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단속

by 조서정 시인

문단속


오래 살아야 두 달 산다는 아버지를

노인병원에 모시던 날

보호자는 있을 곳 없으니

이제 그만 다들 돌아가라는 수간호사 말에

한순간도 엄마와 떨어져 살아본 일 없던

아버지 눈동자가 힘없이 흔들린다

하는 수 없이 엄마까지

입원 수속을 밟고 돌아서는데

어머니 내 귀에 대고 살짝 속삭인다

글쎄 동네 홀아비 김 씨가

한밤에 건넛마을 팔순 과부를 겁탈했다는 소문이

동사무소에 파다하단다

니 아버지 먼저 가면 나 무서워서 어떻게 산다냐

대문 없는 집에서도 평생 맘 편히 잘 살았는디

니 아버지 가면 얼마 안 있다 바로 따라가든지

아니면 제일 먼저 대문부터 해 달아야 쓰겄다

제삿날 받아놓은 아버지 곁에

새색시처럼 바싹 달라붙어 있는 칠순 엄마가

처음으로 여자로 보였다


-졸시 「문단속」 전문 / 시집 <모서리를 접다>에서




10년 전 그날, 나는 너무도 생생한 꿈에 놀라 번뜩 눈을 떴다. 내가 아버지 상여를 붙잡고 아주 서럽게 울고 있는 꿈이었다. 참 이상한 꿈도 있다 싶어 한참 정신을 수습하던 순간에 전화벨이 울렸다.


“엄마! 아침부터 무슨 일이세요?”


“응, 니 아버지가 좀 안 좋으시다. 그러니까 오늘 집으로 내려와라”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다. 갑자기 아버지가 안 좋으시다니 이제 겨우 칠십이 되셨는데... 그날 우리 사 남매는 엄마의 갑작스러운 호출을 받고 시골집에 모였다. 그리고 엄마로부터


“대천에 있는 병원에 갔는데 니 아버지가 간암 말기란다. 앞으로 두 달 살면 많이 산단다.”


평소 같으면 자식들이 왔다고 가장 먼저 뛰어나와 반겨주셨을 아버지가 아랫목에 누워 계셨다. 간이 호흡기를 입에 단 아버지는 호흡이 가쁘신지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듯 불안 불안해 보였다. 간암 말기 증세에 광산에 다닐 때 얻은 규폐 증세까지 더해져서 상황이 더 안 좋았다.


아버지의 모습을 확인한 우리 사 남매는 마당으로 나와 아버지를 어떻게 모실 것인가 의논했다. 당장 병원에 모시자니 토요일이라 응급실로 들어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친척이 운영하는 인근 요양병원에 이틀만 모셨다가 월요일에 대전에 있는 종합병원에 모시기로 최종 합의하고 아버지를 요양병원으로 모시고 갔다.


노인요양병원에 근무하면서 많은 주검을 배웅했던 아버지는 그곳이 당신 생의 마지막 자리라는 것을 직감하셨던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요양병원에 도착한 아버지는 한참 동안이나 차에서 내리는 것을 머뭇거리셨다. 내가 그런 아버지를 부축하면서


“아빠!~ 지금 숨 쉬기가 많이 힘드시니까 여기서 월요일까지만 계셔요. 그럼 제가 월요일에 올라와서 대전 큰 병원으로 모시고 갈게요”


아버지는 그제서 안심이 된다는 듯이 천천히 몸을 움직였다. 입원 수속을 밟고 아버지를 요양병원에 혼자 두고 나오려는 그 순간 아버지의 눈빛이 불안하게 흔들렸다. 그래서 내가 아버지한테 다가가서


“아빠!~ 엄마도 여기다 두고 갈까요?”


아버지는 얼른 고개를 끄덕이셨다. 그렇게 우리는 아픈 아버지를 요양병원에 혼자 두고 나올 수 없어 멀쩡한 엄마까지 요양병원에 입원시킨 후에 월요일에 모시러 올 테니 이틀만 계시라고 하고는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월요일이 되어 부모님을 대전 큰 병원으로 모시고 오기 위해서 요양병원으로 찾아갔을 때 엄마가 우리를 밖으로 데리고 나가더니


“니 아버지가 그러는데 여기도 괜찮다고 하더라. 또 모르는 집도 아니고 아는 집인데 이왕 들어왔으니 일주만 여기에 더 있다가 대전으로 옮기는 것이 좋겠다.”


완고한 엄마의 결정을 바꿀 수 없었던 우리 형제들은 그날부터 교대로 요양병원을 들락거렸다. 그때쯤이었던 것 같다. 하루는 엄마가 나한테 얼마 전에 동네에서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있잖아. 아랫동네에 사는 개똥이 엄마가 얼마 전에 면사무소에 와서 소릴 지르고 난리를 쳤다더라”


“왜요?”


“아니 그게 저 윗집 사는 홀아비가 밤에 혼자는 사는 개똥이 엄마 집에 들어가서 개똥이 엄마를 덮쳤다더라. 아이고 남사 시워러라. 노인네들이 뭣하는 짓거리인지 원... 개똥이 엄마도 그렇지. 남사 시럽게스리 그걸 면사무소에 와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면서 그 놈 잡아다 벌주라고 난리를 쳤다드라. 그 얘기 듣고 보니까 니 아버지 살았을 때는 한평생 대문 없이도 잘 살았는데 막상 니 아버지 죽고 나면 나는 무서워서 워찌 산다냐? 니 아버지 죽으면 언능 대문부터 해 달아야 쓰것다.”


“알았어요. 엄마! 아버지 돌아가시면 시골집에 대문부터 해 드릴게요”


지금까지는 그냥 우리 사 남매의 엄마로만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 순간에 아!~ 우리 엄마도 여자였구나! 하는 뒤늦은 깨달음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왜 하필 죽을 날 받아놓은 아버지 옆에서 엄마도 여자라는 사실을 깨달았을까? 늦어도 너무 늦었다. 거기다가 그동안 내가 얼마나 바보 같은 짓들을 많이 했었던지 지난 일들이 파노라마처럼 기억을 마구 헤집어 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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