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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인현 Sep 16. 2020

023_사랑하는 사람과 불편한 여행하는 법

내가 한 달 정도 인도 여행을 했다고 하면 대부분 무덤덤한 반응을 보인다.

그런데 인도 여행을 여름과 함께 했다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놀라워하며 묻는다.


여행하면서 안 싸웠어?


물론 조금 싸우기도 했겠지만 우리는 인도에서의 시간들을 아름답게 기억하고 있다. 인도는 아주 다이내믹하고 멋진 나라고, 재밌고 친절한 사람들도 많다. 반면에 인도는 여행하기에 난이도가 높은 국가이기도 하다. 더러운 환경이 많고, 이동기간도 길며, 너무 많은 사람과 낙후된 시설, 그리고 조금은 떨어지는 성관념, 시민 의식 등으로 인해 불편한 상황을 겪게 될 확률이 높다. 여름과 싸우지 않았냐고 묻는 까닭이 그런 걱정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비록 코로나 시대이지만 언젠가 여행을 갈 수 있게 될 날을 기대하며, 사랑하는 사람과 불편한 여행을 슬기롭게 가는 팁을 적어보기로 한다. 각 파트에는 절대 해서는 안 되는 금기어를 같이 달았으니, 이 말이 밖으로 나올 것 같으면 밟아서 없애버리기 바란다.



1. 생리적 욕구에 귀 기울여라

금기어 : 아까 먹어놓고 또 먹어? 아까 화장실 갔는데 또 가?


여행 중 가장 빈번한 다툼은 다름 아닌 생리적 욕구 때문이다. 배고픔, 수면욕, 피로 그리고 배변욕구. 인도에서 우리가 가장 곤욕을 겪은 건 다름 아닌 배변욕구다. 인도의 화장실에 대한 끔찍한 이야기를 많이 들어보았을 것이다. 물론 실제보다는 과장되어있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인도의 화장실이 편하다고는 할 수 없다. 대부분의 화장실이 사방으로 열린 구조에다가, 상상 이상으로 지저분하고, 그마저 찾기도 어렵다. 그리고 배변욕구는 한 치 앞을 예상할 수 없게 갑자기 들이닥친다는 점, 외부로 드러내기 어렵다는 점, 참을 수 있는 시간이 아주 짧다는 점 등 문제가 발생할 소지가 높다. 


그래서 항상 서로의 생리적 욕구에 귀 기울이면서 예의 주시해야 한다. 그리고 그런 욕구가 생겼을 때 바로 상황을 공유하자. 그리고 욕구에 대해서는 어떤 것보다 우선해서 해결할 수 있도록 서로 최대한의 노력을 하자. 그러려면 여행지에서 항상 생리적 욕구를 해결할 있는 포인트를 먼저 체크해야 한다. 예를 들어 어떤 곳에 어떤 화장실이 있는지, 정보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이용이 가능한 상태인지 확인해야 하고 이를 바탕으로 배변욕구가 찾아왔을 적절한 해결책을 제시해야 한다. 그러면 생리적 욕구로 문제가 생길 일은 현저히 적어질 것이다.



2. 계획이 흐트러져도 무시하기

금기어 : 네가 준비를 늦게 해서 그렇잖아, 거기서 화장실에 너무 오래 있었어, 네가 제대로 안 알아봐서 그렇지


여행은 보통 계획과 함께 한다. 전체 계획과 일일 계획 혹은 시간당 계획이 촘촘히 짜여 있는 경우도 있다. 인도의 경우 이런 계획은 보통 잘 지켜지지 않는다. 일단 기차 등 이동수단이 제시간에 오지 않고, 소요시간도 제 멋대로다. 최신 정보를 구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가게가 쉰다거나, 도착해보니 아무것도 없다거나, 사기를 당해 엉뚱한 곳에 도착하기도 일쑤다. 갑자기 컨디션이 안 좋아질 수도 있다. 


