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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금태 Feb 13. 2021

레너드 코헨_이렇게 보고 싶은 날에

잘 지내나요? 잘 지내요.

엄마는 어느 추운 겨울, 땅으로 돌아갔다.


병원에 계셨던 일주일은 엄마와 작별하기 위해 내게 주어진 시간이었다.

담담하게 작별 인사를 하고 싶었다. 마지막 가는 길에 울보 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내가 마지막까지 울고 있으면 아들 바보 엄마는 편하게 땅으로 돌아가지 못할 것이다. 그 일주일간 내 몸의 눈물을 조금씩 흘려보내기로 결심했다. 마지막 길에는 내 눈물이 마르기를.


하루에 두 번, 병원에서 허락해준 시간이면 병실에 앉아 엄마에게 지난 이야기를 건넸다. 내 일상 속 기쁨과 슬픔에 취해 잊고 지낸 엄마와 추억을 매일 그려냈다. 이리도 잊고 지낸 이야기가 많았을까. 한탄스러운 마음이 들 때면 쉴 새 없이 흐르는 눈물을 막을 수 없었다. 항상 그 이야기의 끝에는 엄마의 마음이 느껴져 밀려오는 그리움을 주체할 수 없었다. 당연하다 생각한 마음은 당연한 것이 아니었음을 작별의 순간 깨닫게 되었다.

지하철 역을 지나다 본 이 문구에서 문득 엄마와 아빠가 떠올랐다.

돌아보니 내 삶의 기쁨은 일찍 집에 가 엄마가 해주는 집밥을 먹는 것이었다. 밖에 나가 있는 아들이 배는 곯지 않는지 엄마는 항상 걱정했었다. 따뜻한 밥을 먹어야 기운이 난다며 갓 지은 밥과 반찬을 점심시간마다 학교로 갖다 주던 그런 엄마였다.

매일 갔다 준 따뜻한 도시락과 간식은 학창 시절 나의 가장 큰 자랑이었다. 주방에서 요리를 하는 엄마의 뒷모습을 보는 것이 좋았다. 나를 사랑하는 마음이 느껴지는 음식을 먹는 것이 좋았다. 이제는 더 이상 그 자리에 엄마가 없다. 그것을 내가 인정해야 하는 시간이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좋아하는 드라마를 즐겨 보던 침대 머리맡 그 자리에도, 손 걸레질을 해야 바닥이 깨끗해진다며 걸레질하던 거실 한 복판에도, 요리를 좋아해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 그 주방에도...

엄마의 빈자리를 받아들여야 했다. 그제야 화장실 세면대는 항상 하얗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됐다.

사람이 떠난, 덩그러니 남아버린 빈 공간의 무게를 이제는 씩씩하게 견뎌야 했다. 앞으로 씩씩하게 살아가리 다짐을 한 그날 밤은 일주일 중 가장 많이 울었다.

자식들에게 만들어 주고 싶어 수첩에 적어 놓은 엄마의 초계탕 조리법.

매일 허락된 한 시간 동안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엄마와 티격태격 싸우며 화해하고, 행복했던 우리의 지난 시간을 많이 이야기했다. 되도록 엄마 앞에서는 눈물을 아꼈다. 비록 병원 밖에서는 울보였지만, 곁에서는 엄마 손을 꼭 잡고 씩씩한 목소리로 우리의 이야기를 떠들었다.

우리의 마지막 일주일은, 갑작스러운 이별에 내가 흔들리지 않도록 엄마가 온 힘을 다해 붙잡고 있던 이승의 시간이었다. 그 시간은, 큰 슬픔은 잊고 달콤한 그리움만 갖고 살아가라는 엄마가 내게 준 마지막 큰 사랑이었다. 엄마 손을 잡고 지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시간이 있었기에, 내가 충분히 눈물 흘릴 수 있는 시간이 있었기에 마지막에는 담담하게 엄마를 보낼 수 있었다.


우리 이야기가 끝이 다가왔음을 내 눈물도 이제는 말라감이 느껴졌던 밤이었다. 엄마의 눈가에 흐르던 눈물을 닦아주며 마지막 인사를 건넸던 그 밤에 엄마는 나를 떠났다. 항상 부족했던 아들이 더 이상 울지 않고 씩씩하게 자신의 길을 걸어갈 것이라는 안심이 이제는 들었나 보다.




레너드 코헨(Leonard Cohen)의 앨범 [Old Ideas]는 2012년 초에 나온 앨범이다.

이 앨범은 엄마의 부재를 이기지 못해 한동안 잠 못 이루는 내 곁에서 아린 밤의 시간을 나눈 앨범이다.

레너드 코헨은 고해성사와 같은 차분한 읊조림으로 폭풍처럼 밀려오는 슬픔을 잠재워 줬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그리움은 차분하게 흔들릴 수 있었다. 나의 큰 슬픔이 달콤한 그리움이 되도록 그는 긴긴밤 노래해줬다.

 


자거라, 그대여, 잠들거라

하루는 저물어가고

나무에 이는 바람은

서로 방언으로 얘기 나누네


그대 가슴이 찢어졌다 해도

놀랄 일은 아니지

긴 밤이라면

내가 자장가 불러 주겠소


레너드 코헨의 곡 <Lullaby> 중에서


Leonard Cohen [Old Ideas]

1979년 가장 뜨거웠던 여름 엄마와 만났고, 2012년 가장 추웠던 겨울 엄마와 작별했다. 우리의 처음과 마지막에 항상 울기만 한 눈물 많은 아들이었기에 엄마는 늘 걱정이 많았다. 지금도 내가 어디 가서 부족하게 굴지 않을지 걱정하는 하루를 보낼지 모른다. 하지만 더 이상 내 걱정 말고 엄마를 위한 행복한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 남겨진 사람은 떠난 사람을 위한 충분한 작별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으니까.


엄마가 돌아간 그 땅 위에 두 다리로 굳건히 서서 하루를 이겨내는 씩씩한 아들이길. 그곳에서 이제는 아들 걱정을 덜고 당신의 삶을 즐기며 행복하길.

엄마가 보고 싶은 날에,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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