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영은 지윤의 대학 동기였다. 어느 전공이나 마찬가지겠지만 시각디자인 전공자들의 앞날도 각양각색이었다. 강남역 인근에 꽃집 자리를 계약했다고 해서 구경 삼아 들른 날, 지윤은 기겁을 했다.
닭갈비집, 찜닭집, 후라이드치킨집, 닭발집이 앞뒤 좌우로 포진해있는 좁은 골목, 좁은 창고 같은 곳이었다. 세상 닭 냄새가 종류별로 퍼지고 있었다. 꽃향기는커녕 닭 냄새만 맡다가 지레 질릴 것 같았다. 여기서 꽃집을 하겠다고? 실제로 그날, 주영과 지윤은 후라이드치킨을 먼저 먹고 느끼한 속을 달래기 위해 매운 닭발을 먹었다. 꽃 얘기 같은 건 꺼내지도 않았다.
하지만 한 달 후, 지윤은 더 놀랐다.
에그타르트 한 상자를 사 들고 응원 겸 들렀던 날이었다. 주영은 목장갑을 낀 손으로 바닥에 헤링본 무늬 시트지를 깔고 있었다. 폐기물을 실어내고 석고보드를 댄 벽에 청록색 페인트를 칠한 내부는 벌써 예뻤다. 꽃 한 송이 들여놓지 않았는데 이미 꽃집이었고, 있지도 않은 꽃향기가 번지는 희한한 장소였다.
“바닥이 아무래도 마음에 안 들어서…… 구둣발로 밟으면 빨리 망가질 것 같긴 한데, 그래도 이게 나을 것 같아.”
을지로에서 직접 골랐다는 황동 조명과 재단만 맡긴 나무로 직접 만들었다는 작업대와 진열대는 결이 곱고 색도 아련했다. 젯소를 칠하고 천연 페인트를 바른 뒤 바니쉬를 두 번이나 칠했다고 했다. 학교 때 그렸던 별것 아닌 그림들도 다 꺼내 와 벽에 걸었는데, 이런 게 왜 꽃집에 필요하나 싶은 마음은 전혀 들지 않았다. 주영의 손길이 닿는 족족 그것들은 하나하나 멋스러웠다.
“미친년……”
미안하지만 그 말밖에 할 수 없었다. 주영이 이런 사람이었구나. 그동안 그걸 몰랐구나.
지윤은 집수리 클래스를 들으면서도 내내 주영을 떠올렸다. 주영은 꽃집을 성공적으로 꾸몄지만 그렇다고 장사까지 잘한 건 아니었다. 원래 세상이 그런 법이니 말이다. 그래서 주영을 찾아갔다.
“저기…… 먼데 가서 조그만 꽃밭이나 꾸미면서 사는 삶은 어때?”
지윤이 말을 꺼내자 주영은 떨떠름한 표정을 했다.
“뭐래?”
“그러니까…… 내가 잘 아는 동네인데, 마당이 엄청 좁아. 그 좁은 데다 감나무도 심어놓고 사과나무도 심어놓고…… 암튼 다들 엉망이거든. 막 김장독도 묻어놨어. 김치냉장고도 다 있으면서 말야. 말라비틀어진 백일홍 같은 거 다 파내고, 거기다 예쁘게 제라늄도 심고, 금잔화도 심고…… 그렇게 예쁘게 가드닝을 해주는 거지.”
“왜?”
“음…… 돈을 좀 벌어보자는 거지.”
“왜죠? 왜 돈을 벌 수 있을 거라 생각하죠?”
주영이 대놓고 비아냥거렸다.
“그러면서 집도 좀 고치고. 엄청엄청 오래된 집들이거든. 근데 또 뼈대는 탄탄하게 잘 지은 집들이라 아주 큰 공사가 들어갈 필요는 없어.”
주영이 다 식은 페퍼민트 차를 홀랑 비웠다. 그러고는 지윤을 흘겨보았다.
“집수리 클래스 6개월 배우고 나니 건축까지 막 할 수 있을 것 같아?”
“난 영업이사가 될 거야. 집은 니들이 고치고.”
“니들? 다른 멤버 있어? 누구?”
“이제 찾을 거야.”
주영이 기가 막힌 듯 입을 쩍 벌렸다.
“말이 안 되는 소리가 아냐. 거기 오래된 단독만 800세대야. 다들 조금씩 조금씩 고치면서 살고 있긴 한데, 담도 다 삭았고, 지붕도 엉망이고…… 대문은 발로 차면 녹이 우수수 떨어져. 마당은 몇 번이나 시멘트만 덧칠해서 그거 다 걷어내고 잔디 깔아야 해. 꽃밭 예쁘게 만들고 담장만 낮춰도 정말 달라질걸? 옛날 젊은 사람들 많을 땐 다들 옆에다 사랑채를 덧지었다? 근데 요즘 신혼부부들이 거길 왜 세 들어? 다 비었다고. 그거 부수고 마루 넓혀야 해. 내가 영업할게. 진짜로 잘할게. 우리 딱 3년만 일하고 오자.”
완전히 허무맹랑한 생각만은 아니라고 지윤은 확신했다.
한동네에 30년, 40년씩 산 집들이 대부분이라 어느 한 집 수리해 놓으면 보나 마나 와글와글, 어디서 고쳤어? 누구한테 맡겼어? 할 게 빤했다. 경자 씨네 계모임만 몇 번 따라가 영업을 해도 일감 없어 손해날 일은 없을 것 같았다.
“거기도 이미 떡 자리 잡고 영업하고 있는 토박이들이 있을 거라고. 안 그래? 없겠어?”
