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두고 볼 사이가 아니어서 다행이다.
수습기간 3개월쯤 지났는데 팀장이 나를 따로 부른다.
곧 우리 회사에 디자인 인턴이 하나 올 텐데
지금 대학원 졸업논문을 쓰는 겸
우리 회사에서 3개월 지내게 될 거야.
Woomit이 동생처럼 잘 대해줘.
독일의 많은 대학생들은 하나의 기업과 연계해서 졸업 프로젝트를 진행하곤 한다.
기업과 상의해 주제도 정하고 제품화하는 부분을 기업에서 지원도 해주기도 한다.
아마 패키지 디자인으로 졸업작품을 할 모양인가 보다 하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큰 프로젝트가 두 개나 겹쳐 있어서 정신이 하나도 없었는데 누군가가 와서 도와주면 좋지 뭐 하며.
그녀는 밝고 적극적인 성격을 가진 것처럼 보였다.
특이한 패션 감각으로 주목을 받기도 했지만
패키지 디자이너가 되고 싶어서 본인이 다니는 학교를 지원했고
Siemens나 Ferrero에서 학생 인턴쉽을 해봤고
자기가 얼마나 열정적으로 열심히 사는지를 만나는 회사 사람들에게 늘 설명하는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나는 바보처럼 독일 사람들은 자기 피알을 이런 식으로 하는구나 하며 감탄하고만 있었다.
조금 거슬리는 말들을 내뱉기는 했지만 아직 어리니까 하며 그냥 흘려 넘겼다.
그리고 점심시간에 밥도 같이 먹고 주말에 따로 만나 커피를 마시기도 하며
나름 내 딴에는 팀장이 말한 것처럼 동생처럼 대해주었다.
그런데 한 달 가까이 지나자 그녀의 태도와 말투가 뭔가 이상했다.
월급을 얼마 받느냐고 물어보는 무매너는 애교라고 치고
진행하는 프로젝트에서 내가 제시하는 의견을 모두 묵살하고 자기 마음대로 처리하려고 했다.
내가 지시 내려야 하는 부분을 자기가 지시 내리기도 다반사였는데
이 회사에서의 나의 위치는 아직 3개월 차 신입 디자이너이기에
그리고 아직 회사에서 쓰는 독일어에 완전히 익숙한 것이 아녔기에
너무나 적극적으로 나대는 이 인턴을 제지하기는 어려웠다.
무엇보다 사실 이렇게 행동하는 의중이 뭔지 알고 싶었다.
고맙게도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의 의도를 확실히 드러냈다.
나 여기에 내가 인턴 하고 싶다고 지원하지 않았어.
사실은 팀장이 Xing (독일의 링크드 인과 비슷한 웹사이트) 내 프로필 보고
여기서 일해보고 싶지 않냐고 제안을 했었지. 졸업하기 전이니까 힘들다고
거절했는데 인턴이라도 해보지 않겠냐고 또 물어보길래 그러겠다고 한 거야.
인턴 잘하면 정직원 전환될 수도 있다는 조건으로.
모든 퍼즐이 순식간에 맞춰지는 기분이었다.
독일에서는 수습기간 6개월 안에는 이유를 설명하지 않고
고용주는 해고를, 피고용주는 퇴사를 통보하는 것이 법적으로 가능하다.
그것을 모를 리 없는 그녀였다.
그녀는 내가 자기 자리를 차지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 감정적으로 대처하는 건 너무 프로답지 못한 거 같아서 좀 더 지켜보기로 했다.
아직 3개월 수습기간이 더 남아있으니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한다고 자신을 다독거렸다.
그녀보다 적극적으로 되는 것은 많이 어려웠다.
언어는 어쨌든 나에게 이중부담일 수밖에 없는 부분이니까.
대신 디자인 리서치, 스케치를 더 많이 하고 더 많은 라이노 모델링과 렌더링을 하며
내가 그녀보다 더 많은 가능성이 있음을 일로써 증명하려고 했다.
어느 정도 팀장의 신임도 얻어가고 있었고 수습기간이 1개월 정도 남아있던 어느 날
그녀는 또 내 신경을 거슬리는 말을 한다.
아직 정직원이 될지 안 될지 모르는 거잖아? 정직원이 안되면 어떻게 할 거야?
뻔한 수가 보이는 질문에 짜증이 확 났지만 얄팍한 수에 끌려들어 가며 안된다고 생각하면서
안되면 안 되는 거지. 어디든 나 원하는 곳 찾아서 일할 거니까 상관없어.
