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인현 Oct 26. 2020

028_시를 읽지 않는 이유


여름에게


   당신은 영화를 만들다가, 이제는 시를 씁니다. 당신이 만든 영화는 어떤 소년이 토끼를 죽이고 오랜 시간 길을 떠도는 영화였습니다. 그 영화를 찍기 위해 당신은 손발이 얼어붙는 겨울날, 아파트를 돌면서 장소 섭외 전단을 붙였습니다. 만화카페에서 일하며 번 돈을 모아 카메라를 빌리고 배우를 섭외하고 스태프들의 밥을 샀습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15분짜리 영화. 그 영화를 본 사람이 이 세상에 몇 명이나 될까요. 당신과 나는 그 사람들의 숫자를 셀 수 있습니다. 영화관에서 상영되지 않는, 유튜브에도, IPTV에도, 네이버 검색창에도 나오지 않는 그 영화는 멋지지만 가련합니다. 


   그래서 당신은 시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누군가를 15분이나 붙잡지 않고, 영상이 나오는 스크린까지 데리고 오지 않아도 시를 보여줄 수 있으니까요. 문구점에서 산 줄글 노트는 곰돌이 스티커가 첨부되어 있었습니다. 당신은 표지에다 곰돌이 스티커를 열심히 붙이고, 습작 노트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당신은 자신의 마음속에 박혀있는 장면들을 빼서 영화를 찍었고, 이제는 마음속에 박혀있는 말들을 빼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니까 무언가 빠진 자리에는 피가 납니다. 피를 철철 흘리면서도 빼야 할 그런 것들이 당신에게는 많았습니다.


   당신은 시를 쓰기 위해 수업을 들었습니다. 시인이 강의하는 시 쓰기 수업은 등단을 위한 수업이었습니다. 시를 써 가면 수강생들이 돌아가며 합평을 하고, 시인이 마지막으로 평가를 했습니다. 시인은 자신이 시를 평가하는 기준은 등단에 맞춘 것이며, 그 말들에 괘념치 말라고 말했습니다. 괘념치 않을 말을 나누면서 몇 주 동안 수업을 들었습니다. 당신은 열심히 시를 썼고, 다른 사람들은 좋은 시를 썼습니다. 


   나는 그때 시를 읽어보려 했습니다. 시를 읽어야 당신의 시도 이해할 수 있을 테니까요. 집에 꽂혀있는 당신이 사다 놓은 시집 한 권을 빼 들었습니다. 그건 심보선 시인의 <슬픔이 없는 십오 초>였습니다.      


내 언어에는 세계가 빠져 있다 
그것을 나는 어젯밤 깨달았다 
내 방에는 조용한 책상이 장기 투숙하고 있다
- 심보선 「슬픔의 진화」 中


   낯선 언어가 숨을 죽이고 있었습니다. 나는 그 시가 좋다고 생각했지만, 섣불리 좋아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것이 진짜 좋은 시인지 나쁜 시인지 몰랐기 때문입니다. 그는 시인이고 그가 낸 것이 시집이라는 것을 알지만 나는 그의 이름 외에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그러니까 나는 그가 환경, 원자력, 연대에 관해 관심이 있거나, 다큐멘터리를 보는 걸 좋아하거나, 자전거를 타는 사람이라면 그의 시를 좋아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가장 좋은 건 나에게 다정하게 친절을 베푼 일이 있는지 찾아보는 거겠지요. 그러니까 그의 시를 읽는 가장 좋은 방법은 네이버 검색창에 그의 이름을 검색해보는 것이었습니다. 그가 시인 이외에 어떤 직업을 가졌는지, 어떤 문학지를 통해 데뷔했는지, 세간의 평가가 어떤 것인지, 뭘 맛있게 먹는지 등등. 그의 트위터를 정독하고 나면 그의 시도 좋아할 수 있을까요.


   그러니까 다른 사람의 시를 열심히 읽는다고 당신의 시를 이해할 수는 없습니다. 아마도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을 것입니다. 내가 이해하려고 했던 건 시가 아니라 당신이기 때문입니다. 그건 내가 당신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이해할 수 있고, 다가갈 수 있습니다. 사랑하지 않는 시에게 다가갈 수는 없습니다. 사랑이 먼저인지, 시가 먼저인지. 적어도 내게는 그 어떤 시보다 사랑이 앞에 있고, 사랑 앞에 있는 건 오직 당신뿐입니다.


   당신은 시를 쓰다가 이제는 커피를 내립니다. 시 수업은 중간에 그만두었습니다. 너무 자신의 세계에 갇혀있다는 합평을 듣고. 그리고 남은 횟수에 대한 환불을 꼼꼼하게 받았습니다. 절반이 넘게 시가 쓰여있던 습작 노트는 이사하면서 버렸습니다. 당신은 자신의 마음속에 더는 뺄 말이 없다고 했습니다. 내가 있어 덜 불행하다고, 그러니 시를 쓸 이유가 없어졌다고 했습니다. 시를 쓰는 건 무언가를 남겨야 하는 건데 시는 남기고 싶지 않은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시집을 꺼내 시를 읽으려다가도 당신의 마음이 먼저 아른거리고, 당신과 어떤 돈으로 어떤 집에서 어떤 밥을 먹을지를 먼저 고민하게 됩니다.




2020년 10월 24일 <다음 시 페스티벌 - 독자 선언> 프로그램에 참여했습니다. 사전에 제시된 주제는 '내가 시를 읽는 이유' 혹은 '내가 시를 읽지 않는 이유'에 관해 말해보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시를 읽지 않는 이유'에 관해 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다음 시 페스티벌 프로그램 전체 내용은

유튜브 https://www.youtube.com/channel/UCALyziD1TM2cmRM9N1E0mqQ

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관련 정보는

인스타그램 https://instagram.com/nextpoetryfest?igshid=1krjqayrpt2p9

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이전 27화 027_불편하고 행복하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