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인현 Oct 29. 2020

029_'사랑해' 라는 말을 다시 썼다

'사랑해'라는 말을 다시 쓰기로 했다.


최근 습작하는 소설에 사랑을 고백하는 장면이 있다. 초고에는 쓸 말이 없어서 '너를 사랑해'라고 썼고 퇴고를 하면서 다른 표현으로 바꾸기로 했다. 보통의 소설에서 그렇듯 '사랑해'라는 말을 그대로 쓸 수는 없었다. 사랑한다는 말은 쓰는 사람마다, 읽는 사람마다 다른 의미로 느낄 수밖에 없기 때문이고, 소설에 등장하는 개별의 인물이 쓰기에는 너무 크고 벙벙한 말이다. 소설에 등장하는 배경과 인물과 사건에 맞는 적절한 표현을 고심해야 했다.


예를 들어 최근에 읽은 홍희정 소설가의 <앓던 모든 것>에서는 이런 표현이 있었다. 어떤 사람을 보며


 언제 일진 몰라도 죽는 날 마지막으로 봤으면 싶은 정경이었다.
- 홍희정 <앓던 모든 것>

라고. 굳이 소설의 배경을 설명하지 않아도 오래오래 남을 수 있을 것 같은 문장이었다. 그런 문장을 써 보고 싶었다.


먼저 사랑한다는 말과 사랑해라는 말을 비교해 봤다. 사랑해라는 말은 보통 열렬한 사랑의 표현의 순간, 고백의 순간에 자주 사용된다. 마음이 주체할 수 없이 부글부글 끓는 것처럼 넘쳐서 드러나는 순간이다. 반면 사랑한다는 말은 더 먼 시간을 포함한다. 오랜 기간, 혹은 처음 만났을 때부터, 사랑이라는 감정이 있어왔고, 커지기도 작아지기도 했지만 지금에까지 도달한 것이 사랑한다는 말이다. 내 소설의 인물에게 어울리는 건 '사랑해'가 아니라 '사랑한다'는 말인 것 같았다.


사랑한다는 마음을 쓰려고 하니 역시 여름밖에 떠오르는 게 없었다.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이 꼭 나 같은 인물은 아니지만, 나는 여름이 되었으면 하는 존재, 여름이 내게 해주었으면 하는 행동, 여름이 가지고 있을 마음, 과거의 여름과 현재의 여름과 미래의 여름을 떠올려봤다. 그러면 사랑한다는 마음을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과거의 여름은 상처를 가지고 있다. 물론 누구에게나 상처가 있으나 여름은 자신의 상처를 조금 더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이었다. 상처는 과거의 사건으로 생기고 현재에 남아 있는 것이다. 내가 사랑하는 동안 여름에게 상처가 생겼다면 여름은 괴로워했을 것이고 그건 나 또한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시간을 긍정하며 사랑한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을까. 나는 그 시간을 두고 사랑했다고 이야기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내가 원하는 건 현재의 여름과 미래의 여름이 상처 받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었다. 아주 작은 상처도. 이미 생긴 상처는 어쩔 수 없더라도, 앞으로 나와 함께하는 시간 동안 상처 받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 나로부터 그리고 세계로부터 어떤 위협도 받지 않는 것이 내가 원하는 것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결국 '사랑해' 대신 이런 문장을 썼다.


네가 온 생애를 하나의 생채기도 없이 통과하길 바래.


멋진 문장은 아니어도 성실한 고민의 결과물이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어딘가에는 가닿을 수 있는 문장이라고.

이전 28화 028_시를 읽지 않는 이유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