맘에 없는 소리를 했다. 사실 여기에 취직한다고 6개월 가까이 남편과 떨어져 지내고 있을 정도로
여러 가지를 포기하고 시작한 일들도 있기에 꼭 정직원이 되어야 했지만
그런 속내를 그녀에게 드러내는 것은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결국 그녀는 내 인내심의 한계선을 밟았다.
내가 꼭 처리해야 될 일이 있었는데 할 일이 많아서 아직 마무리 못했다고 말하자 혀를 찬 건이다.
쯪쯪쯪... (그것도 고개를 좌로 우로 흔들며)
그녀를 똑바로 쏘아보며 지금 뭐 하는 거냐고 물었다.
나를 쳐다보지도 대꾸도 하지도 않고 스케치를 계속 하는 그녀에게
더 이상의 자비를 베풀지 않고 나야말로 철저히 무시하기로 결정했다.
그 후 하나에서 열까지 그녀를 공기처럼 무시했다.
아무것도 먼저 묻지 않고 그녀의 질문에 예/아니오 단답형으로만 대답했다.
결국 자기도 눈치가 보였는지
한국 라면을 잔뜩 사들고 와 선물이라며 내 책상 위에 올려두기도 했다.
그러나 그러든지 말든지 이미 내 마음은 상할대로 상했기에
다른 사람에게는 평소처럼 친절하게 대하며 나는 그냥 내가 할 일만 계속하고 있었다.
그리고 대망의 그날, 그동안 조금씩 나에게 신임을 주고 있던 팀장이
다른 사람 몰래 인턴에 대한 내 의견을 물어보았다.
우리 팀에 한 명을 더 충원한다면 그녀가 우리 팀에 어울릴지를 말이다.
그냥 가만히 열심히 일하면서 나랑 잘 지냈더라면 내가 참으로 좋은 말을 해줬을 텐데.
그러나 나는 솔직한 나의 의견을 팀장에게 전해주었다.
Die arrogante Besserwisserin (오만한 척척박사)이라고
우리 팀에 꼭 필요한 인재 같지는 않다고
팀장은 나의 거친 단어 선택에 흠칫 놀랐다.
회사에서의 나는 그동안 누구에 대해 뒷말을 한 적도 없고
무슨 일에도 베시시 웃는 그냥 얌전한 동양인 이미지라
아마 이런 대답을 기대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그녀는 팀장에게조차 이런 것은 내가 더 잘 안다는 식의 말도 안 되는 피력을 몇 번 했나보다
그 덕에 어느 정도 나의 의견을 수긍하는 듯했다.
2018년 7월 8일
그렇게 나는 정식으로 이 회사의 정직원이 되었다.
그리고 그녀에게는 우리 회사에서 남아 계속 같이 일하기는 힘들겠다는 통보가 갔다.
회사를 떠날 무렵 그녀는 사실 자기는 일하기 전에
여러 가지를 더 경험하고 싶었다며
중국으로 교환학생을 간다는 얘기를 해 주었다.
우리 사무실에 기술 엔지니어 3명 디자인 3명 이렇게 일하는데
나빼곤 전부 남자여서 여자 직원이 한 명 더 생긴다면 참 좋겠다고 여겼던 터라
적어도 초반에는 그녀와 같이 계속 일할 용의가 있었다.
나는 생각을 많이 하고 행동하는 타입인데 반해 그녀는 행동이 생각보다 빨랐고
나는 언어로 뭔가를 정확하게 전달하는데 아직 미숙하지만 그녀는 그렇지 않았으니까.
게다가 그녀의 부모님은 러시아인들이라 외국인과 독일어로 대화하는 것에 대한 배려가 익숙해 있어서
내가 하는 말의 의중을 꽤 정확히 파악할 줄 알았다.
그녀가 기술적으로 모자란 부분은 충분히 내가 채워줄 수 있는 문제였고
일 궁합을 굳이 따진다면 어느 정도 같이 잘 일할 수도 있었을지 모를 일이다.
그녀가 이상한 여우짓만 안 했더라면.
그렇게 그녀는 이곳을 떠났다.
나에게 무지 버거웠던 마지막 3개월 수습기간의 추억을 남긴 채.
어차피 오래 볼 사이 아니었지만 팀장한테 뒷담화 한 건 좀 미안하게 됐다.
안녕! 정신차리고 잘살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