 문제로 잔소리를 하더라도 그 자리에서 바로 받아치지 마세요. 대신 남편의 마음을 먼저 읽어주세요. ‘당신도 첫째가 성공해서 멋지게 살길 바라는 마음인거죠?’ 라고요.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 남편도 마음의 상처가 치유되고 점점 변할 거예요. 그리고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돌보는 걸 잊지 마세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는 물었다.
"무엇이 당신을 그렇게 움직이게 했나요?"
그녀는 잠시 생각하더니 담담히 말했다.
"제 선에서 대물림을 끊고 싶었어요. 평범하지만 행복한 가정을 만들고 싶었어요."
그 순간 강의실은 숙연해졌다. 그녀의 말은 깊은 울림이었다.
강의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내 마음속에는 그녀의 표정과 목소리가 계속 울리고 있었다. 그동안 이론은 알고 있었지만 실천하지 못했던 나를 돌아보며 결단을 내렸다. 나도!!
그날 그녀에게서 받은 깊은 울림은 10여 년이 지난 지금도 문득문득 떠오른다. 삶이 주는 깊은 감동에 감사하며, 그녀 가족의 행복과 평화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그대가 저의 스승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