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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인현 Oct 04. 2020

025_오직 한 사람을 위한 인터뷰

내가 묻고 여름이 답하다



지금의 너는 어릴 적 꿈꾸던 그런 사람이 됐어?     

직업이나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는 어릴 때랑 상상했던 거랑 다르고. 영화를 공부했으니까 영화감독이 되는 게 꿈이었지. 영화감독이 아니라도 그 언저리에서, 영화 현장에서 일하고 있겠다는 막연한 꿈이 있었고, 그건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어떤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꿈꿨던 거는 이루고 있는 거 같아. 다른 사람에게 힘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거든. 마음이 아프거나 시련을 겪고 있는 사람들을 도와주는 사람이 되고 싶었어.      


하는 일은 다르지만 삶이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는 거 같아     

내가 여러 가지 관심사가 많잖아. 사진 찍는 것도 좋아했고, 영화도 좋아했고, 시를 쓰는 것도 좋았고, 다큐멘터리도 만들었고. 그걸 왜 하냐고 묻거나 그걸 해서 얻고자 하는 게 뭐냐는 질문을 자신에게 하면 분야는 다르지만, 나처럼 안 좋았던 과거가 남은 사람들. 그런 걸 지닌 사람들에게 치유가 될 수 있는 무언가였으면 좋겠다는 게 내가 하는 일에 전제되어 있던 거야. 그렇게 생각해보면 지금의 나는 어릴 때부터 간직했던 그 목표는 계속 실행하고 있고, 지금도 그렇게 살려고 해서.     


커피도 그런 면이 있어?     

커피를 바에서 내리는 거부터, 로스팅도 하고, 카페에서 디자인 작업도 하고. 그것도 내가 하는 일이 즐겁게 전해졌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하니까. 영화나 책은 내가 만들어도 사람들이 좋다는 반응이 나한테 즉각적으로 느낄 수는 없잖아. 커피는 사람들의 반응을 바로 받을 수 있으니까, 그게 나에게 이 일을 즐겁게 할 수 있는 보람이 되는 거지.     


5년 전의 너와 비교해서 제일 크게 변한 점은?     

5년이면 23살? 제일 크게 변한 건 나를 내가 스스로 돌봐줄 수 있게 된다는 점. 5년 전의 나는 슬픔에 빠지면 그 슬픔에 빠져서 어떻게 할 줄 몰라 나를 내버려 뒀었는데, 지금은 슬픔에 빠져도 내가 이런 상태니까 슬픔을 느끼겠지, 내가 다시 일어서거나 즐거운 마음을 가지려고 어떻게 해야 하지라고 스스로 물어보게 되었다는 거. 그러니까 나를 즐겁게 하려고 노력하게 됐어. 행복하기 위해서 노력이 필요하다는 걸 깨달았고.      


그렇게 변하게 된 제일 큰 원인은 뭘까?     

점점 변했겠지 나도. 하루는 카페에서 일을 하는데 너무 피곤하고 힘들었어. 짜증 나고 우울한데 내가 사람들을 상대하는 일이니까, 짜증을 못 내는 거야. 사람들을 만나서 돈을 받고 일을 하는 거니까, 억지로라도 기분 좋게 사람들을 대해야 하는 거지. 그게 감정 노동일 수도 있는데 나는 그런 식으로라도 사람들에게 밝게 대하니까 피곤했던 게 조금 사라지더라. 연기가 조금 섞인 밝음을 사람들에게 주니까 사람들이 좋아하고 그러니까 힘이 나더라고. 나는 원래 힘이 들면 무력해지는 사람이었는데. 기분이 좋은 것 같은 행동을 하니까 내 마음도 그렇게 되는 거 아닐까. 내 의지로 행동을 취하면 기분도 거기에 따라가는 거 아닐까. 내가 즐겁고 행복한 쪽으로 움직이려고 하다 보니 그렇게 바뀐 거지.     


지금 가지고 있는 것 중에 잃어버릴까 두려운 게 있다면?     

너. 두려워할 필요 없어 그건아, 그럼 젊음. 늙어서 내가 아름다워 지지 않으면 어떡하지란 생각. 꽤 있어. 미모 자체가 소중한 거지. 나의 가치에서 보이는 아름다움이 있었을 텐데. 나이가 들면 다른 게 생긴다고 해도 지금은 어리고 젊음에서 나오는 아름다움이 절대적으로 보여. 그런데 내가 적절한 인터뷰 대상이 되고 있나?     


다른 질문을 해볼까살면서 네가 정말 알고 싶었는데 알 수 없었던 사실이나 감정이 있어?     

없어. 그런 미스터리는. 그때 왜 그랬을까 하는 그런 거지? 나는 자꾸 내가 생각나는데. 제일 미스터리 한 건 바로 나야. 네가 다른 사람한테 뭘 했어너 새벽에 불러놓고 2시간 있다 가라 그러고 그랬잖아. 왜 그랬어지금 당장 보고 싶어서 만나고 2시간 있으니까 혼자 있고 싶었던 거지. 그걸 못 견뎠어. 내 마음대로 안 하는 걸.     


너와 내가 정말 다르다고 느꼈지너도 그런 게 있나다르다고 느끼는 거.     

스스로를 극한까지 몰아붙였을 때 느끼는 희열. 창작이든 체력적인 고통이든 자기를 극한까지 몰아가는 거. 또 그래야만 한다는 강박. 그런 걸 이해할 수 있어? 아니난 절반 정도로 오래 하자는 주의지그게 달라.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치를 내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해보자, 그렇게 자신을 힘들게 하고 아프게 하는 그런 게 있지. 그러면 결과가 좋아결과는 그렇게 잘 나오지 않는데 불안한 거지. 내가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는 게.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 몰아세웠어. 특히 영화 만들 때 그랬는데.      


지금은 영화를 안 만들잖아인생을 통틀어서 이루고 싶은 다른 게 있어?     

마음의 안정. 나를 만나는 사람은 다 나로 인해 즐겁고 행복한 거. 예전에 알았던 지금은 왕래하지 않는 친구들이 잘 살았으면 좋겠다는 이런 느낌이 아니라, 요즘은 순간순간들이 정말 소중한 거야. 짧게 만나는 사람들과 이야기와 그런 것들. 예전에는 정말 나 말고 관심이 없었는데. 이제 내 갇힌 시각으로 사람들을 보고 싶지 않고, 사람들을 백지상태로 보고 싶고, 알아가는 게 재밌어. 그걸 유지할 수 있도록 내 육체와 내면을 가꾸고, 나를 소중히 여겨야지.      


남은 인생 동안 한 사람을 오랫동안 좋아할 수 있다면 그 이유는 뭘까?     

내 몸의 일부가 되는 것 같아. 장기같이. 장기를 쉽게 떼어낼 수 있겠어? 맹장이라면 가능하지너는 이유가 있어? 글쎄널 좋아하는 이유는 이미 잊어버렸어.     


그러면 마지막으로하고 싶은 말이 있어?     

아이슬란드에 꼭 가고 싶어. 지금은 코로나 때문에 못 가지만. 코로나 전에도 안 갔잖아지금 하는 일이 좋으니까. 내가 자리를 비우면 누군가 나를 대체해야 하니까. 많은 게 바뀌어 있지 않을까. 나를 잊고 하하호호 즐거운 것도 싫고. 대체되는 것도 싫어. 그럴 바엔 안 돌아가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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