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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금태 Mar 03. 2021

제프 버클리_안녕이 늦어 미안해요

따뜻한 꿈을 꾸다

[달러구트 꿈 백화점] 이미예 저

최근 [달러구트 꿈 백화점]을 읽었다.

서점 베스트셀러 코너에 항상 상위에 있어 궁금해하던 참이었다. 마침 구독하고 있는 북클럽에 업데이트된 걸 알고, 옳다구나 하는 마음에 책을 다운로드했다. 자칫 제목과 표지 구성에서 외국 소설 같은 느낌도 들지만, 엄연히 한국 작가가 쓴 소설이었다. 이런 아기자기한 귀여운 상상력의 나래를 펼친 한국 판타지 소설이라니. 책을 읽으며 놀라움과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소설은 잠들어야만 입장 가능한 독특한 마을, 그곳에서 잠든 사람들에게 꿈을 판매하는 달러구트의 꿈 백화점에서 신입 사원으로 일하게 된 주인공 페니가 겪는 다양한 에피소드를 담고 있다.

여러 인물이 등장하는 가운데 특히 사람들이 꾸게 될 꿈을 제작하는 ‘꿈 제작자’란 직업이 흥미를 끌었다. ‘꿈 제작자’는 꿈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이야기를 담아 한 편의 영화와 같은 꿈을 연출하는 직업이다.


사람들은 현실에서 이루지 못한 소망을 꿈에서라도 이루고 싶어 한다. 전전긍긍하는 나날을 보내던 어느 밤, 잠에 빠져 방문한 달러구트의 꿈 백화점에서 사람들은 꿈 제작자가 만든 다양한 꿈을 만난다. 그 꿈 중 원하는 바가 담긴 내용을 찾아 구매하고 꿈을 꾸며 위로받는다. 이렇듯 일상 속 마음의 소망 혹은 응어리를 풀고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하루를 시작하도록 꿈 제작자는 꿈을 통해 현실 속 사람들을 돕고 있는 것이다.


꿈 제작자가 만든 꿈 에피소드는 읽는 내내 흥미로움을 안겨 줬다. 와중에 꿈 제작자 도제가 만든 ‘죽은 자가 나오는 꿈’ 에피소드에는 흥미를 넘어 감정이입을 심하게 하고 말았다. 이것은 내가 직접 겪은 이야기였기에, 더 이상 상상 속 판타지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죽은 자가 나오는 꿈’은 현실에서 안타까운 이별, 제대로 작별 인사를 나누지 못하고 생과사의 갈림길로 나뉘어 버린 사람들을 위로하는 꿈이다. 그 꿈에서는 미처 작별을 제대로 못한 채 할 말이 남은 사람들이 눈물의 재회를 한다. ‘죽은 자가 나오는 꿈’ 대부분은 눈물바다를 이루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눈물 흥건한 베개에 놀라 잠에서 깨면, 무언가 막힌 가슴이 뻥 뚫린 기분이 느껴지며 한결 마음이 편해진 기분을 느낄 수 있다.




그 날의 내 꿈도 그랬다.


엄마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작별을 위한 일주일의 시간이 주어줬지만 쉽게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무엇보다 문을 열고 들어선 집에 따스함이 사라진 것이 가장 힘들었다. 하루 이틀… 엄마의 따스한 온기에 대한 그리움이 커져만 갔다. 응급실에서 엄마와 나눈 혼자만의 이별에 엄마는 어떤 생각이었을까 그 목소리가 너무 듣고 싶었다.


당시는 엄마를 보내고 ‘따스함의 부재’로 생긴 마음의 구멍이 하루하루 커져만 가던 시기였다.


문틈 사이 비치는 밝은 빛에 눈을 떴다. 왠지 문을 열고 빛이 나는 이유를 알아야만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문을 열고 나가자, 식탁 의자에 엄마가 예전 모습 그대로 앉아 있었다.


“엄마 웬일이야? 정말 엄마 맞아?”


갑작스러운 엄마의 등장에 놀라운 마음 반, 행복한 마음 반인 마음으로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는 내게 말없이 미소 지으며 어서 와서 의자에 앉으라며 손짓했다. 보고 싶던 그 손짓과 미소에 눈시울이 뜨거워짐이 느껴졌다.


