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구나무서기

by 조서정 시인

쳐다보기도 아까운 아들을 얻었으니 세상 부러울 것이 없었다. 그래도 쭈그려 앉아 오줌을 눌 때마다 찢긴 산도에서 전해지는 쓰라림은 오로지 홀로 감당해야 될 출산의 고통이었다. 거기다 몸도 성치 않은 시어머니가 미역국도 없이 차려다 주는 꽁보리밥은 모래알보다도 더 까끌거렸다고 한다.


출산을 하고도 제대로 된 밥 한 끼 못 얻어먹는 딸 모습을 지켜보던 외할머니 가슴은 시커멓게 타 들어갔으리라. 보다 못한 외할머니가 어렵사리 할머니한테 물었다고 한다.


“사부인! 혹시 쌀 좀 없을까요?”


“쌀이 조금 있기는 한디 고것은 독일에 광부로 간 둘째 아들 무사히 돌아오라고 치성드릴 거라 안 돼요”


이 말을 들은 외할머니는 바로 집으로 달려가 고봉으로 퍼 담은 하얀 쌀밥을 당신 가슴에 품어 가지고 와서는 금방 출산한 딸한테 먹였다고 한다. 친정 엄마가 가져온 밥인들 어디 마음 편하게 넘어가겠는가. 그래도 산모가 뭐라도 먹어야 아기한테 먹일 젖이 나올 거라는 생각에 꾸역꾸역 그 밥을 다 먹고 아기 입에 젖을 물렸다고 한다.


그렇게 귀하디 귀하게 얻은 아들을 포대기로 폭신 싸서 업고 나가면 근동에 사람들이 다 몰려와서 한 마디씩 거들었으니...


“이 얘가 그 이쁜이예요?

아이구나!~ 참말로 잘 생겼네요 “


주변 사람들도 엄마가 어렵게 아기를 낳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모두들 오빠를 금덩이 바라보듯 귀하게 대접했다고 한다. 그래서 오빠는 태어나면서부터 아주 각별한 대우를 받으며 성장했다. 그 옛날에 백일사진과 돌 사진을 다 찍어줬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이렇게 귀하디 귀하게 태어난 오빠 뒤를 이어서 내가 엄마의 자궁문을 열고 둘째로 태어났다. 음력 12월 양력으로는 입춘 다음 날, 내가 태어나던 날에 마침 마을에 혼례가 있었다고 한다. 아버지는 마을 혼례에 가서 여흥을 즐기시느라 부어라 마셔라 구호를 외치는 순간에 엄마는 외할머니 손을 잡고 진통을 견뎌내느라 이빨을 악물었다는데...


나는 엄마 뱃속에 거꾸로 박혀 있어서 좀처럼 나올 기미가 없었다고 한다. 결국 엄마가 목숨 걸고 나를 낳아놓고 기진맥진한 상태로 누워 있을 즈음, 술에 취해 집에 돌아온 아버지가 엄마한테 하신 말씀이 나중에 나한테까지 전해질 줄은 당시엔 차마 모르셨을 것이다.


“아이고! 이번까지는 아들일 줄 알았는데 딸이네

흑! 흑! 흑! “


아버지는 애 낳느라 고생했다는 말 대신에 아들을 기대했는데 딸을 낳았다고 흐느껴 우셨다고 한다. 엄마가 얼마나 서운했으면 훗날 이 이야기를 나한테까지 전해주셨을까 싶다. 요즘 같으면 임신 중에 서운하게 하면 평생 간다고 조심하는 분위기인데 옛날에는 영 다른 분위기였던 것 같다. 물론 술에 취해서 하신 행동이라고 하지만 엄마 입장에서는 겁나 서운했을 것 같다.


아무튼 내가 성장해서 성인이 되었을 때 이 이야기를 엄마한테 전해 듣고 아버지한테 따진 적이 있다.


“아버지! 솔직하게 대답해 주셔야 돼요”


“알았다. 뭔 이야기인데 그렇게 무게를 잡고 그러는 거냐? 얼른 얘기해 봐라”


“엄마한테 들었는데 제가 태어났을 때 이번까지는 아들일 줄 알았는데 딸을 낳아 놨다고 아버지가 우셨다면서요?”


그때 아버지는 꼭꼭 숨겨두었던 비밀이라도 들킨 얼굴로


“아니다. 누가 그런 소리를 하대? 나는 절대 그런 적 없다.”


하긴 그때 내가 태어나지 않았으면 아예 아들만 낳으셨을 테니 그럴만한 반응이었다. 어쨌든 내가 자라는 동안 아버지는 나한테는 무조건 OK였다. 예비군 훈련을 다녀오실 적에도 양쪽 주머니에 사탕 한 봉지, 과자 한 봉지를 사들고 오셔서는 마중 나간 내 손에 몰래 쥐어주곤 하셨다.



물구나무서기


아들 셋에 딸 하나

우리 사 남매 가운데 돌림자가 용이다

둘째까지는 아들일 줄 알았다며

눈물을 흘렸다는

내 탄생의 비밀을 끝내 인정하지 않은 아버지는

아주 진보적으로 딸 이름에 돌림자를 붙여줬다

태어나기 전부터 정해져 있던 성과

옛다 선심 쓰듯 붙은 돌림자 외에

선택할 수 있었던 마지막 한 글자는

순하게 살라는 의미에서 붙은 순이었다

그런데 용순이란 이름을 가진 친척 덕에

순하게 살아가라는 엄마의 뜻이 좌절되면서

순에서 ㄴ이 뒤집어진 ㄱ이 붙어 숙이 되었다

그때부터 이름값 하며 사느라

때맞춰 한 번씩 온 집안을 발칵 뒤집었다

세상 이치에 어둔 네 살 때

산에 약초 캐러 가는 엄마가 떼어놓고 갔다고

메밀꽃밭을 통째로 뜯어놨다고 한다

그날 이후 이름 대신 싸낙빼기로 불렸다

초등학교 때는 며칠 전 내린 비에

운동화 장수가 다 떠내려가서 운동화를 못 사 왔다고 둘러대는

가난한 엄마 속을 왈칵 뒤집었다

열한 살 때는 아들딸 차별하는 할머니 불호령에

딸자식 잘못 키웠다는 이유로 무릎 꿇은 엄마한테

같이 죽자고 농약병들고 설쳐서 온 집안을

발칵 뒤집었다

성인이 되어서도 평소에는

원만한 것은 다 받아넘기는 순한 성품이다가

이치에 어긋난다 싶으면 한 번씩 뒤집어지는

천성을 여과 없이 드러낸다

승천 순간을 사람에게 들켜 이무기가 되었다는 용처럼

무심히 내 삶의 의지를 배반하는 사주팔자 앞에서는

엄마 뱃속에서 익힌 발길질로

하늘을 향해 보란 듯이 발차기를 날린다


-졸 시 「물구나무서기」 전문/ 시집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를 나라고 할까>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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