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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금태 Mar 23. 2021

앨라니스 모리셋_같은 공간 속 함께 하는 의미

나의 첫 라이브 공연  관람 이야기

1996년 11월 21일, 작전의 실행 단계부터 장대한 모험을 떠나는 기분이었다.


당시 난 인천 촌구석, 버스도 잘 다니지 않던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19시 30분, 공연 시간에 맞춰 서울 종로 세종문화회관까지 무사히 도착하려면 필연적으로 야자는 빠져야만 했다. 아니 야자뿐 아니라 2시간이나 잡혀 있는 방과 후 보충수업 또한 제쳐야 했다. 보충수업에 야자까지 한 번에 빠진다는 것은, 고3 문턱에 선 고2 에게는 꽤나 큰 도전이었다. 하지만 어찌하리. 이미 내 두 달가량의 용돈을 갈아 넣어 거금을 들인 공연표를 구매해버린 것을.


 모든 것을 빠지기 위한 뭔가 장대하며 슬픈, 누구나 눈물을 흘릴만한 이유가 필요했다. 나의 애달픔이 닿아 담임 선생님도 눈물을 지을 그런 구구절절한 사연이 필요했다.

6교시 수업 시간 내내 두뇌를 풀가동했다. 어떤 이유를 만들어 담임을 감동시킬지.




1995년은 앨라니스 모리셋(Alanis Morissette)의 한 해였다.


그녀의 전 세계 데뷔 앨범 [Jagged Little Pill]은 미국을 넘어 전 세계에 광풍과도 같은 신드롬을 만들어 냈다. 헤어진 남자 친구를 향한 신랄한 메시지를 담은 <You Oughta Know>는 앨범 첫 싱글 컷 되어 미국의 라디오 방송국을 중심으로 인기몰이를 하였다. 이 곡은 우리나라에 불어 닥친 얼터너티브 락 유행에 맞춰 큰 주목을 받았다. 뮤직 비디오 속 황량한 공간을 헤매며 노래를 부르는 모습, 밴드와 어우러져 헤드뱅잉 하는 강렬한 전사의 이미지를 한 긴 머리 그녀에게 난 단박에 사랑에 빠졌다. 다소 신경질적인 창법에서 뮤지션이 전달하는 메시지를 느낄 수 있었다. 목소리의 분위기만으로도 곡을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을 이때 처음으로 알게 된 것 같다.

특히 앨범 수록곡 중 절망적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Forgiven>를 개인적으로 좋아했다.

첫 싱글 <You Oughta Know>를 필두로 <You Learn>, <Ironic>, <Hand In My Pocket>이 연달아 사랑을 받은 데뷔작은 미국 내에서만 1,000만 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리며 그 해 다이아몬드 레코드를 수상했다. - 미국 내에서 천만 장 이상 판매가 되면 다이아몬드 레코드를 수여한다. 참고로 50만 장은 골드, 100만 장은 플래티넘, 200만 장은 더블 플래티넘이다. - 


1997년 개최된 그래미 어워드에서도 6개 부분에 후보에 올라 4개 부부문을 수상한 그녀의 전 세계 데뷔작은, 여성 록 뮤지션의 데뷔작으로는 이례적인 판매고를 올렸다. 당시 사라 맥라클란, 쥬얼, 트레이시 채프만 등 여성 솔로 아티스트들이 대중들의 사랑을 받았고, 여성 뮤지션의 힘을 보여준 릴리스 페어 페스티벌을 개최하기도 하였다. 이런 당시의 바람에 그녀의 등장도 영향을 끼쳤을 거라 생각한다.

음악계의 흐름을 바꾼 그녀의 데뷔 앨범은, 후에 여성 록 앨범의 교과서와 같은 앨범으로 자리 잡았다.


나 또한 그 흐름에 실려 음반 가게에서 CD를 구입한 순간부터 CD가 닳고 닳도록 들었다. 그리고 얼마 후 내한 공연 소식이 들렸고 그녀와의 만남을 하루하루 꿈꾸기 시작했다.




6교시 수업 종료 종이 울리고, 드디어 담임과의 진검승부를 앞두게 되었다. 사실 나의 두뇌를 하루 종일 풀가동했지만 담임을 감동시킬만한 눈물겨운 사연은 찾지 못했다. 당시 나쁜 짓을 하는 것도 아니고, 공연을 보는 것뿐인데 머리를 굴려 핑계를 만드는 것이 싫었던 것 같다. 친구와 함께 그냥 솔직하게 말하기로 하고 교무실을 찾았다. 그리고 너무나 좋아하는 가수가 있는데 오늘 서울에서 공연이 있어 꼭 가고 싶다고 진심을 담임에게 전했다.  

우리의 사연이 너무 진솔했는지, “너희의 눈물겨운 사연을 잘 알았으니 오늘 하루 자유를 허하노라.” 담임의 쿨한 허락을 바로 받게 되었다.


허락을 받으니 마음이 급해졌다. 당시 우리에게 서울로 나가는 것은 큰 모험과도 같은 것이었다. 공연을 보는 것도 설레었지만, 미지의 공간으로 떠나야만 하는 심장이 간질간질한 두근거림이 있었다.

버스를 타고 전철역까지 나와 다시 전철을 타고, 종각역에서 내려 세종문화회관까지 걸어가는 길은 우리에게 모든 것이 새로운 경험과 장면의 연속이었다. 처음 접하는 모든 것에 시간이 천천히 흘렀던 것 같다. 가끔 이런 새로운 것들에 설레던 그때 그 마음이 그리워질 때가 있다.

공연시간 전 세종문화회관에 도착한 우리는 예매한 자리에 앉아 두근거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그녀의 등장을 기다렸다. 7시 30분, 시간에 맞춰 그녀는 밴드와 함께 등장했고, 조용했던 관객석은 일순간 큰 환호와 함께 흥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모든 노래에 맞춰 모두가 떼창으로 그녀에게 화답했다.


앨라니스 모리셋의 공연은 인생 첫 라이브 공연이었다.

그 공연에서 난, 서로 다른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뮤지션이 같아 한 공간에 모여 뮤지션의 손짓 몸짓에 따라 기뻐하고 슬퍼하는 하나가 되는 마음을 처음으로 접하게 되었다. 하나가 된다는 그 기분이 매우 좋았다. 그리고 같은 공간에서 내가 좋아하는 뮤지션과 한 공기를 나누며 순간을 공유하는 느낌이 매우 신기했다. 한 공간에서 같은 감정을 나누며 서로 공유하는 것이 좋아 난 이후 라이브 공연에 빠지게 된다. 요즘은 공연도 익숙해져 조금은 무뎌지긴 했지만, 아직도 공연을 볼 때면 가슴 한편에서 울컥하는 기분이 올라올 때가 있다.


한 시간 반이 넘게 진행된 공연이 끝나고 나와 친구는 흥분되는 마음을 억누르며 집에 가는 전철역으로 서둘러 발길을 옮겼다. 공연장 가던 길을 거꾸로 되짚으며 다시 그 길을 걸었다. 초 겨울 문턱에 차가운 밤바람이 우리의 두 볼을 스쳤지만, 이미 뜨거워질 대로 뜨거워진 우리의 마음은 식히지 못했다. 친구와 집에 가는 전철 안에서 서로가 느낀 감정을 쉴 새 없이 떠들었던 기억이 난다.


하루 종일 나를 들뜨게 만들었던 장대한 모험이 끝이 났다. 작은 행동 하나하나가 큰 용기와 마음먹기가 필요했던 그 때, 우린 그 날 하루를 함께 하며 조금 더 성장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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