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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설가 김서령 Jun 26. 2023

은주네 빨래방

가게 외벽 수리를 하고 세탁기와 건조기들이 실려 오던 날, 경자 씨는 망연한 얼굴로 은주를 쳐다보았다. 중신 잘못 선 죄가 있다고 모른 척 못 하는 경자 씨가 우스워 은주는 두유 팩에 빨대를 꽂아 내밀었다. 

“도대체 이 노인네들이 사는 동네에 빨래방이 웬 말이냐고. 집에 세탁기가 다 있는데.”

은주가 냉큼 대답했다. 

“아줌마, 지긋지긋하지도 않아요? 이 동네 와서만 40년 동안 빨래를 했어요. 이제 좀 편하게 사시자고. 여기 와서 그냥 돌려! 막 돌려요! 건조까지 싹 해서 보송보송하게 가져가면 끝이에요.”

“아니, 집에 세탁기 놔두고 왜애!”

“건조기!”

“마당에서 널면 되는 걸, 왜애!”

인부들이 세탁기와 건조기를 설치하는 동안 은주는 경자 앞에 바짝 붙어 앉았다. 

“아줌마, 연정이라고 해서 미세먼지 없는 줄 아세요? 기껏 빨래 잘해서 미세먼지 잔뜩 묻혀가지고, 그걸 다시 입어요? 안 돼요, 이젠 건강도 생각해야지.”

“놀고 있네. 말이 되는 소릴 해야지. 우리가 빨래를 40년만 했겠어? 빨래 같은 건 일도 아니라고. 힘든 줄도 몰라. 그건 그냥 밥 먹는 거랑 똑같다고, 이것아.”

경자 씨가 그만 일어서려 했다. 그때 은주가 경자 씨의 옷자락을 잡았다. 

“아줌마.”

경자 씨가 돌아보았다. 사실 은주도 입이 잘 떨어지지 않았다. 태어나보니 경자 씨가 한동네에 있었고 그래서 내내 보고 자랐다. 무람없으나 이런 부탁을 해도 되는지는 잘 몰랐다. 하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은주는 연정에서 살아내야 했다.

“저 도와주세요.”

느껴졌다. 경자 씨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는 것이. 경자 씨는 어쩌면 지윤을 떠올렸는지도 모르겠다. 동네에 유명짜했던 잘난척쟁이 배지윤. 둘째 딸이 어딘가에서 은주 같은 부탁을 누군가에게 한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가슴이 벌렁거리는지 잠깐 숨을 고르는 경자 씨에게 은주가 다시 말했다.

“아줌마가 도와주셔야 해요. 그래야 제가 여기서 살아남을 수 있어요. 전 여기에 인생 걸었어요. 부탁드려요.”

“내가 참말로…… 못 살겠다.” 

경자 씨가 중얼거리며 괴로운 얼굴로 돌아섰다.      

은주도 처음부터 연정에 돌아올 생각은 아니었다. 하지만 방법이 없었다. 아들 때문이었다. 돌쟁이 아이를 두고 은주가 일할 도리가 없었다. 몹쓸 짓이라는 걸 알면서도 엄마의 손을 빌릴 수밖에 없었다. 

“니 사정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은주야, 그래도 연정에 가는 건 좀…… 니네 엄마도 입장이 있는데.”

지윤도 처음에 그렇게 말했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었다. 

“언니, 나 경자 아줌마한테 매달릴 거야. 아줌마는 나 도와줄 거야. 그치?”

경자 씨는 알아주는 동네 오지랖 대장이었다. 동네 주차 문제, 쓰레기 문제, 신문 배달 문제와 키우는 개 문제까지 모조리 참견하는 사람이었다. 통장을 20년 넘게 해왔고 몇 년 전 연정주택단지 재건축 바람이 불었을 때도 제일 먼저 조합장 후보로 거론된 이였다. 경자 씨가 도와준다면 빨래방도 금방 입소문을 탈 수 있을 거였다. 

“나는 언니랑 달라. 아기를 봐줄 사람이 없어. 여기뿐이야, 내가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덴.”

“그래, 내가 엄마한테도 얘기해둘게. 은주야, 잘 준비해. 어른들한테 욕 안 먹게.”

