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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인현 Oct 15. 2020

027_불편하고 행복하게

몇 년 전 <불편하고 행복하게>라는 홍연식 작가님의 만화책을 샀다. 시골에 내려간 작가 부부의 고생담을 담은 자전적인 내용이다. 운이 좋게도 만화를 그리신 작가님께 직접 사인을 받을 수 있었고, 작가님은 꽤 긴 시간 공을 들여 한 컷의 만화를 그려주었다. 나는 책을 살 때부터 이 책을 여름과 같이 보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 그림이 여름과 나의 한 컷인 듯싶어 매우 기뻤다. 

여름과 나는 불편하고 행복하게 살고 있다. 불편한 점들을 따지자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원래 각자 1인용씩 쓰던 물건들을 그대로 쓰다 보니, 그리고 새로 멋진 가전들을 구비할 재력도 없으니 그렇다. 냉장고는 각자 쓰던 소형 냉장고 한 개씩을 더해 두 개를 쓴다. 침대에는 1인용 전기장판을 깔고 서로 따뜻한 부분을 차지하려고 몸싸움을 한다. 에어컨은 벽걸이용 가장 작은 사이즈를 구해서 설치했고 설치 시의 실수로 에어컨에서 나오는 물이 외부로 빠지지 않아 빈 페트병을 받쳐놨다가 수시로 비워줘야 한다. 최근에는 여름이 코로나 19로 사우나에 한 번도 못 갔다며 불만을 토로하길래 우리 집의 아주 작은 욕실 겸 화장실에서도 쓸 수 있는 조립식 욕조를 샀다. 방수가 되는 플라스틱 기둥과 PVC 천으로 만들 수 있는 4만 원짜리 간이 욕조다. 플라스틱 냄새가 좀 나지만 따뜻한 물을 받아놓고 들어가면 우리는 그걸로도 행복하다. 


우리는 물론 차도 없다. 차가 있는 기분을 내고 싶으면 차를 빌려서 하루 탄다. 오토바이라도 살까 하다가 너무 비싸다는 생각을 하고 날씨가 추워지면 에잉 하고 생각을 그만둬버린다. 그렇게 어디든 걸어서 대중교통을 타고 간다. 어떨 때는 손을 꼭 잡고 가고 어떨 때는 내가 혼자 멀리 떨어져서 앞에 간다며 핀잔을 듣는다. 여름이 차를 한 번 타니 걸어서 못 다니겠다며 볼멘소리를 해도 그럭저럭 우리의 삶은 행복하다.


그렇다고 우리의 삶이 특별하게 불편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우리처럼 사는 사람들이 많을 테고, 아니면 우리보다 더 불편하게 사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 충분하다면 편한 삶을 살 수 있다는 건 당연하다. 식기세척기와 진공청소기와 건조기가 삶의 윤택함을 만들어주는 3 신기라고 한다. 결혼을 하고 같이 살게 되면 무조건 구비해야 할 가전이란다. 물론 우리는 그중 한 개도 없다. 우리도 그걸 꼭 가지고 싶다. 그러나 나는 그 가전들이 우리의 소유가 되는 게 부담스럽기도 하다. 우리의 소유물이 많으면 많을수록 버리지 못하는 게 늘어날 거고 욕심도 많아질 거다. 가구와 가전이 많아지면 더 큰 집에서 살고 싶어 질 것이다. 오토바이를 사면 SUV가 타고 싶어질 거다. 그리고 그런 것들을 모두 버리고 쉽게 떠나지 못하게 될 것이다. 


현재의 삶에 어떻게 만족해야 하는지, 뭐가 더 나은 삶인지는 모른다. 우리도 항상 무언가를 더 가지고 싶다는 욕망에 시달리고 그 유혹에 자주 진다. 그래도 가끔은 불편해서 서로를 보게 되는 경우가 있다. 같이 모아놓은 빨래를 들고 코인빨래방에 가서 세탁기가 도는 걸 지켜볼 때, 버스 옆자리에서 내 어깨에 기대 잠든 여름을 볼 때, 작은 조립식 욕조에 앉아 좋아하는 여름을 볼 때면 불편함 따위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이게 또 추억이 되겠구나라는 생각에 미소가 지어질 뿐. 나는 이 불편하고 행복한 삶이 오래 지속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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