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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인현 Sep 23. 2020

024_감정 이상의 위로

여름이 오늘 운전면허시험에서 불합격했다. 


차를 몰고 도로를 돌아 시험장으로 무사히 돌아왔지만 어딘가에서 감점이 되었다고 했다. 아마 급정거나 신호 위반이나 방향지시등 오작동 등 몇 가지의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여름은 나에게 한숨과 낮은 목소리와 표정으로 자신의 실망감을 표현했다. 사실 더 나쁠 일은 없었다. 시험 결과는 이미 나왔고, 시험은 다시 치르면 된다. 난 실제로도 여름에게 그렇게 이야기했다. 다시 시험을 쳐서 합격을 하면 된다고. 물론 다음번 시험에서 또 불합격을 할지도 모르지만.


아무렇지 않을 일, 나쁘게 볼 경향은 전혀 없는 일인데도 나는 그 일이 마음에 걸렸다. 여름이 그 일로 실망한 표정을 지었기 때문이다. 여름도 어쩌면 실제 자신의 감정보다는 강하게 나에게 표현했을지도 모른다. 그건 위로받고 싶은 마음이다. 나는 나의 위로여름에게 가서 위로가 된다는 사실이 기쁘다. 그리고 그런 마음은 나도 마찬가지다. 나는 언제나 여름에게 위로받고 싶고, 위로받을 일이 생기면 제일 먼저 여름에게 말한다. 내 실제 마음의 크기보다 더.


서로가 강하게 결속되어 있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기쁘거나 슬플 때, 작은 성공을 이루거나 좌절할 때. 감정에 파문이 생겨 마음속에 진동이 일어날 때. 우리는 항상 서로를 찾고, 서로에게 위로받는다. 때로는 그게 여름이 아니라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든다. 강하게 결속되어 있다는 느낌은 결국 행동과 말로 드러난다. 만약 나에게 그런 행동을 보여주는 다른 이가 있다면 여름과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지금 나는 여름 이외의 위로를 상상하지 못한다. 그게 결국은 상상력의 문제라고 해도 다른 존재의 다른 형태의 위로가 지금 내게는 큰 의미가 없다. 여름이 짓는 안쓰러운 얼굴과 날 위하는 말들이 내게는 소중하다. 그렇게 믿기 때문에 우리는 서로를 향해 더 큰 실망을 보여주고 더 큰 위로를 얻는다. 내 감정 이상의 아주 큰 위로가 마음을 어루만진다. 그러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힘이 생긴다. 


오늘 여름과 나는 진한 커피와 당과 탄수화물이 가득한 케이크를 먹을 것이다. 

기꺼이 카드를 꺼내는 것도 아주 유용한 위로의 방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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