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로 살아남기
드디어 열 달을 꽉 채운 아기가 자궁 밖으로 나오기 위해서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이런 것이 진통이구나!
그때는 목숨을 쥐락펴락하는 진통마저도 행복했지
내가 진통을 느끼는 것은 아기가 살아서 밖으로 나오겠다는 신호였으니까"
아무리 기다리고 기다렸던 진통이라고 하더라도 밖으로 나와야 할 아기가 안 나오니까 또다시 불안감이 엄습했을 것이다. 딸의 출산을 돕기 위해 산파로 와 있던 외할머니는 아기 머리가 보이는데 막상 아기가 밖으로 나오지 못하자 어쩔 수 없이 극약 처방을 결심했다고 한다.
"거기 조서방! 어서 가서 사금파리 좀 찾아와 봐?"
결국 날카로운 사금파리로 자궁문을 쭉 찢은 후 아기의 머리와 몸통을 밖으로 끌어냈다고 한다. 당시 엄마는 어떻게든 이번에는 아기를 제대로 낳아야 된다는 생각과 죽을 것 같은 진통으로 아랫도리가 찢겨 나가는 것조차도 느끼지 못했다고 하니 당시 상황이 얼마나 급박하게 돌아갔을지 짐작이 되고도 남는다.
지금 같았으면 의사의 판단에 따라 정확한 집도가 이루어졌을 것이고 또 몇 바늘 꿰매는 치료가 이루어졌겠지만 53년 전 시골 촌 구석에서는 전혀 상상도 못 해 봤을 일이다. 그렇게 찢긴 엄마의 산도는 영영 치유되지 못한 채 여자가 아닌 엄마로 살아가는 출발선이 되었다.
받아쓰기
추석날 오후
혼잣말을 되뇌는 엄마
니들 외할머니 성묘는 다녀갔겠지
외할머니 성묘는 꼭 해야 쓴다
니들 사 남매 다 니 외할머니가 받았어
큰애 너 듣고 있냐
너 낳을 적에 산도는 작은데 애는 크고 워쩌것냐
니 위로 죽은 자식을 둘이나 쏟았으니
외손자를 살려야 딸자식이 살겠다 싶었겠지
그래서 사금파리로 좁은 산도를 쫙 찢은거라
큰애 너 낳고 얼마나 쓰라리고 아프던지
한 이레는 쭈그려 앉을 때마다 애를 또 낳는 것 같더라
워디 그뿐인 줄 아냐
장손 집안에 시집와 애도 하나 못난다고
시집살이를 얼마나 시켰겠냐
백마강 난간에 서서 강물을 빤히 보는데
울고 있는 니 외할머니 얼굴이 강물 위에 떠 있더라
그래서 못 죽고 돌아왔어
딱 칠 년 만에 목숨 걸고 아들 하나 겨우 낳았는데
고생했다는 말은커녕 순 꽁보리밥만 주니께
니 외할머니 마음이 또 워쩌것냐
사부인! 혹시 쌀 좀 없어요
독일 간 아들 치성드릴 것밖에 없는데요
니 외할머니 딸 가진 죄인이라
암 말도 못 하고 조용히 돌아서더니 날마다
쌀밥 한 그릇 품에 넣어와
나한테 멕이는겨
다 부모 맘이었것제
그땐 엄청 아프기만 했는데 지금 되돌아보니
니 아버지랑 밤을 십수 년이나 보내면서도
단 한 번도 좋은 걸 몰랐으니까
아마 그때 큰애 너 낳은 채로
둘째 셋째 넷째 낳고 그라 고도 둘은 더 흘렸으니
뭐가 더 있었겠냐
-졸 시 「받아쓰기」 전문/ 시집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를 나라고 할까>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