회사에 사내 어린이집이 있는 지윤은 출퇴근 때 반지를 데리고 다녔다. 퇴근 후에 밥을 해먹이면 더 늦어진다고 아예 회사 식당에서 저녁까지 먹였다. 독한 년이라고, 저 정도면 학대 아니냐고 수군대는 사람도 있었지만 은주는 그런 지윤이 부러웠다. 돌쟁이 아기를 두고 제대로 일할 수 있는 곳이 없어 은주는 하마터면 이혼을 후회할 뻔도 했다.      

동네 대부분 집은 노인네 둘이거나 혼자였다. 빨랫감이 그리 많지도 않았거니와 누구한테 빨래를 맡겨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니까 이틀에 한 번, 사흘에 한 번 세탁기 돌리지 말고 한 달에 한 번만 여기 오는 거죠. 세탁 4천 원, 건조 4천 원. 한 달에 8천 원이면 끝.”

은주는 경자 씨를 앞에 두고 설명했다.

“그럼 빤스가 서른 장씩 있어야겠네? 한 달에 한 번 빨래를 한다면?”

“빤스 서른 장 있으면 안 돼요? 이마트 가면 빤스 열 장에 만오천 원인데? 4만5천 원이면 빤스 서른 장인데?”

“수건도 서른 장?”

“지금도 수건은 서른 장 넘을걸요?”

경자 씨가 풀풀 웃었다. 

“백 장도 넘을 거다, 야.”

은주는 시범 삼아 수건 빨래를 해 보였다. 햇볕에 빠닥빠닥 수세미처럼 말린 수건과 다르게 폭닥폭닥한 걸 보더니 경자 씨가 입을 쩍 벌렸다.

“젊은것들이 환장할 만하네. 야, 니들은 이렇게 다 빨래방에서 수건 빠냐? 그럴 거면 혼수로 비싼 세탁기는 왜 해처가니?”

“그러니까요. 혼수로 세탁기랑 건조기 해가는 거 법으로 막아야 해요.”

경자 씨는 공책에다 차근히 써 내려갔다. 

‘빤스 서른 장, 수건 서른 장, 폭신폭신 마름.’

“또 뭐가 있어?”

“제가 다 개어드릴 거예요. 여기다 빨래 바구니 던져놓고 가시면 제가 다 돌려서 착착 개어드릴게.”

“우리 집 양반 빤스까지 니가 개어준다고?”

“못 할 게 뭐 있어요? 개어드려요.”

“느이 엄마 기절한다? 그러라고 너 키웠냐?”

“괜찮아요.”

경자 씨는 공책에 또 썼다.

‘빤스도 개어줌.’

“그래도 뭔가 부족해……”

경자 씨의 말에 은주가 눈을 도르륵 굴리다 말했다.

“배달.”

“배달?”

“네, 전화 주시면 제가 빨래 가지러 갈게요. 끝나고 다시 배달. 어때요?”

“노인네들이 할 일도 없는데 빨래 들고 왔다갔다하면 되지, 뭔 배달까지.”

“원하시는 분들은 배달. 아니면 빨래 수레 대여해 드리고요. 그냥 들면 무거우니까.”

경자 씨는 빨래 담는 수레를 탐내고 있었다. 저런 거 하나 사서 빨래 넣어 끌고 다니면 모양새도 괜찮고……, 그런 생각을 하는 듯해서 은주가 꺼낸 말이었다.

“또 뭐가 필요할까요, 아줌마?”

“배달은 됐고, 수레나 빌려주면 될 거 같애. 여기 놀고먹는 할배들 보고 끌고 다니라 하면 되지, 즈이들도 덜 심심하고. 바둑판 들여놓으면 안 되나?”

“좋아요!”

은주가 기쁘게 소리쳤다. 경자 씨가 또 공책에 썼다.

‘수레 빌려줌. 바둑판.’

하지만 경자 씨는 곧 ‘바둑판’에 죽죽 줄을 그어버렸다.

“아니야, 이건 아니야. 할배들이 여기 드나들면 여자들이 안 와.”

아, 그렇구나. 은주가 끄덕였다. 

“그럼, 안마의자 들여놓을까요?”

“안마의자는 요 앞 사우나에도 있어.”

“거긴 2천 원 내고 쓰잖아요. 여긴 공짜로.”