그럴 때 내가 계획을 아무리 열심히 고심해서 세웠고, 또 그 시간이 아니면 다시는 경험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더라고 무시해라. 계획이 흐트러진 이유에 대해서 따지기 시작하면 무조건 싸움이 난다. 그냥 기쁘게 받아들여라. 계획이 흐트러져서 새로운 경험이 생기고, 사랑하는 사람이 생리적 욕구를 해결할 수 있었다. 최대한 긍정적으로, 실행하지 못한 계획 따위는 쓰레기통으로 넣어버리길 추천한다.



3. 가치 있는 시간은 각자 다르다

금기어 : 아, 여기서 이러지 말고 딴 데 가자.


예를 들어, 여름은 디저트 먹는 걸 좋아하고, 옷이나 장신구를 사는 걸 좋아한다. 나는 공원 같은데 느긋하게 앉아서 사람 구경하는 걸 좋아한다. 여행지에 가서 각자 시간을 보내는 방법은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런데 각자의 가치 있는 시간을 무시해서는 안된다. 사랑하는 사람이 좋다면 나도 좋은 것이다. 그런 마음으로 각자가 가치 있다고 믿는 시간을 함께해보자. 그러면 나에게도 즐겁고, 편안한 순간이 찾아올지도 모른다. 그리고 상대방이 나의 시간을 같이 즐겨주었기 때문에 상대방도 나의 시간에 기꺼이 함께할 것이다. 



4. 간단하고 충실하게 기록 남기기

금기어 : 아니, 지금 그걸 왜 해?


남는 건 사진밖에 없어. 물론 그것도 맞는 말이지만 기록 활동을 하는 건 여행에서 목적의식을 갖게 해 준다. 오랜 기간 동안 같이 여행을 하다 보면 목적의식이 희박해질 때가 있다. 여행의 목적이라고 해봤자 당연히 즐겁고, 재미있게 어딘가에 있다 오는 것뿐일지도 모르지만, 세세하게 그 즐겁고 재미있게의 기준을 따지다 보면 차이가 발생하기도 한다. 시간과 돈은 한정적이고 여행은 매번 선택이 필요하다. 내 생각엔 이걸 해야 재밌는데, 상대방은 다른 걸 하자고 한다. 그럴 때는 기록의 관점에서 한번 생각해보자. 어떤 활동이 우리가 기록을 남기는 데 더 좋을까? 그런 목적으로 보면 선택이 조금 쉬워질 수 있다. 각자의 취향보다는 기록물로써 더 가치 있는 걸 택해보자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기록물에 독이 올라 무조건 기록, 기록 하지는 말기를 바란다. 여행을 즐기면서 즐겁게 할 수 있는 간단한 기록방법을 택해보자. 여름과 나는 사진도 찍었지만 작은 캠코더로 간단한 댄스 뮤직비디오를 제작했다. 뮤직비디오 덕분에 나는 여름에게 눈 덮인 산을 올라가자고 설득할 수 있었다!



5. 열심히 사랑하기

금기어 : 너는 여행 와서까지 그러냐? 


마지막은 원론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사랑하는 사람과 여행을 갔다면 여행보다 중요한 건 사랑하기이다. 볼 거, 먹을 거, 경험할 거도 좋지만 둘 만의 시간을 가지고 충분히 대화할 수 있는 시간을 많이 가지자. 그냥 여행지 아무 데나 걸터앉아서 이 여행이 어떤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앞으로 하고 싶은 건 뭔지 충분히 많이 이야기하자. 사실 여행지에서 대부분의 문제는 이런 대화의 타이밍을 놓치기 때문이다. 여행지에서의 사랑하는 사람은 내가 알던 사람이 아닐 수도 있다. 불편하고 힘든 환경에 놓이면 사람은 다 변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상대방의 안 좋은 모습들도 튀어나올 수 있다. 그런 모습을 새로 발견하고 즐기고 많이 사랑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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