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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설가 김서령 Jun 26. 2023

라일락 주택수리 회사

트렁크를 방에 밀어넣고 그들은 응접실에 앉았다. 잠깐의 침묵이 흘렀다. 연두가 지윤에게 물었다.

“무슨 생각해?”

지윤이 대답했다.

“낮술을 먹을까 말까 생각해.”

“당연히 먹어야지.”

은규가 대답하자 주영이 덧붙였다.

“중요한 건 족발이냐, 낙지볶음이냐 하는 거야.”

반지가 손을 반짝 들었다.

“내 생각은 좀 달라.”

“네 생각은 뭔데?”

모두가 물었다.

“밥부터 먹어야 한다고 생각해.”

반지의 진지한 대답에 네 여자가 동시에 대답했다.

“할머니 집에 가서 먹어.”

흥, 반지가 콧방귀를 뀌었다. 겨우 오전 열한 시였다.

“족발 시켜줘. 낙지는 매워. 사이다 한 잔 마시고 갈 거야.”

“사이다 안 된다고 했잖아!”

지윤이 발칵 소리쳤지만 세 여자가 지윤을 말렸다.

“놔둬! 엄마와 이모들의 낮술을 이렇게 너그럽게 이해하는 효녀가 어딨다고 감히 잔소리질이야!”

우쭐해진 반지가 자세를 고쳐 앉았고 주영은 배달 앱을 열어 족발을 주문했다. 은규는 냉장고에서 소주와 맥주를 미리 꺼냈고 연두가 주방으로 날름 달려가 사이다 한 캔을 꺼내왔다. 그들은 술잔과 사이다를 따를 유리잔을 꺼내놓고 배달 라이더를 기다리기 시작했다.     

1학년치고는 키가 크고 살집이 제법 있는 반지였지만 지윤의 아버지 상태 씨는 그런 반지를 냅다 안아 올렸다. 반지 끼니를 거르면 진도 7.0의 지진이 일어나는 줄 아는 경자 씨가 남편 상태 씨를 보낸 것이었다. 역시 끼니를 거르면 전쟁이 터지는 줄 아는 반지가 족발을 먹던 젓가락을 내던지고 상태 씨에게 안겼다. 

“니들은 밥 안 먹냐?”

“족발이면 충분합니다, 아버님!”

“그래, 새집 들어온 첫날이니 기분 째지겠네. 축하한다. 그런데 고추 장아찌 엄청 맛있던데 가져다줄까? 짜지도 않아.”

“이따 얻으러 갈게요, 아버님!”

“그래, 꼭 가지고 가라. 지윤이 엄마 고추 장아찌가 맛있는 건 5년에 한 번쯤 있는 일이야.”

일흔이 넘어 반백이지만 여전히 청바지를 즐겨 입는 상태 씨의 목에 대롱대롱 매달려 마당을 나가는 반지를 보며 은규가 중얼거렸다.

“정말 첫날이네. 이런 날이 진짜 올까 싶었는데.”

연두가 피식 웃었다.

“그러네. 오긴 오네. 다 내 덕이긴 하지만.”

주영이 톡 쏘았다.

“무슨? 내 덕인데?”

은규도 말을 보탰다.

“니들은 가만 보면 내가 아무것도 안 한 것처럼 말한다? 그거 기분 되게 나빠.”

지윤이 정리했다.

“라일락 대표님 앞에서 니들 말을 너무 함부로 한다? 이거 다 내 작품이거든?”

네 여자는 지지 않고 잘난 척을 해댔다. 아직 점심나절이었으니 잘난 척을 더할 시간은 충분했다. 그들이 대낮부터 술을 푸는 라일락 1호점 맞은편 집, 그러니까 연정 주택단지의 유일한 놀이터 모퉁이 4미터 골목 왼쪽 집은 라일락 주택수리 회사 오피스였다. 1호점처럼 나지막한 담장을 두르고 마찬가지로 풍성한 꽃밭을 만든 그 집에는 사무실로 쓰는 아담한 거실과 연두와 주영의 침실이 하나씩 있었다. 내일은 연두와 주영이 그동안 빌려 쓰던 원룸에서 짐을 챙겨 나와 그곳으로 이사를 할 것이고 오후엔 오픈식 시루떡을 동네에 돌릴 예정이다. 반지까지 다섯이서 연정으로 우르르 내려온 지 4개월 만의 일이었다. 지윤의 전화가 울렸다. 경자 씨네 맞은편 집에서 빨래방을 하는 은주였다.

“집들이 정확히 몇 시부터야?”

“너 오면 시작할 거야.”

지윤이 시침을 뗐다.

“두 시간만 기다려. 오늘 조기 종료할 거라고. 족발 시켜놔!”

은주의 말에 네 여자가 화들짝 놀랐다. 은주를 못 기다리고 벌써 족발 접시를 거의 다 비웠는데.

“오늘 족발집 문 닫았다고 하자.”

주영의 말에 모두 끄덕였다. 은주에게는 미안하지만 다음 안주는 낙지볶음이다. 연정에 와서 벌써 열 번도 넘게 시킨 낙지볶음은 정말 최고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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