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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금태 Feb 24. 2021

뉴 키즈 온 더 블록_나의 첫 번째 슈퍼스타

말하고 노래하며 춤추는 90년대 비틀즈(?)

중년의 남자는 기억을 더듬어 생애 첫 팝송을 떠올렸다.

침대와 책상이 마주 보고 있는 작은 방, 통통한 소년이 담요 위에 쪼그려 앉아 있다. 한 손에는 까만색 두꺼운 금성 아하 워크맨이 다른 한 손에는 영어 발음을 한글로 적은 노트가 들려 있다. 양쪽 귀에 꽂힌 이어폰에는 영어 노래가 흘러나온다. 소년은 노래에 맞춰 노트에 적힌 글씨를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소리 내 열창 중이다.


노래는 썩 잘하는 것 같지 않다. 아니 음치에 가깝다. 하지만 본인 목소리에 취한 건지 이어폰 속 음악에 빠진 건 지 모양새가 무아지경의 경지에 오른 모습이다. 한글로 적은 영어 발음을 엉성하게 따라 부르는 모습이란. 보는 이에게 꽤나 큰 웃음을 안겨 줄 것 같다.
그의 옆에는 누나가 워크맨을 어서 돌려주기 바라는 애절한 눈빛을 보내고 있다. 다시 보니 애절한 눈빛이 아닌 째려보는 눈빛이다. 하지만 이미 음악에 취한 녀석에게 누나의 날카로운 눈빛은 문제가 되지 못한다.

그 당시 팝 앨범에는 종종 노래 제목에 한글 해석이 달렸다.




우연히 라디오에서 들은 음악에 소년은 단박에 빠져 들었다. 그간 우리 노래에서 들을 수 없는 느낌이었다.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었지만, 뭔가 멋있었다. 유려하게 흐르는 멜로디와 비트에 심장박동이 절로 빨라지는 것을 억제할 수 없었다. 이 꼬부랑 말 노래에는 뭔가 다름이 느껴졌다. 노래가 끝나고 라디오 DJ가 곡 제목과 가수를 얘기해줬다. 급하게 근처 전화번호부에 가수와 노래 제목을 펜을 꾹꾹 눌러 한글로 적었다.  


'가수는 누키즈온더불록, 노래 제목은 스탭바이스탭'


중학생이었던 누나가 집에 오자 라디오에서 받아 적은 종이를 보여줬다. 누나는 어설프게 쓴 한글 발음에 큰 소리로 웃으며 정확한 이름을 소년에게 알려 줬다.


'뉴 키즈 온 더 블록(New Kids On The Block) 노래 제목은 스텝 바이 스텝(Step By Step)'


이미 이들은 누나들 사이에서는 인기 스타였다. 라디오에서 다시 <Step By Step>이 나올 때를 맞춰 누나는 이 곡을 테이프에 녹음해줬다. 그리고 영어 가사 밑에 따라 부르기 쉽게 한글 발음을 적어 주었다. 역시 중학생이란, 영어를 읽을 수 있는 누나에게 경외감을 갖게 되었다.

약간 과장과 유머가 있어 보이는 카피 문구

당시는 해외 뮤지션에 대한 정보를 얻기가 힘든 시기였다. 인터넷이 없던 시절이었기에, 발행되는 월간 잡지를 통해 간간히 정보를 얻는 게 전부였다.

연예인 사진 같은 것은 더욱 보기 힘든 시대였다. 그래서 시내에는 연예인 사진을 코팅해서 브로마이드나 책받침으로 만들어 주는 곳이 있었다. 이 곳은 중고등학교 형, 누나들로 연일 문전성시였다. 흔히 책받침 스타로 떠오르는 소피 마르소, 글로리아 입, 토미 페이지, 뉴 키즈 온 더 블록, 장국영 등의 인기에는 이들 매장이 한몫했음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소년에게 아직 버스를 타고 시내에 나가는 것이 큰일로 여겨졌다. 주말이면 누나를 따라 매장을 찾았다. 여기서 구입한 뉴키즈 온 더 블록 사진과 코팅 브로마이드는 방 벽면 한편을 장식하였다. 브로마이드를 보며 멤버의 이름도 다 외우고, 멤버 중 특히 더 좋아하는 멤버도 생겼다. 첫 덕질의 시작이었다.




그 날은 처음으로 혼자 버스를 타고 시내에 나간 날이었다.

목표는 지하상가 내 음반가게였다. 한 달간 모은 용돈 8,000원을 손에 꼭 쥐고, 귀에 가장 근사한 음악이 들리는 가게로 들어갔다. 뉴 키즈 온 더 블록의 리믹스 앨범 [No More Games]를 5,500원에 구입했다. 용돈을 모아 처음으로 산 음반이었다.

항상 테이프에 녹음한 곡만 들었는데, 이 앨범으로 뉴 키즈 온 더 블록의 히트 곡들을 다 들을 수 있게 됐다. 그 사실만으로도 얼마나 기뻤던지, 이후로 수많은 앨범을 구입하게 되지만 이 날 만큼 앨범 한 장으로 큰 기쁨과 설렘을 느꼈던 적은 없었다.

까만 비닐봉지에 담긴 LP를 몇 번씩 집에 가는 버스에서 꺼내 보았다. 그래서 지금도 소년은 기억한다. 앨범을 쓰다듬었을 때의 비닐의 감촉과 버스 창가로 비치던 햇살을.

용돈을 모아 한 장 한 장 수집한 뉴 키즈 온 더 블록의 바이닐

뉴 키즈 온 더 블록은 소년의 첫 번째 슈퍼스타였다. 음악을 듣고 심장의 두근거림을 느낀 것도 처음이었다. 이렇게 음악이 좋아 사람도 좋아지는 것도 처음이었다. 한동안 소년의 하루는 이들의 이야기로 가득했다. 하나하나 앨범을 모으며 팝송을 본격적으로 알게 됐다. 밴드의 멤버가 참여했다는 이유로 토미 페이지의 음악도 찾아들었다. 이렇게 소년의 음악 세계는 점점 더 확장되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되며 보이 그룹에서 록 그룹, 메탈 그룹으로 음악을 듣는 폭은 점점 넓어졌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사실은 소년의 첫 팝송, 처음 만난 슈퍼 스타는 뉴 키즈 온 더 블록이었음을.


오늘 문득 앨범을 정리하며 중년이 된 소년은, 그때를 추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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