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몽

엄마로 살아남기

by 조서정 시인

결혼 7년 동안 2번의 유산을 경험했던 엄마는 아기 하나만이라도 낳아보는 소원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당장 눈앞에 닥친 가난한 현실이나 층층시하 시집살이는 그다지 견디기 힘든 고통 축에도 들지 않았다. 어떻게든 눈이 비뚤어진 아기라도 한 번만 낳아 봤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이 엄마의 이십 대를 통째로 집어삼켰다.


또 시집 가서 애 못 낳는 딸을 지척에서 지켜봐야 했던 외할머니 마음도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열여섯어린 나이에 낳아 기른 딸인데 친정에서 온갖 고생만 시키다 시집이라고 보내놨더니 순풍순풍 애도 못 낳고 죽은 새끼만 연달아 낳아대니 그 속이 말이 아니었을 것이다.


달 차서 유산을 번복하는 아내를 지켜봐야 했던 아버지 마음도 편치는 않았을 터. 보다 못한 아버지가 읍내 한약방에 가서 한약 두 첩을 지어다가 엄마한테 달여 먹게 했다고 한다. 한약방에서는 태아가 달이 차서 자궁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자꾸 죽어 나오는 이유가 애기보가 작아서 그러는 거라면서 한약을 지어줬다고 한다.


할머니 눈에는 애 못 낳는 마누라도 마누라라고 한약까지 지어다 받치는 아들이 못내 못마땅했던 모양이다. 어떻게라도 애 하나라도 낳아 보겠다고 자기 먹을 한약을 자기 손으로 꾸역 꾸역 다리고 있는 며느리 뒤통수에 대고...


"애 못 낳는 것이 무슨 유세라도 된다냐~ 한약까지 지어다 받치고 지랄이여. 속 창세기도 없는 놈"


그렇게 말할 것 같으면 할머니도 아기를 못 낳아 정화수 떠 놓고 매일 기도한 덕분에 겨우 아버지를 낳았다고 한다. 그 뒤로는 줄줄이 태어나서 3남 1녀를 키워내셨지만 여하튼 첫 아이를 힘들게 가진 것은 할머니나 엄마나 비슷한 처지였다. 그랬음에도 불구하고 시어머니 눈에는 애 못 낳는 며느리가 뜨거운 감자였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7년여의 세월 동안 오로지 애를 낳기 위해 긴긴 밤을 하얗게 불태웠을 엄마와 아버지의 노력 때문이었는지 드디어 엄마가 요상한 태몽을 꾸었다고 한다. 뭐! 요즘 말로 할것 같으면 번복 유산으로 인해서 신혼을 제대로 즐겼겠다고 말할 수도 있겠으나 그 속내는 시커먼 숯껌댕이 였다는 것이 엄마의 증언이다.


태몽


숲에서 날아온 쟁끼 한 마리가 내 품으로 날아왔는디

한쪽 날개를 다쳐서 날지를 못하는겨

다친 날개에 빨강 파랑 천을 묶어 다시 날려보냈더니

구름을 뚫고 하늘로 솟구치더라 그 꿈을 꾸고 니 오빠를 낳았어


아장아장 걸음마를 시작혔는디 저 건너 형준이가

니 오빠를 번쩍 들어 낭떠러지로 내동댕이친겨

칠 년 동안 애를 못났다가 겨우 니 오빠 낳고 니들도 태어난 것인디

니 오빠 그때 잘못됐으면 나도 밥숟가락 놓았것재

다행히 조상님 은덕으로 어깨만 부서지고 살아났더라


그때 병원에서 니 오빠 어깨에 인공 못 하나를 박아넣었는디

오 년 후에 빼주라는 걸 입에 풀칠하기도 힘들던 시절이라

고걸 못 빼줘서 그 못이 내 가심에 박힌겨

그랴서 지게 지는 농사꾼으로는 살지 말라고

내 뼈가 다 바스러지는 것도 모르고 니 오빠 뒷바라지를 혔다


봄부터 겨울까지 창출 캐고 잔대 캐고 고사리 뜯어

니 오빠 뒷바라지를 한겨

니가 왜 오빠만큼 안 갈쳐줬냐고 따져도 내 할 말은 없다만

지금 니 오빠가 저렇게 비향기 타고 외국 돌아댕기는

관광 일 하는 것도 다 태몽풀이 하는겨

근디 그 뭐시기 코로나라나 뭐시기는 원제 끝나는겨?

니 오빠가 다시 비향기 타고 하늘로 솟구칠 때가 됐을 거인디 말이다


-졸시「태몽」 전문/ 시집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를 나라고 할까>에서


엄마는 지금도 오빠의 태몽과 직업을 연결시켜서 말씀하시곤 한다. 비둘기와 비행기 그리고 다리를 다쳐서 날지 못하던 비둘기 다리에 묶어준 빨간색 천과 파란색 천 등...


엄마의 태몽 덕분인지 오빠는 여행사를 운영하면서 세계를 유람하며 나름 행복한 삶을 가꿔왔다. 최근에 코로나19가 터지기 전까지만 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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