경자 씨는 그 말에 그만 혹했다. 공짜 안마의자라니. 경자 씨의 표정을 보며 은주는 빨래방을 동네 사랑방처럼 만들고 싶어졌다. 커피와 차와 간식거리들이 있고, 안마의자가 있고, TV가 있는 곳. 빨래를 돌려놓고 종종 짜장면도 시켜 먹고 콩국수도 시켜 먹으면 그거, 괜찮잖아? 경자 씨는 은주의 말을 빠르게 받아썼다.

‘안마의자. 짜장면. 콩국수.’

경자 씨는 공책과 폭신폭신한 수건 다섯 장을 수레에 싣고 빨래방을 나섰다. 본격적으로 영업에 나설 시간이었다. 20년 통장 경력의 경자 씨를 은주가 따라나섰다.     

빤스 서른 장 이야기에 질겁하던 동네 여자들은 은색으로 반짝이는 빨래 수레를 보며 이쁘다, 이쁘다 감탄했다. 게다가 까만 가죽 손잡이는 또 어떻고. 

“마트 갈 때 좀 빌려주면 좋겠다아!”

보경이네가 쓸데없는 소리를 주절거렸다. 

“수건도 좀 만져봐. 폭신폭신하잖아. 우리가 그동안 뭘 몰라가지고 맨날 미세먼지 잔뜩 묻은 수건만 쓴 거야. 그러니까 젊은 애들이 똑똑하긴 해. 안 그래? 우리도 이제 젊은 애들 말도 좀 듣고 살아야 해.”

수건에 관심을 두는 동네 여자들은 많지 않았지만 안마의자와 짜장면과 콩국수는 반응이 좋았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여자들이 빨래방을 찾아간 건 은주가 이혼을 해서였다. 은주도 그걸 잘 알고 있었다.

빤스 서른 장, 수건 서른 장 운운했지만 매일 아침 빨래하는 것이 일상이었던 동네 여자들은 빨래를 그렇게 모아둘 줄 몰랐다. 아무 때나 빨랫거리를 들고 왔고 두어 번 수레를 빌려 써본 뒤 그것도 그만두었다. 하긴, 골목길에서 수레를 밀고 다니면 덜컹거리기나 하고 바퀴만 상하지. 

통유리로 된 빨래방 앞을 지나다가 누군가 안에 있으면 문을 열고 들어왔고, 안마의자 공짜로 쓰는 게 미안해서 집에 도로 가 빨랫거리를 털어왔다. 누군가 김치찌개 냄비를 통째 들고 오면 은주 엄마가 식은밥을 양푼 가득 퍼왔고, 은주는 열심히도 빨래를 개었다. 긴 테이블을 빼고 평상을 놓은 건 아무래도 잘한 일이었다. 동네에 아기들이 원체 드무니 두 살배기는 누가 안아줘도 안아주었다. 은주는 재바르게 굴었다. 동네 여자들이 수다에 빠져 있는 동안 날래게 빨래를 집마다 배달하고 돌아왔다. 대문이야 발로 빵 차면 되는 일이었으니까.     

“밥해대느라 돈이 더 나가겠어.”

경자 씨는 종종 은주네에게 농을 던졌다. 짜장면이고 콩국수고 시켜 먹을 일이 없는 게, 은주네는 대놓고 동태찌개를 끓이고 청국장 비빔밥을 내놓았다. 동네 여자들은 밥을 먹으러 한 줌 빨랫거리를 들고 빨래방에 왔다. 빨래방은 아주 오래전부터 이 동네에 있었던 것 같았다. 은주는 여전히 빨래를 잘 개고 배달도 잘했다.

“우리가 아직 경로당 갈 나이도 아니고, 그래서 갈 데가 없었는데 빨래방이 있어서 너무 좋네.”

동네 경로당은 적어도 팔순은 넘어야 갈 수 있는 곳이었다. 아직 일흔 줄의 경자 씨 또래들은 넘볼 수 없었다. 가 봐야 80대 호호 할머니들 시중이나 들어야 했다. 호호 할머니들이 오며 가며 빨래방을 들여다보고는 안마의자를 부러워했기 때문에 은주는 개업 1주년 기념으로 경로당에 안마의자를 기부했다. 그리고 지윤에게 전화를 걸었다.

“언니. 이 동네 있잖아…… 참 괜찮다?”

그 말에 지윤이 까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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