엄마 앞에 앉자, 엄마는 내 손을 힘입게 잡아 주었다. 마지막에 내가 잡았던 그 손과는 다른 온기가 느껴졌다. 엄마의 몸을 감싸고 있는 빛이 너무나 밝아 순간 이것은 꿈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 거기서는 잘 지내고 있어?”
“물론 잘 지내고 있지. 말도 마라 얘. 두 다리로 다시 걸어 다닐 수 있고 손도 이제 불편하지 않아. 그러니까 아파서 못했던 많은 일을 여기서는 다시 다 할 수 있어.”


엄마는 생전 넉살스럽게 수다를 떨던 표정 그대로 신이나 이야기를 했다. 그 표정을 보고 있자니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럼 아빠도 만났어? 아빠는 어때?”
“그 인간 거기서도 술도 잘 마시고, 밖으로 잘 돌아다니고 그래. 그래도 이제는 엄마한테 충성하며 잘 지내고 있어.”
“다행이다. 엄마 아빠 다시 만나 다시 지지고 볶고 그렇게 지내고 있구나.”


왠지 엄마 아빠가 티격태격하는 모습이 떠올라 웃음이 났다. 내가 웃는 모습을 지켜보던 엄마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며 내가 말했다.


“엄마 잘 지내고 있으니 그러니 이제 너무 엄마 걱정 말고, 이제 엄마는 네가 편하게 지냈으면 좋겠어. 엄마는 우리 아들이 마음 편하게 하루를 살아가면 그거면 충분해.”


엄마는 그 말을 마지막으로 미소와 함께 내 앞에서 사라졌다. 엄마가 내게 하는 당부에 꿈에서 깨야 할 때가 왔음을 느꼈다.


‘엄마 거기서 잘 지내는구나. 이제 내가 씩씩해지면 되는구나.’


꿈에서 깨어나며 생각했다. 엄마와의 마지막 얘기를 나눈 꿈 때문일까. 마지막 함께 나눈 대화에 따스함이 언제나 내 마음에 살아 있는 기분이 들었다. 엄마의 따스함의 부재로 생긴 내 마음속 구멍이 채워짐을 느껴지는 아침이었다.




Jeff Buckley [Grace] (1994)

제프 버클리(Jeff Buckley)는 1997년 5월, 테네시주 멤피스 울프강 선착장에서 수영을 하던 중 실종된다. 1집 앨범 [Grace]의 성공에 힘입어 2집 앨범을 준비하던 때였다. 음악으로 성공 가도를 달리던 앞으로 더 큰 성공을 앞둔 젊은이의 황망한 죽음이었다.


특히 그가 실종되던 날은 2집 앨범 작업을 위해 밴드 멤버들이 뉴욕에서 오던 도중이었다. 도착한 그곳에서 갑작스러운 친구의 죽음은 이들에게 얼마나 당혹스러웠을까. 그리고 친구들에게 미처 작별을 고하지 못한 제프의 심정은 어땠을까.


소설 속 ‘죽은 자가 나오는 꿈’ 에피소드를 읽고 갑작스럽게 누군가를 잃은 사람들이면 한 번쯤이면 겪을 만한 일일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제프 버클리의 갑작스러운 죽음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내가 제프의 가족이거나 친구는 아니지만, 그도 자신의 갑작스러운 이별에 미처 하지 못한 얘기를 하기 위해 가족과 친구들의 꿈에 나왔을 거란 생각도 들었다.  


이들의 꿈에 나타난 제프는 이렇게 말했을 것 같다.


“안녕이 늦어 미안해요. 모두에게 따스한 나날이 있기를.”


꿈속에서 제프의 마지막 인사를 받은 가족과 친구들은 따뜻한 행복을 느꼈겠지. 내가 엄마와의 꿈에서 느꼈던 그 감정을. 마침 오디오 스피커에서 제프의 <Lover, You Should’ve Come Over>가 흘러나온다. 더 이상 그의 목소리가 슬프게만 들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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