지윤이 목소리에 힘을 줬다. 저도 모르게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물, 론, 있겠지! 그게 무슨 상관이야? 우리가 이기면 되지. 내가 누구야? 나, 배지윤이야!”
“차나 마셔.”
주영은 티포트에 따뜻한 물을 더 부었다. 지윤은 조금 김이 샜다. 정말 가능성이 없는 일일까? 아닌데…… 잘될 것 같은데. 페퍼민트 차는 더 마시고 싶지 않았고 지윤은 가방을 들고 일어서려 했다.
“지윤이 너는, 한 번도 실패해본 적이 없지?”
주영의 질문이 뜻밖이었다.
살면서 그런 질문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답을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미대 진학을 결심했고, 운 좋게 합격했다. 예고 출신들 사이에서 따돌려지는가 싶기도 했지만 원체 시끄럽게 잘 노는 스타일이라 그런 일은 금방 무마되었다. 학부 시절 특출한 재능을 자랑하지는 못했지만 조그만 게임회사에 입사했고 판타지아테일즈가 생각지도 못한 대박을 치는 바람에, 그리고 선배들이 임신과 출산으로 줄줄이 휴직과 사직을 하는 동안 지윤은 기어이 버텼기 때문에 당연히 수석 일러스트레이터가 되었다. 별 부침이 없었다.
“결혼은 실패했지.”
그래도 무언가를 찾아낸 사람처럼 지윤이 비장하게 대답했다.
“니가 싫어서 헤어진 게 왜 실패야? 성공이지.”
그것도 성공이었구나.
어라, 배지윤, 꽤 괜찮은 삶이었네?
“그 사업이 잘될 거라 예상하는 건 아닌데, 아무튼 난 낄 거야. 같이 가.”
주영의 말에 도리어 지윤이 화들짝 놀랐다.
“한 번도 실패한 적 없는 배지윤의 에너지를 믿는다는 거야, 지금?”
“아니.”
주영은 단호했다.
“그럼?”
“나, 갈 데 없거든. 여긴 말아먹기 직전이고, 집에선 시집도 안 간 정신 나간 딸년 취급이고. 사는 게 심심하고 지루해 돌아버릴 것 같으니까 뭐, 거기 가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
“사랑해, 주영아. 잘 생각했어!”
“그런데……”
“그런데 뭐?”
“은규 데려가자.”
은규? 강은규, 그 미친년? 걔가 한국에 있었어?
지윤은 그날 밤, 거울 앞에 섰다. 파자마 위에 작업 벨트를 두르고 드릴과 망치를 꽂았다. 목장갑도 껴 보았다. 그러고는 반지에게 물었다.
“반지야, 엄마 어때? 멋있어?”
“그냥…… 무서운데?”
반지는 이제 빈말 말고 솔직한 대답도 할 줄 알았다. 지윤은 반지를 꽉 안아주었다.
“엄마가 원한 게 바로 그거야! 무서운 거! 엄마는 무서운 사람이 되고 싶어! 아무도 못 건드리게!”
그러고는 까르르 웃었다.
연정엘 가면 반지는 아무래도 경자 씨의 몫이 될 것이었다. 그것만큼은 마음에 걸렸다. 내 노동력을 자유롭게 쓰기 위해 엄마의 노동력을 다시 착취하는 삶. 엄마는 참아주겠지만 또다시 빚을 지고 마는 삶. 경자 씨에게 돌보미 비용을 지급하는 것과는 별개로 죄책감이 들 수밖에 없었다. 참말 끊이지 않는 노동의 순환이었다. 경자 씨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사내 어린이집에서 지내는 반지 때문에 애를 태웠다.
“불쌍한 것. 너무너무 안된 것. 그 어린 걸 어찌 온종일 거기다 두니? 밥은 제대로 먹이기나 한다니?”
“나보다 잘 먹여. 주말에 내가 해주는 밥, 반지 안 먹으려고 해. 맛없다고.”
아무리 말해도 끝내 가여운 아이 취급이었다. 그래도 사내 어린이집이 있어 지윤이 기어이 버틸 수 있었다. 휴직을 하면서 중국동포 이모님이 반지를 봐주기 시작했다. 동네 유치원 하원 시간인 세 시부터 저녁 여덟 시까지. 그새 이모님에게 정이 든 반지는 이제 연정에 갈 때 펑펑 울지도 몰랐다.
양육권 소송 때도 그랬다. 판사는 지윤에게 물었다.
“지금 직장이 없으시죠?”
화들짝 놀란 지윤이 대답했다.
“아뇨, 있습니다. 출산휴가 중이에요. 복직할 겁니다.”
직장이 없는 백수 엄마에게 양육권을 줄 것 같지 않았다. 지윤의 말이 끝나자마자 판사가 빠르게도 되물었다.
“그럼 애는요? 어린이집에 온종일 맡겨요?”
변호사가 책상 아래에서 발로 지윤을 툭 찼다.
“아, 아닙니다. 복직은 나중에요. 아이는 직접 키울 겁니다.”
판사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럼 돈은 어떻게 벌어요?”
무슨 질문이 이래…… 어쩌라는 거야?
“예금이 충분합니다. 집도 있어요.”
그렇게 우스꽝스러운 답변을 했다. 직장이 없어도 안 되고 직장이 있어도 안 되는 엄마 자격이라니.
지윤은 옆에 앉은 남편의 얼굴을 잠깐 쳐다보았다. 저 사람은 같은 질문에 무어라 답을 할까? 남편도 아이를 맡아줄 사람이 없는 건 마찬가지다. 하지만 판사는 그에게 그런 질문을 하지는 않았다. 왜 저 사람한텐 그 질문을 하지 않죠? 따질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화증이 매일매일 쌓여 걸핏하면 얼굴에 두드러기가 올라오던 시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