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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금태 Mar 11. 2021

잉글버트 험퍼딩크_선명히 기억나는 그의 목소리

아버지와 나

“이틀 후에 오니까 그때 삼겹살 구워 소주나 한 잔 하자."


아버지는 현관에 쪼그려 앉아 신발을 꾸겨 신으며 내게 말했다. 그리고 그 뒷모습은, 생전 그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이틀 후, 아르바이트 중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수화기 너머 울먹이며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하는 누나 목소리가 들렸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가 이런 것일까. 너무나 황망한 얘기를 듣게 된 난, 통화를 마치고 서둘러 B병원을 찾았다. 병원에 도착해서도 두근대는 심장이 멈추지 않았다. 급하게 뛰어 왔기 때문일까. 아님 지금 일어난 일에 놀란 마음 때문일까.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그냥 지금부터 일어나는 일은 모두 꿈이길 바랬다.


병원 관계자의 안내에 따라 영안실에 들어선 난, 이틀 전 삼겹살에 소주 한 잔 하자던 그를 만날 수 있었다. 꼭 감은 두 눈과 굳게 다문 입술. 온기가 사라져 더 이상 생명이 느껴지지 않는 표정, 그것은 내가 마주하는 그의 마지막 얼굴이 되었다.

젊은 시절, 본인은 방랑벽이 있어 한 군데 정착 못한다며 여기저기를 떠돌던 그에게 어울리는 마지막이었을지 모른다라는 생각이 한편으론 들었다.




아버지는 한 때 중학교 교편을 잡았다는 카더라라는 얘기가 있었다. 하지만 반복되는 갑갑한 생활에 지쳤는지 그 생활도 7개월 정도 하다가 불현듯 출가를 선언하고 절로 들어갔다고 한다.

머리를 빡빡 밀고 절에 있는 동안 교리에 충실한 생활은 한 것 같지는 않다. 절을 드나드는 사람들과 어울리며 늘어난 건 술과 풍류였다.

방랑벽이 있는 한 남자가 세상의 풍류를 아니 엄마와의 결혼 생활도 어디 평탄했을까.

엄마는 항상 집을 나가 있는 그를 기다리는 사람이 되었다. 난 그런 그를 어린 시절부터 원망했었다. 내가 세 살 때인가. 동네 친구들을 집으로 데려 와 마루에 누워 자는 그를 보며 '나도 아빠 있다.'라고 말한 일화는 내가 머리가 크고 난 후 내게 들려주는 그의 가장 가슴 아픈 얘기가 되었다.


항상 밖을 떠돌며 세상 속에 있길 원했던 그는 책과 음악을 사랑하는 남자였다. 어린 시절부터 그의 그런 모습을 보고 자랐다. 그는 항상 집에서 책을 읽었고 음악을 들었다. 노래 실력도 출중하였다. 가끔 거실에서 잉글버트 험퍼딩크(Engelbert Humperdinck)의 <Nothing’s Gonna Change My Love For You>를 따라 부르던 그의 모습은, 어릴 때 내가 좋아하는 모습이었다. 시원스러운 발성과는 대조되는 살며시 감은 두 눈, 잉글버트 험퍼딩크의 <Nothing’s Gonna Change My Love For You> 버전은 여타 뮤지션 버전 중 그가 제일 좋아하는 버전이었다.

그가 즐겨 듣던 잉글버트 험퍼딩크의 앨범

지금의 내 문화적 소양의 씨앗은, 그가 사랑했던 음악과 책이었다.

특이하게 내게 음반을 사줄 때면 같은 앨범을 카세트테이프와 LP로 각각 사주었다. LP로 큰 그림과 사진을 감상하며, 테이프로 편하게 들으라는 배려였다. 그런 그와 음악을 함께 들으며 사랑하는 음악과 음악인에 대해 얘기해주는 시간은 행복한 한 때로 남았다.

어떤 날은 엄마에게 혼나 울고 있는 열 살 밖에 안된 날 데리고 연소자 관람불가 공포영화를 보러 극장에 데려간 것도 그의 손이었다. 문화를 접하고 느끼는데 인색하지 않았던 그 덕분에 어린 시절부터 많은 것을 누리고 살 수 있었다. 중학교 1학년 때 그의 서재에서 몰래 읽었던 '돈 주앙'과 뜻을 어렴풋이나마 알 수 있었던 마광수의 '권태'와 '즐거운 사라'는 중학시절 나의 가장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밖으로만 돌며 가정에는 불성실한 모습을 보인 아버지, 늘 기다리는 사람으로 있던 엄마를 오랜 시간 지켜봐 온 난 그에 대한 반발과 원망이 꽤나 큰 편이었다. 하지만 내가 그의 나이가 되고 돌아보니 그는 아내와 자식을 아주 사랑한 남자였다. 나의 성격이 형성되던 그 시기에 그는 내 곁에서 나란 존재가 하나의 인격으로 성숙해지는데 가르침을 주고 큰 버팀목이 돼준 사람이었다. 이제야 욕을 하면서도 그를 기다리며, 그가 귀가하면 따뜻한 쌀밥에 된장찌개를 식탁에 차리던 엄마의 마음도 조금은 알 것 같다.  


그가 떠난 지 20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그와 함께 나눈 음악과 책 영화에 대한 기억은 오늘 하루도 나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 준다.

언젠가 다시 만나는 날 삼겹살에 소주 한 잔 할 그날을 그리며 아버지가 제게 남겨 준 모든 기억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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